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바다바람 Oct 31. 2023

나를 하나도 모르겠어.

그래도 단언할 수 있는 건, 난 무엇이든 될 수 있어.

 또또 신나서 하고 싶은 것들을 실컷 했다. 협찬을 받아 여행도 다니고 내가 사랑하는 서핑의 자격과정도 이수하고. 스킨스쿠버 라이센스도 취득했다.

돌아다니면서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는 일념하에 괜히 오지랖도 부리고 무리할 정도로 일을 막 늘어놔버렸다. 이렇듯 나를 업무적으로 몰아붙이는 건 하나의 관습이 되고 말았다. 휴식을 제대로 줘야 하는데 일하는 순간을 휴식이라 스스로 가스라이팅하고, 또 완벽히 해내야 한다는 압박에 엄청 무리하긴 했지.


그러다가 컨디션 조절을 실패해 아무것도 못하게 됐다. 원인 모를 공황징조가 계속해서 찾아왔고, 혼자 있는 게 너무 괴로워 약을 먹고 내내 잠만 잤다. 심장은 계속해서 뛰고 불안한 감정이 지속되고 온몸에 힘이 없었다. 마치 그 사건의 초반과 비슷한 상태였다. 다시 마주하고 싶지 않은 상태를 마주하니 또 멍하다. 어떻게든 되겠지 헤헤하며 매 순간을 보내고 있는 듯 보이나 내 상황은 매우 엉망이다. 금전적으로도 그렇고, 건강상태도 그렇고, 사건의 재판도 길어지고. 자꾸 용기 내서 잡은 직장에선 마주하기 힘든 상황을 계속해서 직면하고.

그렇게 자존감이 떨어져 있다가도 열심히 하고 있다는 다독임을 받으면, 맞아 나 잘하고 있어 하며 의기양양해진다. 최근 서핑 강사 양성 자격증 과정에서 필기(만점 받았다)도 좋은 성적을 거두고, 실기도 한 번에 통과했다. 커리큘럼 중 못하는 게 뭐냐는 칭찬을 받기도 했다. 뒤에서 나지막이 들려온 말이었지만 그게 낯부끄러우면서도 계속해서 그 칭찬이 맴돌아 나를 살아가게 만든다. 내가 노력해 왔던 것들을, 내가 지나온 힘든 순간들을 알아주는 기분이었다. 무엇하나 쉽게 얻어온 게 없기에 그런 칭찬에 인정욕을 느끼는 건가.


나는 정말 무엇이든 되고 싶다. 내가 사랑하는 서핑도 잘하고 싶다. 이 마음이 지속되면 프로서퍼도 될 수 있지 않을까? 심판위원이 될지도 모른다. 체육 대학원에 가서 서핑관련한 논문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수영도 계속해서 수구사를 취득하고, 프리다이빙도 스킨스쿠버도 끝까지 자격증을 취득할 거다. 그러니 또 동력수상레저기구 조종면허도 따고 싶고, 잠수기능사도 따고 싶다. 중국어나 언어공부도 너무 좋아해서 통번역도 하고 싶고, 글 쓰는데 좋아서 작가도 하고 싶고, 여행을 다니며 글 쓰는 김에 유튜브도 해보고 싶다. 마케팅 공부도, 웹디자인 공부도, 부동산 공부해서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따고, 투자공부도 하고 싶다. 주짓수 블루벨트도 따고, 대회나가서 메달도 딸거다. 이러다 해경을 준비해 볼까? 싶지만 그러기엔 사업도 하고 싶다.  이런 이야기를 친구들에게 조잘조잘해본다.

"넌 대체 뭐가 되고 싶은 건데, 네 목표가 없잖아. 가장 효율적인 길로 가야지."

이런 이야기를 여러 번 들었다. 그런가, 난 뭘 하고 싶은 거지. 내가 진정하고 싶은 건 뭘까. 나를 어느 정도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날 보면 친한 지인이 나보다 나를 더 잘 안다. 내 행동 패턴을 어떻게 예측하지. 이상하다. 그만큼 나에게 애정이 있다는 말이겠지? 


오랜만에 스키장에서 패트롤을 같이 했던 지인과 연락이 닿았다. 사실 일을 할 때 그분은 내 동경의 대상이었다. UDT를 다녀와 함께 일하는 모두가 그분을 존중했다. 거기에 자신의 일을 하고, 공부를 한다며 그 힘든 근무 환경에서도 계속해서 자신의 일을 놓지 않았다. 친해지고 본받고 싶었다. 4대 극지마라톤을 완주한 20대 중의 한 명이기도 해서, 학교 개강을 하면 인터뷰도 하고 싶었다. (당시에는 대학생이었고, 학교 신문사에서 일하고 있었다.)

그분은 여전히 그렇게 열심히 살고 있었다. 무언가 열심히 해내고, 발전해 나가면서도 겸손한 태도를 유지했다. 내가 무언가를 하고 싶다면 이미 한 거나 알고 있는 것도 신기했고 정말 자격증 컬렉터여서 이것까지 딴다고 하는 것까지 다 취득했다. 드론과 잠수기능사가 그랬다. 진짜 리스펙 한다. 조만간의 목표는 의대를 준비한다는 건데, 한국에서 한 획을 긋는 사람이 되지 않을까? 대화 한마디 한마디에서 자극을 받았다. 그리고 다시 나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고 내린 결론. 난 무엇이든 될 수 있구나.


결국 나는 내가 정하는 거다. 내가 작가라면 난 작가가 되는 거고, 내가 서퍼라면 서퍼가 되는 거다. 내 정체성은 남에 의해서 결정되기도 하지만, 결국은 내가 생각하는 대로 내가 되는 거다.

그 생각대로의 나는 사회의 뜻에 반할 수도 있고, 누군가에겐 터부시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는 나인데 그게 무슨 상관이야.

내 인스타그램

내 인스타그램 소개글이다. 내가 정의한 나는 이런 모습이다. 난 무엇 하나로 정의되는 사람이 되기 싫다. 메타몽처럼 무엇이든 될 수 있기에. I CAN BE ANYTING

앞으로도 무엇이든 되는, 그것을 무척이나 잘하는 그런 사람이 되고 말 거다. 50살에 도예를 시작해도 60살이면 전문 도예가가 될 건데, 내 시간과 열정을 꾸준히 투자하면 결국 잘하게 될 건데. 무슨 걱정이야.


내가 사랑하게된 나의 첫번째 랜드서핑보드
작가의 이전글 분명 죽고자 서핑을 시작했는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