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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머리와 나이듦 사이에서

짧은 머리는 편하고, 긴머리는 마음에 남는다.

by 유타쌤



며칠 전, 거울 앞에서 머리카락을 말리면서 최근에 단발로 자른 걸 다시 한번 후회했다. 한 달 전, 긴 머리를 단발로 잘랐을 때는 여름이 되니 이 선택이 신의 한 수 같았다. 그런데도 요즘 부쩍 거리에 긴 웨이브 머리를 한 여성을 보면 나도 모르게 부럽다는 생각이 든다. 찰랑이는 머릿결, 목선을 덮는 볼륨감. 그러다 보면 어느새 또 다짐한다. 딱 한 번만, 마지막으로 다시 머리를 길러보겠다고 말이다.


사실 그 ‘마지막’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4~5년 전에도 똑같이 말했었다.

“이번이 마지막이야. 진짜 이제는 한 번만 길러보고 다시는 긴 머리를 하지 않을 거야.”

하지만 사람의 마음이란 참 간사해서, 단발이 익숙해질수록 다시 긴 머리에 대한 미련이 꿈틀댄다. 아마도 사진 속 예뻤던 젊은 시절의 나는 죄다 긴 웨이브 머리스타일이었기 때문인 것 같다. 그 시절의 사진을 볼 때마다 내 안의 어떤 감정이 건드려진다. 20대 후반, 혹은 30대 초반의 나. 조금은 철없고 무모했지만 반짝이던 시절의 내가 긴 웨이브 머리를 하고 환하게 웃고 있는 그 장면. 마치 다시 그 머리를 하면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이 든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내 또래 친구들을 보면 거의 다 단발이거나 그보다 더 짧은 스타일이다. 처음엔 다들 편해서 자르는 줄 알았다. 사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이유이긴 하다. 아침마다 시간을 줄이고, 감고 말리는 번거로움을 피할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나이가 들수록 머리숱이 줄어들고, 모발은 점점 가늘어진다. 단발펌이라도 해야 전체적인 볼륨이 그나마 살아 보인다. 아무리 좋은 샴푸와 트리트먼트를 써도, 클리닉을 받아도, 머릿결은 예전 같지가 않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몸에 들어온 영양분이 굳이 머리카락 끝까지 갈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몰랐다. 피부가 푸석해지고, 속이 더부룩하고, 기초 체력이 뚝 떨어지기 전까지는 말이다. 지금은 내 몸속의 장기들이 예전처럼 힘차게 움직이지 않는다는 걸 안다. 밥을 먹어도 소화가 안 되고, 감기 한 번 앓으면 쉽게 낫지 않는다. 그런데 내 몸속 장기들이 머리카락까지 신경 써줄 여력이 있을까? 생존과 아무 상관없는 부위에까지 영양을 보내줄 만큼 내 몸이 한가하지 않다는 걸, 이제는 안다.


며칠 전, 주차장에서 한 여성을 마주쳤다. 멀리서 봤을 땐 젊어 보였다. 긴 생머리에 짧은 숏팬츠. 그런데 가까워질수록 뭔가 어긋난 느낌이 들었다. 뒷모습과 걸음걸이 사이의 어색한 간극. 그리고 얼굴을 보고 알았다. 나보다 나이가 더 들어 보였다. 그 순간 솔직히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저 나이에 저런 머리와 옷차림이라니…’ 이 일을 친한 동생에게 털어놓았다. 약간의 우월감과 약간의 불편함, 그리고 알 수 없는 복잡한 감정으로 뒤섞인 상태에서 말했다.


그런데 동생이 대답했다. “언니도 긴 머리 하고 싶다며. 그러니까 주차장에 그 여자분도 똑같은 거야!” 순간, 말문이 막혔다. 맞는 말이었다. 나도 긴 머리에 대한 미련이 있다. 그 머리를 하면 뭔가 달라질 것 같은, 다시 예전처럼 보일 수 있을 것 같은 환상을 품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면서도 누군가가 그 환상을 실현하려는 순간, ‘나이에 맞게 하고 다녀야지’라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나는 그 여자의 긴 머리가 부럽기도 하고, 동시에 불편하기도 했던 거다.


나이 든다는 건 단지 숫자가 늘어나는 게 아니다. 예전엔 쉽게 넘기던 감정 하나하나가 더 무겁게 다가오고, 예전엔 몰랐던 판단의 잣대가 자기 안에 생긴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 잣대는 때때로 남에게 엄격하고, 나에게 관대하다. ‘저 나이엔 저러면 안 되지’라고 말하면서, ‘나는 예외야’라고 스스로를 위로한다. 머리를 기르고 싶어 하면서도, 다른 누군가의 긴 머리를 불편하게 바라보는 것처럼 말이다.


결국 다시 묻게 된다. 나는 왜 또 머리를 기르고 싶어지는 걸까? 편함보다는 조금이라도 예전의 모습처럼 보이고 싶은 마음이 내 안에 살아 있기 때문 아닐까? 그리고 그건 꼭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 인간이라면 자연스러운 욕망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도 거울을 보며 빗질을 한다. 얼마 전보다 머리카락이 조금 더 길어졌고, 빗 끝에 끼는 머리카락의 양도 조금 더 많아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또다시 말한다. 딱 한 번만, 마지막으로 한 번만 머리를 길러보겠다고. 물론 이 다짐이 정말 마지막이 될 거란 보장은 없다. 어쩌면 몇 년 후, 지금보다 더 짧은 머리를 하고 ‘그때는 왜 또 머리를 기르겠다고 한 거야?’라고 웃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만큼은, 나도 긴 머리를 찰랑이며 거리를 걸어보고 싶다. 물론 내 모습을 본 나보다 젊은 누군가는, 내가 주차장에서 느꼈던 것처럼 ‘저 나이에 저런 머리?’라고 생각하며 속으로 피식 웃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그런 시선에 휘둘리기보다,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것을 선택하는 일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것을 말이다. 그래서 내 안의 오래된 바람 하나를 다시 꺼내는 일은, 지금의 나에게 충분히 의미 있는 선택이라 생각하며 한번 더 머리카락을 길러보기로 다짐한다.


물론 '이건 아니야'라면서 다시 단발로 자를 수도 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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