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듦을 배우는 중입니다.
“요즘 너 왜 이렇게 사진 안 찍어? 옛날엔 그렇게 많이 찍어댔으면서.”
오래전부터 나를 아는 친구가 툭 던진 말이다. 글쎄, 왜일까. 한때는 모임의 시작과 끝, 심지어 중간에도 카메라 위치를 이리저리 바꿔가며 쉴 새 없이 사진을 찍어대던 나였는데 말이다. 셀카는 기본, 음식 사진은 필수, 어딜 가든 인증샷은 필수였다. 사진 한 장 건지겠다고 한 장소를 수십 번 찍고 또 찍고, 친구들에게 "야, 이거 나 베스트샷 좀 골라줘!"라고 귀찮게 했다. 그때는 내가 찍히는 모든 순간이 곧 아름다운 추억이자 세상에 자랑할 만한 '나'의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스마트폰 카메라를 켜는 것이 망설여지기 시작했다. 내 얼굴은 이제 더 이상 예전처럼 만족스럽지 않았다. 정확히 언제부터였을까. 아마도 4-5년 전 20대 후배 선생님과 같이 사진을 찍었을 때가 아니었나 싶다. 아래로 처진 눈매, 묘하게 잿빛으로 변한 얼굴색, 그리고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팔자 주름까지. 후배 선생님이 열심히 보정했다면서 "너무 잘 나왔죠?"라고 말했지만, 아무리 여기저기 수정해도 내 모습은 바로 옆 20대의 얼굴과 대조적으로 너무 늙.어.보.였.다. 아무리 애를 써도 거울 속 내 모습과 사진 속 내가 점점 멀어져 가는 것만 같았다.
최근 SNS 피드에서 빛나는 20대 친구들의 사진을 볼 때면 특히 더 그랬다. 잡티 하나 없는 매끈한 피부, 생기 넘치는 눈빛, 어떤 각도에서도 자신감 넘치는 표정들. 그들의 사진과 내 사진을 나란히 놓고 보면 마치 다른 세대의 사람 같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내가 저랬던가? 나도 저렇게 빛나던 때가 있었나?' 지난 앨범을 뒤적이며 예전의 사진을 찾아보았다. 해맑게 웃고 있는 앳된 얼굴, 팽팽한 피부. 그때의 나는 꾸미지 않아도 예뻤고, 어떤 표정을 지어도 자연스러웠다. 하다못해 선크림만 발라도 예뻤던 순간들이었다.
선배 선생님과 같이 사진 찍자고 하면 "내가 그냥 찍어줄게"라며 뒤로 빠지거나, "에이, 난 괜찮아"라고 손사래 치던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지금 내 눈에 보이는 내 모습이 나쁘지 않아도 옆에 서 있는 젊은 사람들의 얼굴과 비교할 수준이 아니란 걸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제는 카메라를 마주하는 것이 두려워졌다.
어쩌면 과거의 빛나는 나 자신과 지금의 나를 비교하고 싶지 않았던 것도 같다. 매일 보는 거울 속 내 모습은 너무 익숙하지만, 사진 속 나는 더 냉정하고 가혹한 현실을 보여주었다. '지금 이 순간이 가장 젊은 날'이라는 말은 위로가 되지 않았다. 나의 가장 빛나는 순간은 이미 지나갔다는 서글픔이 더 크게 다가왔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피할 수 없는 '나이 듦'의 과정일 텐데, 막상 내 얼굴에서 그 흔적을 발견하니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예전에 입던 꽉 끼던 바지나 짧은 치마를 버리지 못하고 옷장 속에 고이 간직했는데, 이제는 그런 옷들을 정리해야 할 때가 온 것만 같다. 그렇다. 나도 지금 나이 듦에 대해 연습이 필요한 것이다. 젊음의 아름다움은 비록 흐려질지라도, 시간과 함께 쌓이는 지혜와 여유, 그리고 내면의 단단함을 찾아가는 연습 말이다. 사진 속 완벽한 모습보다는, 내면의 평온함과 잔잔한 행복을 찾아가는 삶이 더 중요하다고 느끼는 방법을 배워야 하는 걸 알고 있다.
오늘도 친구들과의 모임에서 나는 카메라를 들지 않았다. 대신 그들의 눈을 마주하고, 웃음소리에 귀 기울이며, 함께 나누는 이야기에 집중했다. 물론 누군가 "우리 사진 찍을까?"라고 제안하면 여전히 살짝 망설이겠지만, 이제는 예전처럼 무작정 피하지는 않을 것이다. 물론 나는 '아줌마가 되어도 여전히 엉덩이에 물이 튀는 찜찜함을 감수하며 변기 물을 내린다'는 예전 다짐처럼(이전글인 '화장실, 그 비밀스런 공간' 참고:https://brunch.co.kr/@yutanachoi/43) 여전히 카메라 앞에서는 조금은 멋쩍고 과거의 나와 비교하는 아줌마의 모습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진 속 완벽한 나보다는, 지금 이 순간을 온전히 살아가는 진짜 '나'의 모습을 더 사랑하게 되는 날이 오기를 바라며, 나는 오늘도 카메라 대신 내 눈으로 세상을 담는다.
그래도 얼굴의 주름을 없애고 싶다는 생각은 지금도 변함없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