간이역 황간역

# 청춘의 빛은 사라져도

by 칠십 살 김순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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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간역(黃澗驛)

간이역

충청북도 영동군 황간면 하옥포 2길 14

주변 관광지 : 월류봉



기차 여행은 무궁화 열차가 제맛이다. 달리는 속도가 느리니 차창 밖 풍경을 감상하기에 너무 좋다. 여름에는 여름의 풍경이, 봄에는 봄의 풍경이, 가을에는 가을의 풍경이, 겨울에는 겨울의 풍경이 차창밖으로 연출된다. 덜컹대는 노후된 기차 바퀴와 철로의 마찰음도 거슬리지 않게 들린다면 그대여, 그대는 노년.


역에 도착하니 플랫폼에 역장님이 나와서 승객을 맞는다. 역 플랫폼에서 역장님을 본다는 것은 요즘에는 쉽지 않다. 간이역이어서 가능하다. 역무원복을 입으신 역장님이 신호기를 들고 호루라기를 불며 승객들을 관리했던 장면은 이제는 옛 영화에서나 볼 수 있을 뿐이다. 내 나이 또래의 사람들에게나 어릴 적 기억에 남아있는 장면이다.


황간역은 봄날에 가면 좋겠다. 플랫폼에 아기자기 꾸며놓은 예쁨이 겨울에는 제 폼이 안 날성 싶다. 따뜻한 봄 햇살 받은 앙증맞은 화분과 오래된 옛 항아리에 새겨놓은 낯익은 시가, 문득, 언젠가 부산 이바구길 168계단에서, 머리에 핑크색 핀을 꽂은 커피 파는 할머니를 연상케 했다. 역사 밖으로 나가도 깨끗하게 정돈된 작은 앞마당에 멋지게 채색해 놓은 옛 항아리에 익숙한 시어와 시인의 이름이 사람을 붙든다.


황간역 옆에는 먼 길 오신 손님을 위한 무인카페가 있다. 이층으로 올라가 주인 없는 카페에서 계산대 한 켠에 놓여있는 함에 적은 돈을 넣고 커피를 탄다. 이층에서 내려다 본 항간역 철로, 사람 하나 없다. 아름다운 풍경도 좋지만 이런 텅 빈, 풍경도 너무 좋다. 이제 시간이 되면 한 사람, 두 사람 모여들 것이다. 저 텅 빈 플랫폼, 너무 많은 사람들의 복작임은 그림이 좋지 않다. 한, 두 사람이면 딱 좋겠다. 그러면, 그림이 좀 더 완벽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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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적한 역을 빠져나와 달빛도 쉬어간다는 월류봉을 찾아 걷는다. 100년 전 풍류시인 걸음을 흉내 내듯, 작은 배낭 하나 달랑 메고 터벅터벅 걷는 늙은 내 초라한 모습에 낭만이란 단어를 억지스럽게 붙여본다.


방문일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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