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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바람 Oct 15. 2023

트라우마 #4

절망하지말자. 꿈을 꾸자.

 재판 결과가 나왔다. 지난 편에 죄명은 준강간치상이라 말을 했었다. 가해자는 법정구속이 됐고, 징역 4년 그리고 40시간의 성폭력 치료프로그램을 이수해야 한다. 초범인데 징역 4년이면 많이 나온 거라고 한다. 강변호사님은 "이건 항소 무조건 하겠네요"라고 말을 했다. 정말 그 말대로 가해자는 항소를 했고 2심이 진행될 거다. 재판 결과가 나오고, 통지를 받고. 그동안 새로 부임된 변호사님(강변호사님의 사정으로 변호사님이 바뀌었다.)께 합의 연락이 하나도 오지 않다. 


 정말 위기센터에서 말한 대로 2심에서 부분인정을 하거나, 법원에 *공탁을 할 수도 있다. 이에, 강변호사님이 말하길 공탁은 아직 많은 변호사들이 반대를 하는 사안이라 감형의 여부 판단이 어렵다고 한다. 또한, 사안이 사 안인만큼 공탁도 4천에서 5천만 원 정도를 해야 한다고 한다. 가해자는 어떤 마음일까. 정말 자신은 내게 피해를 주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걸까? 난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그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데. 자신이 억울하다 생각하는 걸까. 그럼 아픈 나는. 괴로워하던 나는. 그 순간들을 모두 부정당하고 오히려 자신의 무고함을 주장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피해자도 있고 가해사실도 명확하고 이제 국가에서 까지 인정한 범죄인데 아직도 무고함을 주장한다. 이건 시간 끌기 일까. 오기일까. 객기일까.

 

 가해자는 서울에 꽤나 큰 교회에 다니고 있다. 자세하게는 기억이 나지 않으나 뉴스에도 나왔던 교회다. 그곳에서 청년부 회장을 맡고 있다. 그러며 리더십을 발휘하는 자신에 대해 말한 적이 있다. 며칠 전 어떤 분이 지나가다 교회에서 이런 문구를 봤다고 한다. "왜 걱정하나요, 기도하면 될 일을" 그분은 그 말에 위로를 받았다 한다.

역설적으로 나는 눈이 찡그려졌다. 가해자도 기도하고 하느님께 용서를 빌고 있는 걸까. 내게 용서받으려 하지 않고 신에게 용서를 구하는 걸까. 신은 용서 할까? 난 용서하지 않는데. 내가 아픈 기간을 힘든 기간을 무언가 하지 못한다는 무력감을 가진 기간들을 신이 용서한다면. 그 신은 내게도 신이 맞을까. 그런 생각이 또 든다.



 재판 결과가 나오고 의사 선생님께 전달드리기 위해 병원에 연락했다. 부장님이 전화를 받으셨다. "실형 4년이 나왔어요. 법정구속이래요."라고 말했다. 부장님은 "그렇게만 전달드리면 되는 거예요?"라고 하셨다. 네 부탁드리겠습니다.라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이후 열흘이나 지났을까. 슬슬 수면제를 다시 처방받을 때가 돼서 병원에 갔다. 단조로운 목소리로 부장님이 말씀하셨었는데, 진료 중임에도 바로 의사 선생님께 전달드렸다고 한다. 의사 선생님은 환하게 웃으며, 소식 바로 들어서 기뻤다고 하셨다.

"이제는 좀 어떠세요?"라는 질문이 이어졌다. 사실 혼란스럽다. 당시 나는 만취상태였고, 내 기억 속 선배는 분명 여러 갈래의 방향도 제시해 주고 고민을 잘 들어주는 선배였다. 그런 선배가 하루 만에 가해자가 됐다. 아직도 그 두 가지 모습의 모순에서 헤어 나올 수 없다. 하루아침에 돌변 한 사람을 미워하는 것도 참 힘든 일이다. 주변 지인들은 화를 내며 혼내준다. 왜 아직 살아있냐 이런 이야기를 하는데, 나는 마냥 거들 수가 없었다. 내 악한 마음과 미움을 누군가에게 향하게 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탓을 애써하지 않으면 그 화살은 내게 향한다. 그럼 난 누굴 탓해야 하는 걸까. 그런 고민들은 계속되고 있지만, 이제 가해자는 구치소에 있고, 혹여나 마주치면 어쩌지 하는 우려는 없을 거기에 덤덤한 표정으로 한마디 했다.

"이제 한 시름 좀 덜었어요"라고.


 "괜찮다고 느껴질 수 있어도, 안 좋을 수 있어요. 좀 복합적인 설문이 하나 갈 거예요. 좋으면 좋아지는 대로 그게 치료받아서 좋아졌다는 반증이니 편하게 지금 상황에 맞게 작성해 주세요"라고 의사 선생님은 다시 미소를 지었다.

"네 감사합니다 아 요즘은 자려고 누우면 잠이 안 올 때가 있어요. 그럼 그제야 아 나 약 안 먹었지 하고 먹더라고요. 이제 그만큼 익숙해졌나 봐요"

"그 정도까지 되셨구나" 고개를 천천히 끄덕거렸다.


이제 다음번에 뵐게요 하고 인사를 하고 나왔다. 이제 이 사건에 대해 너무나 많이 말했고, 유대가 없는 사람에겐 다시 처음부터 꺼내서 말하기가 막연하고 힘들다. 먼지 쌓인 감정을 다시 드러내야 될뿐더러 1년도 넘게 지난 일이라 이제 기억도 아득하다. 머릿속엔 번쩍하고 빛나 몇 장의 사진처럼 충격적인 장면이 뇌리에 강하게 박혀있을 뿐이다. 그 장면에 대한 스토리는 진술서와 변호사님의 자료에 다 적혀있다. 그뿐이다. 다시 읽어내리며 괴로울 뿐이다. 내가 이런 일을 당했었고 이런 말을 했다는 걸 다시 상기해내고 싶지 않다. 이젠 묵묵히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나씩 할 거다.


 사실 아직 취업은 어렵다. 외관적으로도 풍기는 분위기도 참 좋아졌다는 말을 듣지만, 스트레스에 정말 취약해 바로 불안발작으로 이어져버린다. 그래서 당분간 직장 밖에서 돈을 버는 방법을 찾고 있다. 돈은 얼마 되지 않는다. 그냥 일 많은 백수라 칭하고 다니고 있다.

물과 관련된 스포츠에 강사도 염두에 두고 있다. 하루에 4시간 주 5일을 일한다고 가정했을 때, 페이가 센 게 나으니 그렇게 생각해 봤다. 블로그도 꽤나 적극적으로 운영 중이다. 밥이나 생활용품, 여행, 자격증을 협찬받아 해결하고 있다. 문제는 일이 생각보다 많이 들어와서 마감에 쫓기고 있다는 거다. 마치 학보사에서 마감에 쫓길 때처럼 일하고 있다. 그래도 다 쌓아두면 레퍼런스가 되는 거고 도움이 될 테니 참고 열심히 잘 해내야지.

3년 동안 말로만 했던 아빠의 유튜브도 운영하기 시작했다. 우선 간단한 숏츠와 릴스부터 업로드를 했다. 편집도 해야 하는데 블로그가 우선순위니 일이 어느 정도 끝나면 할 거다.

 어쩌다 보니 아빠친구분의 위탁판매도 맡게 돼서 영업도 조금 하고 다닌다. 그래서 일 많은 백수예요라고 하고 다닌다. 일이 자꾸 들어온다. 일복은 많나 보다. 오히려 이렇게 일이 들어오는 게 내 성정엔 맞다. 일하는 게 내겐 놀이고 재미니 말이다. 지금은 회사 밖에서 돈 버는 법들을 깨우쳐야지. 내 상황에 그러니 말이다.

생각해 보면 직업도 없고, 고향에 내려와 일도 못하는 처량한 신세다. 표면만 봤을 땐. 그러나 선뜻 남을 도와주고 무엇이라도 해놓다 보니 자꾸만 일이 들어오고 되고 싶은 사람을 생각해 놓으니 계속 그게 이뤄지는 거다. 올해도 몇 번이나 내가 되고 싶은 사람이 됐다. 물론 안 맞아서 그만둔 경우도 있지만, 이상만 가지고 사는 것보다 직접 경험해 본 사람이 훨씬 낫지. 상황은 최악이지만 그래도 꿈을 가지고 살자. 이런 사람이 되고자 하면 늘 그렇게 된다. 직접 경험해 본바이다. (재판에도 승소하는 상상을 매일 했었다.)



5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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