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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귤선생님 Aug 18. 2023

배려냐, 희생이냐

제 잘못이 아닌데 왜 제가 희생해야 해요?

  학생 둘이 찾아왔다. 상황을 들어보니, 수련회 준비로 교실에서 춤 연습을 하다가 실수로 옆에 있는 친구 팔을 쳤고, 맞은 친구는 순간 들고 있던 휴대폰을 떨어뜨린 것인데, 문제는 수리비였다. 최소 30만 원 이상이 나온다는 견적을 받았는데, 휴대폰 친구는 전액 다 받는 게 당연하다는 입장이었고 춤추던 친구는 사설센터에서 수리받으면 10만 원대라던데 같은 반끼리 좀 배려해 주면 안 되냐는 상황이었다. 

"저는 춤 연습을 같이 하고 있지도 않았고 그냥 제 자리에 앉아 있다가 이런 일이 생긴 거예요. 제 잘못은 전혀 없는데 정식 센터에서 수리받는 거 가지고 의리가 없다느니, 친구끼리 배려 좀 해 주면 안 되냐느니 이런 말을 들을 필요가 없잖아요?"

이 말을 들은 춤추던 친구는 이렇게 반박했다.

"저 혼자 그냥 좋아서 춤추고 있었던 것도 아니었고 수련회에 반 대표로 춤 연습 하고 있었던 거잖아요. 애들이 안 나가려고 하니까 저랑 몇 명이 대표로 나가기로 하고 일부러 점심시간 빼서 연습하고 있었던 건데 좀 봐줄 수도 있는 거 아니에요? 막말로 자기가 나가기 싫어해서 제가 대신 나가는 건데 수리비 30만 원 넘는 돈을 물어내라고 하는 건 좀 너무한 거 아니에요?."


  학교에서 다쳤을 경우에는 안전공제회에 신청을 해서 치료비를 보상받을 수 있지만, 물품 보상은 제외된다. 따라서 이런 경우에는 도의적 책임으로서 피해 액수를 보상해야 하지만, 상황에 따라 적정선에서 해결할 수 있도록 중재하기도 한다. 수리 비용이 너무 크게 나왔다 해도 피해 학생에게 직접적으로 "좀 깎아줘라"라고 말할 수는 없기에 학생 간에 혹은 학부모간에 서로 합의점을 찾을 수 있도록 하는 방법밖에는 없다. 간단히 말하자면, 서로서로 좋게 좋게 끝낼 수 있도록 중재하는 것인데 물론 쉽지는 않다.


  특히나 둘 사이가 전부터 그리 좋지 않았거나 혹은 해당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각자의 의견이 서로 공감되지 못하는 경우에는 '친구 간의 배려'라는 생각이 '배려의 탈을 쓴 채 희생만을 강요'라고 느껴지곤 하기 때문에 더욱더 쉽지 않다. 


  한 번은 이런 적도 있었다. 친구의 부탁으로 체육대회 경기 중의 모습을 친구 휴대폰으로 촬영하다가 실수로 떨어뜨려 고장이 난 사건이 있었는데, 사진촬영을 부탁했던 학생의 부모님이 자신의 딸 휴대폰 수리비를 친구에게 청구하지 않겠다고 하면서 "아무리 친구가 휴대폰을 떨어뜨렸다 해도 제 딸이 부탁한 거였잖아요. 실수로 그런 건데 수리비를 청구할 수는 없죠"라고 말했다. 반면에 친구가 자신의 농구공을 빌려가서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원래 농구공과 같은 제품의 구입 가격을 달라고 한 학생이 있었는데, 친구는 자신이 빌린 농구공은 이미 오래된 거였는데 새 농구공 금액 그대로 말고 반절만 주겠다고 해서 둘 사이를 중재하는데 애를 먹은 적도 있었다. 


  같은 반 친구라고 무조건 배려를 강요할 수는 없으며, 또한 배려하지 않는다고 해서 이기적이라고 볼 수도 없다.  최대호 작가의 책 '내 걱정은 내가 할게'를 보면, 이런 구절이 있다.


"배려는 관심에서 나오고

이해는 노력에서 나온다"


  자신과 같은 상황이지만 입장이 다른 친구에 대해 관심을 갖고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배려를 할 수 있다는 것인데, 이러한 배려가 마치 몸에 밴 것처럼 잘하는 학생들이 있는 반면에 조금이라도 자신이 손해를 보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학생들도 있다. 


  나 자신을 아끼고 사랑할 줄 알아야 다른 사람 역시 아끼고 사랑할 수 있다는 말처럼, 타인에 대한 배려의 깊이는 바로 자기 자신에 대한 관심과 여유, 그리고 너그러움의 깊이에 비례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아무리 괜찮은 일이라 하더라도 권유는 할 수 있지만 강요는 할 수 없듯이, 배려 역시 강요할 수는 없는 문제다. 하지만 똑같은 상황 속에서 서로의 입장이 다를 경우, 각자 자신의 생각만 옳다고 우기기보다는 다른 사람의 입장이 되어 생각해 보고 이해하면서 조금씩 자신의 자리를 양보해 주는 게 결코 희생은 아니라는 것을 배우는 것 역시 중요하다. 


  오늘 학급 시간에 '배려: 만일 나라면?'이라는 주제로 역할극을 했다. 점심시간에 식당에서 실수로 친구와 부딪쳐서 식판이 엎어진 경우, 똑같이 열심히 공부했지만 한 명만 성적이 오르고 다른 한 명은 성적이 떨어진 경우, 등 반 아이들이 직접 상황 설정에서부터 대사까지 만들어서 역할극을 했고, 서로 역할을 바꿔서도 해 보도록 했다. 그러고 나서 이런 경우에 나라면 어떤 생각을 할지, 그리고 어떻게 행동하는 게 좋을지에 대해서 서로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내 식판을 엎었으면 그 애 식판도 엎어야죠. 받은 대로 돌려주는 게 맞지 않아요?."

"야! 그건 일부러 한 행동이 아니잖아. 선생님, 저라면 화는 나겠지만 괜찮으니 앞으로는 조심하라고 말한 뒤 같이 바닥을 청소하고 쿨하게 용서할 것 같아요. 그래도 좀 억울하면 밥 먹고 아이스크림 하나 사라고 할 수도 있고요."

"제가 친구 식판을 실수로 엎었다면 진짜 당황하고 미안했을 것 같아요.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 상대방이 괜찮다고 말해주면 정말 고마울 것 같아요."

"원래 주는 대로 받는다고 하잖아요. 내가 다른 사람을 배려해 주면 다른 사람도 저를 배려해 주겠죠. 근데 선생님. 남한테 배려하거나 양보하면 사실 제 기분이 좋아요. 착한 일 한 것 같아서요."





남을 비판하듯이 나를 비판하면 욕먹을 일이 없고, 나를 배려하듯이 남을 배려하면 다툴 사람이 없다.


-조정민 작가의 '사람이 선물이다' 中-





*글 대문 사진: 이용석 작가의 '정원-꿈'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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