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컬비즈니스 교육 중 사업계획서 작성 법에 대한 교육은 실질적인 도움이 되었다. 사업계획서에서 원하는 내용, 빈칸을 채워 넣는 방식, 평가위원이 보는 중점 적인 부분, 가점 용인, 감점 요인 등 기존에 엉망으로 작성했던 사업계획서가 고칠 것 투성이로 보였다. 심지어 읽기 좋은 폰트와 폰트크기까지 있었다.
교육을 들으니 내 사업 계획서는 아예 기획 자체가 잘 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을 내가 원하는 방향에서 바라봤다고 해야 되나? 평가위원이 보고자 하는 것들이 너무 없는 느낌이었다. 내 생각, 내 계획, 내가 생각하는 시장의 반응 등 객관적 수치라기보다는 주관적인 입장의 나열. 그야말로 소설에 가까웠다.
내가 생각한 것을 객관화시키는 작업이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누가 봐도 납득이 갈 수 있도록 주장에 대한 근거가 필요하며, 그런 근거들을 잘 모아 편집하는 작업이 사업계획서의 퀄리티를 높인다고.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고 했던가. 퀄리티를 높이는 영역에 살고 있던 악마와 조우하는 순간이었다.
근거를 찾는 것은 쉽지 않았다. 예를 들면 '글루텐프리시장의 성장성'에 대한 데이터가 필요하다면 꼭 국내 시장이 아닌 세계 시장의 글루텐프리 시장에 대한 데이터가 나온다. 그것도 성장성에 대한 수치가 아닌 미래의 시장에 대한 예측 데이터가 나오는 식이다. 가끔 하나라도 내가 생각하는 것과 정확히 일치하는 데이터를 찾으면 그건 또 출처가 없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다 근거를 바꾸면 된다. 나의 주장에 영향이 없을 정도로 아주 교묘하게.
그렇게 어렵사리 사업계획서의 빈칸을 하나하나 채워가다 보면 어느새 내가 하고 싶은 일과는 전혀 다른 계획서가 나온다. 내가 하고 싶지 않은 일들이, 생각만 해도 골치 아픈 일들이 사업계획에 있다. 지원 사업은 사업계획서를 기준으로 사업 지원금을 사용할 수 있다. 그러니 사업계획서에 있는 내용은 최대한 이행하도록 해야 한다. 그 얘기는 만약 지원 사업에 선정이 된다면 사업계획서 상에 있는 그 귀찮은, 생각만 해도 골치 아픈 일들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럼 고민이 되기 시작한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위해 지원을 받는 것인데.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해야 한다면 내가 이 지원 사업을 받아야 되는 것인가. 이 고민은 아주 적절한 타이밍이에 들었다. 이 고민이 드는 것은 사업계획서의 문제가 아니었다. 사업을 진행함에 있어 사업계획서 상의 해야 되는 일들은 당연히 해야 되는 것들이었다. 사업계획서를 제대로 작성하기 전에는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일들일뿐이다.
창업을 처음 시작하려고 마음먹었을 때는 하고 싶은 일들이 보인다. 하고 싶지 않은 일들은 저만치 뒤로 빠져 움츠러 있다. 보이지도 앉지만 보려고 노력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처음 사업계획서를 작성할 때도 그것들은 나타나지 않았다. 하지만 타인의 시선으로 객관적 자료를 작성하려 할 때 그 일들이 고개를 들고 모습을 드러낸다. 그 디테일에 사는 악마들과 다시 조우하는 시점이다.
악마들은 물러섬이 없다. 포기하는 것이 맞다고, 자신들은 생각보다 만만치 않다고 속삭인다. 내가 아주 싫어하고, 귀찮아하고, 생각만 해도 골치 아픈 문제들이 있을 거라고 포기하면 편하다고 한다. 이 악마의 속삭임은 지원 사업을 받고, 사업을 진행하는 동안에도 계속된다.
그렇기에 사업계획서를 잘 작성하는 일은 필요해 보인다. 내가 생각하는 사업의 청사진과 실제로 해야 되는 일들을 나열해 놓고 봤을 때 갭을 발견할 수 있다. 사업을 위해 귀찮고, 힘들지만 해내야 하는 일들이 명확하게 보인다. 그 일들을 할 수 있는 자신이 있는지, 그리고 그 일들을 모두 해내고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할 수도 있다는 전제 하에서도 창업을 해야겠다는 마음에 확신이 있는지. 확신이 든다면 두 말 않고 직진하면 된다.
사업계획서를 작성한다는 것은 하고자 하는 일의 지도를 그리는 일이었다. 그 길을 갈 수 있는 길인지, 없는 길인지를 확인해 볼 수 있는 아주 중요한 작업이었다. 이 것을 배울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나의 시골행은 의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