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감귤선생님 Oct 21. 2024

제가 안 그랬는데요?

부모의 가장 큰 어리석음은

자식을 자랑거리로 만들고자 함이다.

부모의 가장 큰 지혜로움은

자신들의 삶이 자식들의 자랑거리가 되게 하는 것이다.     

-작자 미상-                    




  3교시 수업 시간에 우리 반 김세호가 미인정 결과(예전의 무단결과)라는 메시지를 받았다. 내가 근무하는 학교는 매시간 교과 선생님이 출결 앱으로 출석 확인을 하는데, 그 시간 담당 교사의 말에 따르면 수업이 시작한 지 10분 정도 된 이후에 세호가 화장실을 가겠다고 하고는 나가서 종 칠 때까지 들어오지 않았다는 거다. 당장 세호를 찾아서 어찌 된 영문인지 물어보았더니 당황해하면서, 

 “아! 저 교실 들어갔어요. 11시 50분쯤에요. 조용히 들어가서 뒤에 앉아 있었는데 그래서 선생님이 몰랐나 봐요.”

 라고 말했다. 그대로 담당 선생님께 전달했더니 그 시간이 수행평가 시간이었기 때문에 자신은 수업 내내 교실을 돌면서 조별 활동 상황을 도와주고 있었고 세호는 중간에 들어온 적이 아예 없었다는 게 아닌가. 담임으로서 도대체 무슨 상황인지를 알아야 해서 조용히 세호를 불러서 이유를 물어보았더니 이렇게 대답했다.

 “아! 생각해 보니까 배가 너무 아파서 화장실에 오래 있다가 종 칠 때까지 못 들어갔어요.”     


  며칠 뒤 세호가 수업 시간에 몰래 휴대전화로 게임을 했다며 그 시간 교과 선생님이 전화를 압수해서 담임인 나에게 주었다. 세호에게 학교 교칙을 언급하며 다시는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말하려고 불렀는데 자신은 너무 억울하다며 나에게 하소연했다.

 “수행평가 활동을 하느라 핸드폰을 하고 있었어요. 영상을 찾아봤을 뿐 게임은 절대 안 했어요.”

 그때 세호 뒤에 서 있던 우리 반 반장이 어이없다는 듯 이렇게 말했다.

 “야, 너 게임했잖아! 내가 뒷자리에서 봤어. 같은 조 00가 너한테 게임 그만하라고 했는데도 너 계속 게임했잖아! 왜 거짓말하냐?”     


 세호처럼 문제 상황에 부딪혔을 때 해결하려고 하지 않고 “나는 안 했다”라고 말하면서 그 상황을 아예 회피하려고 하는 아이들이 있다. 이런 아이들은 학교 공부나 단체 활동에서도 비슷한 모습을 보이는데, 자신이 잘하지 못할 것 같으면 “그거 재미없을 것 같은데, 꼭 해야 해요?”라면서 참여하지 않으려고 한다. 세호 어머니에게 그동안의 학교 상황을 전화로 이야기했는데, “아, 그래요? 제가 집에서 세호랑 이야기해 볼게요.”라고 말할 뿐 그다지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것 같았다. 물론 그 이후 세호의 태도에도 큰 변화는 없었다. 나는 세호가 옳지 않은 말이나 행동을 보였을 때마다 조용히 따로 불러서 이야기했다.


 “지금 너는 그 상황을 피하려고 그렇게 말했을지도 모르지만, 나중에 네가 한 말이 눈덩이처럼 커져서 선생님뿐만 아니라 주변 친구들도 너를 ‘거짓말만 하는 아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어. 누구나 부딪치기 싫은 불편한 상황은 늘 있어. 하지만 그 상황은 꼭 네 스스로가 해결하려고 노력해야 하는 거야. 도저히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으면 그냥 ‘미안해’라고 말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야.”

 “네, 선생님. 앞으로 거짓말 안 하고 선생님 말씀대로 잘 행동할게요.”     


 세호는 담임인 내 앞에서 이렇게 약속했음에도 불구하고 며칠 만에 다시 원래대로 행동하곤 했다. 몇 번 더 세호가 거짓말을 하는 모습을 보이자 나는 다시 세호 어머니에게 다시 전화했다.

 “선생님. 안 그래도 전화 한번 드리려고 했어요. 사실 세호는 집에서 전혀 그렇게 행동하지 않아요. 지난번에도 선생님 전화받고 나서 세호랑 이야기했는데 자기는 그런 적이 없다면서 선생님하고 친구들이 자기를 안 믿는다고 억울하대요. 결국 진실은 통할 거라고, 네가 그렇지 않다는 걸 다른 사람들도 알게 될 거라고 말해줬어요. 우리 세호, 공부 못한다고 너무 미워하지 마세요.”

 그 순간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아이의 잘못된 행동에 대해 제대로 인지조차 하지 않으려고 하는 어머니에게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고작 앞서 말한 내용을 반복하는 정도였다.      


  불편하거나 문제가 되는 상황에 맞닥뜨렸을 때 제대로 부딪혀서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아이들을 보면 대개 자존감이 높다. 이들은 자기 잘못을 바로 인정하고 고개 숙여 사과할 줄 알면서 그 행동에 책임을 지려고 한다. 이렇게 행동하는 방법은 아마도 주변의 가장 가까운 어른인 부모, 혹은 교사로부터 배웠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우리 어른들은 어떤 문제를 해결할 때 항상 ‘내 모습을 보고 배우는 누군가가 있다’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미국의 작가 로버트 풀검은 “아이들이 당신 말을 듣지 않을 것을 걱정하지 말고 그 아이들이 항상 당신을 보고 있음을 걱정해라”라고 말했다. 아이들의 잘못된 행동을 말로 가르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먼저 어른인 나 자신이 그런 행동을 하지 않고 올바른 역할 모델이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은 너무나도 중요하다.     

 ‘부모 말하기 연습 인력’ 중에 이런 내용이 있다.

“세상에 완벽한 부모는 없습니다. 우리 모두 그걸 알고 있지요.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최고의 부모가 되겠다는 생각이 아니라 최선을 다하는 부모가 되겠다는 다짐이 아닐까요?”     

 나 역시 집에서는 부모로서, 그리고 학교에서는 담임으로서 완벽하지 않다. 그러기에 늘 나를 바라보는 아이들에게 최선을 다하는 어른이고 싶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해본다.     

이전 01화 교실에 있는 게 시간낭비 같아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