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한 친구네 집에 처음 갔을 때, 살짝 충격을 받았다. 거실에선 아이들이 도란도란 이야기하는 소리, 간식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평범한 가정집이었는데, 안방 문이 열려 있었고 그 너머로 보이는 침대 위는 너무 완벽했다. 이불이 군대 병영처럼 반듯하게 개어 있었고, 베개 하나 흐트러짐 없이 제자리에 놓여 있었다. 심지어 아이 방 침대 위 이불도 마치 호텔 침구처럼 정돈되어 있었다.
그 장면을 본 순간, 속으로 ‘와, 대단하다’라기보다, ‘와, 이건 못 따라가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내 침대는 아침마다 전쟁터다. 새벽같이 일어나 밥하고, 아이들 깨우고, 등교 준비시키고, 일하러 갈 시간 맞추느라 정신이 없다. 당연히 내 방 침대는 그날의 아침에 내가 어떻게 일어났는지에 따라 어느 쪽으로든 널브러져 있다. 마치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내가 미처 인사도 못 한 채 스쳐 간 듯한 풍경이다. 물론 아이들 침대도 마찬가지다. 아이들에게 이불 정리하고 학교가라고 왜 말 안 하냐고? 그건 너무 잔인한 부탁이다. 출근 전 아이들을 깨우긴 하지만 밥 먹는 모습도 보지 못한 채 일하러 가는 엄마인데, 어떻게 아이들에게 그런 부탁을 하겠는가?
예전에 알고 지내던 어떤 선생님은 길거리에 누가 쓰레기를 버리는 걸 보면 참지 못했다. 삘대가 포장된 비닐 조각 하나를 떨어뜨리고도 줍지 않는 사람을 보면, 그 사람 인생 전체를 평가절하할 기세였다.
“그런 건 도덕의 문제야. 시민의식이고, 기본 소양이지.”
이렇게 말하곤 했다. 그런데 정작 그 선생님은 약속 시간에는 늘 한참 늦었다. 그리고 나는 약속 시간에는 늘 먼저 나갔다. 한 시간씩 기다리고 있으면, 도덕이고 뭐고 그냥 배신감만 남는다.
누군가는 화장실 수건걸이에 수건이 가지런하게 놓여있지 않는 걸 참을 수 없다고 말하고, 또 누군가는 왼쪽과 오른쪽 눈썹이 비대칭으로 그려지면 하루 종일 찝찝하다고 한다. 참을성의 대상은 정말 제각각이다.
그렇게 따지면, 나는 ‘화장실’에 특히 민감한 사람이다. 정확히 말하면, ‘변기 속 물때’에 참을성이 없다. 세면대 구석에 낀 비누 찌꺼기 정도는 조금 봐줄 수 있다. 치약을 앞에서부터 짜는 것도 참을 수 있다. 하지만 변기 안이 꽃분홍색의 물때가 낀 채로 한참을 방치돼 있다? 그건… 정말 못 본다. 재미있는 건 침구 하나는 기갈나게 정리하던 친구는 변기 안 물때에 대한 참을성 정도가 아주 높다는 것이다. 처음 친구집 화장실 변기의 물때를 보고 나서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아니, 저걸 보고도 괜찮다고? 진짜로?
그런데 반대로 생각해 보면, 친구도 나와 비슷한 감정을 느낄지도 모른다. 나에게는 변기 안의 물때가 세상의 청결을 대변하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친구에게는 침구의 단정함이 그 집의 질서를 말해준다고 생각하는 거다. 둘 다 자기가 중요하게 여기는 기준이 있는 거고, 그게 서로 다를 뿐이다.
더 흥미로운 건, 이런 참을성의 기준은 절대 고정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내가 20대였을 때는 청소기를 돌린 직후 바닥에 먼지라도 떨어지면 다시 돌려야 직성이 풀렸다. 그런데 지금은 ‘그 먼지가 어디 가겠어, 나중에 다 같이 치우지 뭐’라고 생각하며 슬며시 소파 아래로 숨기곤 한다. 반면 예전엔 전혀 신경 쓰지 않던 욕실 청결에 점점 더 민감해지고 있다. 내 친구도 마찬가지였다. 결혼 전 친구는 침구 정리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아이를 낳고 나니 그게 가장 먼저 못 참게 됐다고 말했다. 아마 지금 우리가 중요하게 여기는 건 누군가에겐 별일 아니고, 또 언젠가는 우리에게도 별일 아닐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참을성이란 건 결국 ‘관심’이 만들어낸 민감함이 아닐까? 그 관심은 삶의 리듬에 따라 바뀌고, 환경에 따라 달라진다. 나는 지금도 화장실을 청소할 때마다 깨끗한 변기 안에서 물이 쏴아~하고 내려가는 소리를 들으면, 묘하게 마음이 정돈되는 기분이 든다. 친구는 깔끔한 침대 위에 눕는 순간, 하루가 마무리되는 안정감을 느낀다고 했다. 우리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세상을 정리하고, 삶을 다독이고 있는 거다.
나는 지금도 아침마다 이불을 정리하지 않는다. 출근 준비로 바쁘기도 하고, 솔직히 말하면 ‘굳이?’라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친구집의 정리된 침대를 보면 가끔은 그 단정함이 부럽기도 하다. 나도 언젠가 여유가 생기면, 하루에 한 번쯤은 이불을 반듯하게 개보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그날이 오면, 내 삶에 또 하나의 참을성에 대한 기준선이 생길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변기 물때만큼은 절대 못 참는다. 그건 아마… 영원히 변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