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월함은 재능이 아니라
교육을 통한 연습으로 얻어지는 기술이다.
우리가 탁월해서 바르게 행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끊임없이 바르게 행하는 연습을 해서
탁월함을 얻게 되는 것이다.
-플라톤-
“선생님, 저 자퇴하고 싶어요.”
내향적이긴 하지만 수업 태도뿐만 아니라 성적 역시 우수한 경훈이가 갑자기 자퇴하고 싶다고 했을 때 나는 정말 놀랐다. 자퇴 이야기를 꺼낼 거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이기도 하지만 나를 더 놀라게 한 건 바로 자퇴 이유였다. 수능과 관련 없는 쓸데없는 과목을 공부하는 게 너무 시간 낭비 같다면서 학교를 자퇴하고 주요 과목에 집중하고 싶다는 게 그 이유였다. 사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온라인 클래스를 접하면서 수업을 아예 놓아버린 경우도 있는 반면에 집에서 해보니까 혼자서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아이들도 꽤 있었다. 특히 중학교 때 이런 시기를 겪고 나서 고등학교에 올라온 아이들 중에서는 수능에 들어가지도 않는 미술이나 정보 과목 같은 걸 왜 공부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미술이나 음악을 배우고 싶으면 학교가 아니라 따로 학원에 다녀도 되는 거잖아요. 수능까지 얼마 남지도 않았는데 이런 중요하지도 않은 과목을 하는 데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아요.”
당장 수능을 위한 공부도 해야 하는데 밖에서 체육 수업을 하거나 자신이 생각하기에 중요하지 않은 교과의 수행평가를 준비하는 데 시간을 허비하고 싶지 않다는 아이들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이런 이유로 자퇴해서 원하는 학과에 합격한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아이들에게 있어서 학교에서의 모든 교육과정은 그리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학교의 주된 목적이 단순히 지식을 습득하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축구를 엄청나게 잘하는 기찬이는 체육대회를 앞두고 불만이 가득한 모습을 보였다. 중학교 때 축구를 잘했던 친구들이 고등학교에 올라오면서 다른 반이 되었기 때문이다. 축구 규칙도 잘 모르는 아이들을 점심시간과 방과 후에 일부러 시간을 빼서 알려주고는 있지만 아무리 봐도 체육대회 축구 1등은 무리라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그래도 학급 체육부장이면서 축구 주장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책임감을 느끼고 알려줄 수밖에 없다면서 나에게 하소연했다.
반면 승준이는 축구는 물론이거니와 운동과 관련된 것에 전혀 관심이 없다. 공부를 잘하기는 하지만 운동에는 소질이 없고 친구들끼리 몸을 부딪치며 땀 흘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번 체육대회 때 가위바위보에 져서 어쩔 수 없이 축구 선수로 나가게 되었다. 처음엔 축구를 잘 못하니 그냥 대충 뛰어다니기만 해도 된다고 말했던 친구들이 연습할 때마다 점점 자기한테 자꾸 소리치고 욕해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무엇보다도 자신은 그동안 집에서나 학교에서나 욕을 들을 만한 행동을 한 적이 없는데 앞으로 평생 듣게 될 욕을 지금 실컷 듣고 있다면서 억울해했다. 그래도 이미 하기로 했으니 노력은 하고 있지만 너무 힘들다면서 축구 연습을 위해 학원까지 빠지고 있는데 자기가 지금 공부와 관련도 없는 체육대회 축구 연습을 하는 게 시간 낭비 같다고 말했다.
결국 우리 반은 축구 준우승을 했다. 물론 1등을 못 해서 아쉽긴 했지만, 결승전에서 너무 심하게 발려서(아이들이 실제로 한 표현임) 2등으로도 아이들은 만족해했다. 축구를 잘 못했던 승준이도, 축구 1등을 꿈꿨던 기찬이도 경기가 종료되고 난 뒤 얼굴이 잔뜩 상기된 채로 서로 어깨동무를 한 채 사진을 찍었는데, 이 사진은 한참 동안 아이들의 SNS 프로필에 올라가 있었다. 승준이는 학기 말에 상담할 때 축구 준우승을 한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고, 지금도 같이 축구 경기에 나갔던 친구들뿐만 아니라 특히 기찬이랑 가장 친하게 지낸다.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학교 축제 때 전시하기 위해서 학급별 단체 미술을 준비하는 중이었다. 담임 얼굴을 그린 그림을 구획 별로 나누어서 모든 학생이 자신이 맡은 부분을 색칠한 뒤 하나로 합쳐야 하는 큰 작업이었다. 반 아이들끼리 서로 다양한 의견을 조율해야 할 뿐만 아니라 참여하기 싫어하는 아이들을 설득하기도 해야 해서 우리 반 반장과 부반장, 그리고 미술부장이 너무나 힘들어했다. 실제로 우리 반 부반장은 나에게 와서 00이라는 친구가 시간도 안 지키고 이렇게 이기적인 줄 몰랐다며 내년에 같은 반에서 절대 만나고 싶지 않다고 말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결국 단체 미술은 완성되었고, 반 아이들은 내 초상화라고도 볼 수 있는 거대한 미술 작품을 집으로 가져가 벽에 걸어 달라고 부탁할 정도로 뿌듯해했다. 비록 준비 과정은 힘들었지만 나는 반 아이들이 단체 미술을 통해 서로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배려심을 키웠을 뿐만 아니라 부족한 부분을 도와주고 협력하면서 하나의 목표를 완성하는 과정에서 앞으로 경험하게 될 사회에서의 역할을 미리 배웠다고 생각한다.
학교는 기본적으로 이전의 학자들이 쌓아 올린 소중한 지식을 배우는 곳이다. 하지만 이러한 지식만을 배운 교육은 불완전하다. 자신이 배운 것을 토대로 다양한 사람들 속에서 다양한 것들을, 그리고 다양한 방법으로 시도해 보고 어떤 게 과연 올바른 것인지를 깨닫는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현재 자신의 생각과 행동 방식이 올바른지,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게 좋은지를 생각해 보고 시도해 볼 수 있는 곳이 바로 학교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학교 교육을 통해 다양한 시도와 연습을 경험해 본 아이들은 곧 들어가게 될 ‘사회’라는 세상에서 자신의 삶을 스스로 개척하고 발전시킬 힘을 기르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