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가를 하면서 내가 가장 많이 시간을 쏟는 일은 사람들을 보는 것이다. 무슨 뜬금포냐 할 수도 있겠으나 요가를 가기 위해 잠에서 깨어나는 순간부터 수련을 끝내고 돌아오는 순간까지. 모든 게 요가의 과정이라 생각하므로 뜬금포는 아니고... 소소한 즐거움이라 말하고 싶다. 하하하. 관찰이 시작되는 곳은 지하철이다. 휴대전화를 보는 사람이 대다수이지만 이른 시간 출근을 위해 단정하게 차려입은 사람들이 졸린 눈으로 연신 하품을 하고 고개를 앞뒤로 주억거리며 못다 잔 잠을 자기도 한다. 나처럼 책 읽는 사람도 한두 명은 있어서 반갑고 밤새도록 술을 마셨는지 쏟아부었는지 알코올 냄새를 폴폴 품기며 슬리퍼를 반쯤은 벗은 채 발을 까딱거리는 사람도 더러 있다. 사라진 줄 알았던 지하철 보부상들도 볼 수가 있는데 요즘엔 말은 거의 하지 않고 물건을 냅다 주신다. 하려면 하고 말라면 말라는 건가.
매번 만나는 분이 1호선과 2호선 환승역 전 역에서 흰색 편지봉투를 파는 아저씨다. 읽고 있던 책 위로 편지봉투가 골대에 골인하듯 던져져 와 적잖이 당황했으나 요즘엔 책을 읽다가 편지봉투가 책 위로 던져지면 아- 내리는 역이구나 하고 신호를 받은 사람처럼 고개를 들고 짐을 챙긴다. 한번은 편지봉투를 사는 사람이 있긴 있나 하고 주위를 둘러보다가 우스운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봉투를 던지는 아저씨가 모든 사람에게 봉투를 던지는 게 아니라 사람을 봐가면서(?) 띄엄띄엄 던진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대부분이 여성이거나, 노인이거나, 노인 여성이었는데, 그 사실이 어떤 날은 기분이 나빴고 어떤 날은 그러려니 했으며 어떤 날은 그랬구나 싶었다.
직장인과 알콜릭 편지봉투 아저씨를 관찰하며 요가센터에 도착한 후, 즐거이 수련하고 집으로 가는 길에도 역시나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은 바로 초등학생들이다. 책가방을 메고 있는 거로 봐선 등굣길인 건 알겠으나 왜 하필이면 지하도에 뭉텅이로 여기저기를 점거하고 있는 건지 여전히 정확한 이유를 알아내지 못했다. 개찰구 난간에 대롱대롱 매달린 아이, 주문 같은 소리를 지르며 뜀뛰기를 하는 아이, 공주 머리띠와 드레스를 차려입고 파티에 가는 것 같은 아이도 있다. (진짜 공주 드레스였다) 어떤 친구는 보호자의 손을 놓칠까 싶어 가는 길은 보지도 않고 고개를 들어 손을 내어준 이의 얼굴만 보고 걷기도 하고 어떤 친구는 휴대전화 속으로 빨려 들어갈 것처럼 꼼작 않고 화면만 뚫고 있고 어떤 친구는 세상 가장 나른한 자세로 의자에 거의 누워있다시피 앉아 있다. 왁자한 풍경과 소음에 순간 눈살을 찌푸리다 다시 편다. 예의 없지만, 예의 없다고 생각하기보다 자유롭게 몸과 마음을 섞고 나눌 수 있는 공간이 지하도가 아닌 곳곳에 펼쳐지는 게 우선인 거 같아서. 하지만 사람들 사이를 피해 가는 건지 일부러 부딪치며 가는 건지 정신없는 그들을 보며 나는 있는 대로 인상을 찌푸린다. 요놈의 초딩들!!!
무지막지한 그들을 피해 무사히 지하철에 올라탔다고 안심하긴 이르다. 본격적인 출근 시간으로 접어들며 지하철은 사람 천지다. 내리자마자 뛰듯이 걷는 사람들 속에 섞이면 오래전 서울의 지옥철 경험이 떠오른다. 빈 곳을 없애듯이 사람들이 여백을 채우고 머리와 머리 그리고 머리가 빽빽한 숲을 이루는 광경이 숨 막힐 정도다. 자꾸만 부대껴서 고개를 숙이고 그들의 발만 본다. 뾰족한 구두, 코가 닳은 구두, 때 묻은 작업화도 보인다. 또 뭔가 주렁주렁 달린 색색의 크록스와 거기서 기기인 운동화들이 종종대는 걸 보며 갑자기 달리기할 때 신는 운동화에 난 구멍을 생각한다. 안 비싸고 질 좋은 운동화 하나 사야지 하며 종종대는 내 발도 본다. 앞으로만 가다가 순식간에 발들이 흩어지면 다들 환승 구역을 찾았다는 것이고 그때부터 나는 승강장으로 들어오는 열차 소리를 들으며 1호선을 타기 위해 달린다. 그리고 구겨지듯 밀려 들어가서 뭉개진 채로 겨우 탑승에 성공한다.
구겨지고 뭉개지고 납작해진 채로 요가 수련을 함께한 사람들을 생각한다. 나는 다른 사람을 신경 쓰지만, 신경 쓰지 않는다. 편견이긴 한데 여자들이 많이 모이는 곳엔 원하지 않는 수다와 수고가 많고 조직적인 소문과 분리 같은 게 쉽게 부풀어 만들어진다고 보는데 나는 끼고 싶지도 않고 잘 끼지도 못한다. 싫은 것도 있고 사회성이 부족한 면도 있다. 특히나 운동할 때는 운동에 집중하는 게 보람도 있고 의미도 있다고 생각하는지라 몇 번의 운동센터를 거쳤어도 인사는 하고 지냈으나 친한 친구를 만들지는 못했다. 외롭긴 했지만 괜찮았다. 괜찮은 건 괜찮은 거고 궁금한 건 다른 영역이었다. 요가가 다른 운동에 비해 정적이고 수련의 의미도 있다 보니 동작 하나하나를 하면서 나에게 집중하고 주변에 집중하고 또 나의 주변인 함께 하는 사람에게 집중하게 된다. 저 사람의 호흡과 동작은 어떤 의미와 마음을 담고 있나 가늠해본다. 하지만 고작 오가며 인사하고 엘리베이터 함께 타는 사이일 뿐이라 아직은 혼자서 가늠만 해본다. 어느 날 갑자기 말을 걸 때가 온다면 함께 바다를 바라보며 요가 수련을 해보고 싶다고 수줍게 말해보고 싶다.
지하철이 한산해질 때쯤 비로소 나는 나를 생각한다. 늘 묻는다. 너는 요가를 왜 하는 거니? 너는 요가를 해서 어떠니? 편하니? 너를 좀 알겠니? 기분이 조금 나아졌지? 너를 안아주고, 너를 믿어주고, 너를 칭찬해줘. 피어오르는 것들이 죄다 고요 속에 쌓인 불안인 거 같아서 조금 울적해진다. 기껏 온기가 발끝까지 채워졌는데, 아쉽다. 얼마나 이어질 것인가. 삐뚤어지고 낡아가는 고관절을 나는 제대로 마주할 것인가. 어떤 미의 기준에서 심하게 벗어나 있는 나의 몸을 나는 제대로 마주할 것인가. 건강을 위한다는 이유로 가지는 갖가지 강박에서 벗어나, 있는 그대로의 나를 나는 제대로 마주할 것인가. 나는 나를 언제쯤 마주할 것인가. 이게 내가 요가를 하며 사람들을 보는 이유다. 남을 보면 어쩐지 내가 보인다. 요가에 너무 커다란 의미를 담고 있나 싶어 우습기도 기특하기도 애처롭기도 하다. 요가는 그저 요가일 뿐인데. 그리고 나도 그저 나일 뿐인데.
요가 하는 동안 나는 또 어떤 것을 보고, 어떤 것을 알며, 어떤 것을 놓칠 것인가. 모르겠다. 모르겠지만, 모르는 지금이 나쁘지만은 않다.
심히 기대되는 바이다.
*이미지출처) https://m.blog.naver.com/designmecca/1201032459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