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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름을 인정하는 것

우리는 서로 다르고, 그래서 더 좋다.

by 유타쌤



남편과 나는 성격도, 취향도, 생활 방식도 꽤 다르다. 나는 짬뽕을 좋아하고, 남편은 짜장면을 좋아한다. 처음엔 이 간단한 차이조차 익숙하지 않았다. 짬뽕 국물에 밥을 말아먹고 싶은 날, 옆에서 꾸덕한 짜장면에 고춧가루를 뿌리며 후루룩 비비는 남편을 보며 속으로 '짜장면에 고춧가루라고?'라고 생각했던 적도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짜장면 몇 젓가락은 늘 맛보고 싶다. 그래서 우리는 늘 따로 시켜 각자 앞접시에 조금씩 나눠 덜어 준다. 함께 먹는 방식도 우리만의 타협이자 애정의 표현이 되었다.


시간을 대하는 태도에서도 우리는 꽤 다르다. 나는 약속시간보다 미리 준비를 마치고 집을 나서야 마음이 놓인다. 반면 남편은 시간을 조금 느슨하게 받아들이는 편이다. 처음엔 그런 모습이 답답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이제는 내가 먼저 말한다. “1시에 약속이니까 12시부터 준비하고, 12시 반엔 나가자.” 그러면 남편은 고개를 끄덕인다. 물론, 각자 따로 출발해서 만나야 할 일이 생기면 내가 먼저 도착해 기다리게 된다. 그래도 괜찮다. 그것이 그 사람의 삶의 리듬이라는 걸 이제는 알기 때문이다. “늦었잖아요”라면서 아양과 서운함을 섞어 말하며 남편 팔짱을 낀다. 그렇게 함께 걷다 보면 서운함은 금세 사라진다. 남편은 아마 다음에도 또 늦을 것이고, 나는 또 그 자리에 먼저 나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예전처럼 조급하거나 속상하지 않다.

운전도 마찬가지다. 신혼 초, 내가 운전대를 잡으면 남편은 조수석 창문 위쪽에 있는 손잡이를 꼭 쥐고 있었다. 말로 잔소리는 안 하지만, 그 손의 긴장감이 말해주고 있었다. 그래서 지금은 남편이 어디 갈 때 무조건 자기가 운전하려고 하고, 나는 조용히 옆에 앉는다. 남편은 교통법규를 정말 철저히 지키는 사람이다. 한참 비어 있는 도로에서조차, 우회전할 때 눈에 보이는 직진하는 차들이 모두 지나가기를 기다린다. 답답하긴 하지만, 그게 남편의 방식이다. 나는 그걸 알기에, 앞을 보지 않고 옆을 보거나 뒷자리에 앉는다. 괜히 잔소리하지 않기 위해서다. 우리 사이엔, 그런 ‘눈 감음’이 익숙하다.


친구 관계도 다르지 않다. 누군가는 약속 장소에 먼저 와서 카페를 알아보고, 누군가는 늘 마지막에 도착한다. 어떤 친구는 말을 끊지 않고 쏟아내고, 또 어떤 친구는 질문보다 공감이 먼저다. 하지만 나는 그 다름이 불편하기보다, 관계를 오래 유지하게 만드는 요소라는 걸 알고 있다. 서로를 있는 그대로 두는 친구들과는 오래간다.


예전엔 비슷한 사람끼리 어울려야 편하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남편과 나, 친구들과 나 - 우리는 서로를 바꾸려 하지 않는다. 대신 이해하고, 때로는 기다리고, 가끔은 웃는다. 그렇게 우리는 함께 살아간다. 서로 다르지만, 그 다름 덕분에 더 유연해지고, 덜 다투며, 오래도록 곁에 남는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했다.

“진짜 사랑은 이해받는 것이다.”

맞는 말이지만, 나는 거기에 한 줄을 더 보태고 싶다.

“진짜 사랑은 이해받기도 하고, 이해하려고 애쓰는 것이기도 히다.”

상대를 바꾸려 하지 않고, 다름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순간, 관계는 의무가 아닌 쉼이 된다.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서 “우리는 다 누군가의 삶을 견디게 해주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라는 대사처럼 내 방식과 다른 사람들과 살아가는 일은, 결국 서로의 하루를 견디게 해주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짬뽕을 시키고, 남편은 짜장면을 시킨다. 그리고 작은 앞접시에 서로의 음식을 덜어준다. 그 한 젓가락에는, ‘이해’와 ‘존중’이라는 마음이 담겨 있다. 각자의 방식으로 시간을 지키고, 운전대를 잡고, 말의 속도를 조절하며 살아가는 일. 그것이 꼭 맞을 필요는 없다. 그냥, 함께 걷는 속도가 크게 다르지만 않다면 괜찮다.


우리는 다르다. 그리고 그 다름은 틀림이 아니다. 내가 나로 살아가듯, 그들도 그들로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때론 다름이 곁을 머물게 하는 힘이 되기도 한다는 걸, 이제는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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