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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바람 Sep 21. 2023

물은 내게 중력과도 같아

 나는 늘 물을 찾는다. 오랫동안 광주에서 살아오긴 했으나 태생은 바다가 있는 목포다. 서해바다인 내 기억 속 목포는 늘 잔잔했다. 유년기를 거쳐 성인이 되고, 체육학과에 진학했다. 필연적으로 수영 강의를 들었고, 이건 우연이겠지만 수영선수 출신의 친구와 친해졌다.

 친구는 곧 잘 내게 수영을 잘 알려줬다. 물과 조금씩 친해졌다. 천에 물이 닿으면 천천히 스며들듯 수영실력은 그렇게 늘었다. 너무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그러나 온전히 젖진 못했다. 수영장에 갈 기회도 적었고,  접근성이 낮았기에. 막 코로나도 터져서 수영장에 가는 것에 거부감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스물넷 나는 취업을 해서 서울에 갔고, 힘든 일이 생겼다. 죽고 싶은 마음에 바다를 찾았다. 동해, 서해, 남해 안 가본 곳이 없다. 그 해 여름은 내겐 온통 바다였다. 바다에 늘 근심을 빠뜨리고 왔다. 종종 나를 빠뜨려 버릴까 하는 생각도 많이 했다. 늘 무언가 위로받고 싶은 일이 생기면 바다를 찾곤 한다. 바다와 한 몸이 되고 싶었다. 죽어도 물에 가라앉아 가루처럼 사라져 버리고 싶었다. 드라마에 그런 장면이 있다. 투명한 물에 손을 뻗고 눈을 감으며 천천히 또 서서히 가라앉는 거. 그러다가 죽게 되는 한 장면 같은 걸 상상했다. 그러다가 가루로 스르륵 사라져서 물속에 사라 지진다. 가루가 되기 위해선 화장하고 내 뼛가루를 바다에 뿌려 야한 거겠지. 실제론 어푸어푸하다가 몸에 힘이 풀려 그리 곱지 않은 형태로 빠질 거고, 가루는 무슨 퉁퉁 불어 시체를 찾는 사람으로 하여금 트라우마를 남길 거다. 그렇게 생각하니 역시나 이 방법도 안 되겠다.


 바다를 그렇게 찾다가 부산으로 한 달 동안 떠났다. 그곳은 내게 낯설면서 익숙한 도시였다. 이렇게 표현한 이유는 도시차체는 낯설지만 누구보다 내게 익숙하고 가까운 친구인 재은이와 지희가 있는 곳이기에 그렇게 표현했다. 재은이네 집에서 잠을 자고, 지희네 서핑샵에서 서핑을 배웠다. 서핑을 시작하고 물은 날 죽게 하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바닷물은 어떤 순간에도 나를 위로 올렸고, 아래로 내려가려 해도 자꾸만 위로, 위로 올렸다. 발이 닿지 않는 곳에서 허우적거려도 나를 띄웠다. 나중에 알고 보니 바닷물은 오히려 부력이 좋아, 수영장 물보다 더 잘 뜬다는 거다. 물은 나를 해치지 않는다. '저 바다란 게 그렇잖아, 삼킬 듯이 거칠다가 다 거짓말 같이 고요해지 잖니' 좋아하는 오 마이걸의 유아가 부른 멜로디라는 노래의 가사다. 바다는 거칠게 나를 받아주다가도, 어느 순간이면 잔잔하게 안아준다. 그게 자연이다. 예측할 수 없고, 나를 해칠 수도 있지만 나를 살아가는 근본이다.

 "물과 불은 늘 조심해야 해 긴장하고 방심하면 안 돼" 서핑을 하면서 자주 듣는 말이다.

 짧은 인생이지만 물은 한 번도 나를 해친 적이 없다. 물론 뭐 구르고, 좀 마시고 고막도 맞고 그렀지만, 또 늘 안아줬다. 그렇게 바다를 그리워하며, 바다가 있는 지역을 찾아다니다 복직을 했다. 복직을 해서도 상처받은 마음에, 툭하면 스트레스를 받았고 앓아누웠다. 이유 모를 눈물도 났다. 일을 하다가도 갑자기 안 좋아져 울면서 일을 했다. 팀장님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병가를 내고 병원에 가라고 하셨다. 오기를 부렸다. 무너지고 싶지 않아서 몸을 덜덜 떨면서 '아니요 오늘 이거 끝내야 해요'하면서 붙잡고 있었으나, 몸이 안 좋은데, 심지어 정신이 안 좋은데 어떻게 그걸 제대로 끝내겠어. 택시에 타고 병원에 가 진정제를 투약했다. 그런 일이 두세 번은 반복 됐었다. 수면제에 취해 눈을 감고 본능적으로 출근길을 찾아 걸어갔다. 급행 9호선을 타고, 종합운동장에서 2호선으로 환승해서 역삼역까지. 회사까지 잠을 자며 걸어갔다. 잠자며 걷는 게 가능할까 했는데 내가 그러고 있었다. 군대에서 행군하면 그렇다고 어떤 친구가 말하더라. 그렇게 업무를 꾸역꾸역 하고, 하나라도 더 배워가고, 여기서 그만두고 본가로 내려가면 내가 지는 거다라는 오기에 버텼다. 지금 생각해 보면 회사사람들이 참 인내심이 있었다. 툭하면 병원에 가야 하고, 툭하면 약에 절어서 졸고, 멍하게 있느라 숫자도 제대로 못 봐 실수하는데 그걸 다 참아줬다. 물론 혼도 만이 났지만, 포용하려 했다. 결국 막판에는 검찰에서 연락 오고, 재판이 시작되며 건강상태가 다시 안 좋아져 합의 후 잘 그만두게 됐다. 마지막까지 팀장님들이 걱정을 해줬다.

 

 서울에서의 삶을 억지로 연명했다. 본가인 광주는 내게 안식처가 되지 못했다. 내 상황을 이해하지 못할뿐더러, 그걸 왜 못 이겨내? 하는 가족들의 시선. 오히려 상태를 나빠지게 하는 말들까지. 거기에 이곳을 벗어나 둥지로 돌아가면 뭔가 내가 좌초될 거 같았다. 내가 하고 싶은 걸 하고자, 독립하는 어른이 되고자 집을 떠나 살아왔는데 아이로 돌아가는 느낌이었다.

그저, 물이 그리웠다. 추운 겨울 나는 올림픽수영장에 갔다. 수영모임에 들어갔다. 수영을 배우고 싶었다. 죽겠다고 바다에 찾아갔으면서 모순적으로 서핑을 하며 더 깊은 물에 들어가기 위해 수영을 배워야겠다 생각했다. 올림픽 수영장은  25m 구간부터 2m로 떨어지는 50m짜리 레일 있다. 처음엔 2미터로 발이 닿지 않는 게 무서워, 25m까지만 가고 어슬렁 거렸는데, 민재님이 같이 잠수하러 가보자고 데려간 이후로 2m도 곧잘 들어간다. 이제 물속에서 바닥이 닿지 않아도 두렵지 않다. 난 헤엄을 칠 수 있고, 그 물은 나를 띄워줄 거고, 육지로 돌아갈 것을 아니까. 내겐 죽음이란 그런 것인 거 같다. 육지로 돌아갈 거다. 그런 전제만이 있다. 육지로 돌아가지 못하면 그 이후엔 내가 없는 것이니. 그냥 난 돌아간다는 전제만 생각하면 된다.


물속에 있는 나는 행복한 마음에 늘 웃고 있었다. 민재님이 수영할 때 늘 신나 있다고 말을 했다. (민재님은 모임에 들어가 가장 먼저 만났던 모임원분이다.) 마지막으로 이리 신났던 게, 위로받았던 기분이 들었던 건 언제더라.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말든 개헤엄도 쳐보고, 헥헥거리면서 50미터를 겨우 갔을 땐 기분이 좋고, 지금은 25미터를 10바퀴 돌아도 숨이 차지 않을 만큼 체력이 늘었다. 아무튼, 건강문제로 일을 그만둔 그 주에 강습 남는 자리 있어요? 하고 바로 강습을 신청했다. 물이 나를 받아준다는 생각이 드는 계기였다. 올림픽공원 수영장은 자리가 안 나기로 유명하고, 강습신청이 어렵기로 소문난 곳이었다. 매월 신청기간만 되면 새로 신청하려려는 모임분들이 실패했다고 곡소리를 내는 곳이었으니까. 엄청난 우연으로 나는 올림픽 수영장에서 꾸준히 6개월가량 강습을 듣게 됐다.


 자유수영과 수영강습은 꽤나 느낌이 달랐다. 내가 틀린 자세들을  고쳐줬다. 물론 사람이 굉장히 많아 섬세한 강의는 아니었다. 하지만 함께 수영하는 분들과, 강사님과의 유대가 참 좋았다. 집에 있으며 아무것도 안 하고, 어떤 교류를 없이 지내는 날들을 그 교류 덕에 이겨냈다. 내가 신청한 시간은 오후 3시였다. 그 시간에는 학생도 있고, 어머님 아버님도 계시고, 고등학생도 있었다. 고등학생이 그 시간에 왜 있지? 생각해 보니까? 숨을 고르느라 그리 많은 대화를 해보진 않았지만, 그냥 수업을 같이 듣는, 몇 개월 동안 얼굴을 본분들이라고 정이 들었다. 그것이 물이 주는 결속이다. 함께 살던 도영이와의 시간들도 당연히 빼놓을 수 없다. 매일 함께 물을 먹고, 물로 요리를 하고, 빨래도 하고 물에 연결됐다고 억지를 부려보겠다. 이렇게 물은 결속시킨다. 사람도 결속시킨다. '물'이라는 그 단어자체로 여러 스포츠를 만들고 그 스포츠들은 사람을 아주 단단하게 결속시켜 낸다. 서핑, 프리다이빙, 스킨스쿠버, 수영 등등 이런 동호회들이 그렇다. 내가 물이 좋은 이유는 나를 안아주는 부드러운 촉감 탓이 훨씬 크지만 그런 소사회로 다양한 사람을 내게 가져다 주기 때문이기도 하다.


 내가 참여하는 수영모임의 결속도 물, 수영을 시작으로 웨이트, 라이딩, 러닝, 클라이밍까지 확장해 나간다. 그래서 나는 물이 좋다. 물, 자연에서는 그 사람의 사회적 신분이나 나이가 상관없이 결집되는 것도, 격 없이 지낼 수 있는 것도. 물은 나를 중력처럼 끌어들이고, 내게 사회를 만들어준다. 그렇게 만들어진 사회가 참 좋다. 물과 더 친해져야지. 물 근처에 살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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