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힘들면 힘든거야

고난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승화시키기

by 미니크
아익아해 유재아의 (我益我害 唯在我矣)
- 나에게 이익하고 해로움은 오직 나에게 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한문학원에 다녔다. 사자소학을 떼고, 천자문을 조금 배우다 그만뒀지만 사자소학에서 내 좌우명 찾았다.


어떻게 받아들이냐가 내 심신을 좌우한다


1. 부정


왜 나한테 이런 슬프고 속상하고 황당하고 어이없는 일이 일어났는가 화가 나고 너무 억울하다. 속이 뒤틀리고 컨디션도 안 좋고, 제정신도 아닌 거 같고 이 상황이 그냥 지나갔으면 좋겠다 싶다.


자고 일어나면 없던 일이 되면 좋겠다


왜 그랬을까 곱씹게 되면서 더 깊고 어두운 마음 저 한 구석으로 숨게 되고, 부정적인 생각이 가득 찬다. (보통 이 단계는 본인 마음이 조절 불능이라 더 깊이 빠져든다.)


2. 인정


좋을 때는 행복, 기쁨, 만족, 충만을 느끼는 것처럼

힘들 때는 괴로움, 슬픔, 절망, 분노, 후회해도 된다.


울적하다가 실소도 나고 눈물이 하염없이 흐르다가 갑자기 내가 왜 눈물이 나나 싶으면서 내가 제정신이 아닌 걸 그대로 인정해준다.


내가 많이 힘들구나. 그러니 충분히 아파해도 돼

바깥 생활 (일)에서는 티를 안 내려 노력하는데 집에 오면 상태가 이상하니 내가 진짜 미친 건가 싶다. (실제로는 미치지 않았으니 괜찮다!) 그래서 행복하면 미친 듯이 뛰어다니는 것처럼 답답하면 집에서 노래방에 있는 것처럼 힘껏 소리도 질러도 본다.


하지만 여전히 가슴속 고구마 먹은 듯 꽉 막혀있. 뒷골이 당기면서 열이 올라오고, 장기가 뒤틀리는 거 같고, 정신이 피폐하고 뼈를 깎는 통증을 느끼며 내 모든 감정을 '온전히' 진심으로 받아들여라.


내가 왜 그렇게 느꼈는지, 정확히 어느 부분이 가장 화가 나고 속상하고 억울했는지 등 나를 온전히 해부하면서 나도 몰랐던 나를 더 알게 된다. (연애도 많이 해본 사람이 결혼 잘한다는 이유가 결국 내가 뭘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알게 돼서 나에게 적합한 상대방을 더 잘 고르는 것과 같다.)


3. 수용


그러고 나서 하루 딱 1개 아주 사소한 감사함을 '꾸역꾸역' 생각하고 작성해라.


오늘 비가 안 오고 화창하다는 ,

슬픈 내가 누워있을 곳이라도 있다는 것,

정신은 엉망이어도 멀쩡한 몸이 있다는 것,

내가 아프면 힘들어할 사람이 있다는 것.


이렇게까지 쥐어짜 내나 싶을 정도로 어떤 것이든 좋다.


이것도 어려우면 이 힘듦이 과거 또는 미래에 일어났을 때를 상상하며 지금보다 어떻게든 더 나은 점을 1개만 찾아내서 작성한다.


돈 문제라면 어릴 때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수도 있고, 더 나이 들어서 수입도 없을 때보다 낫다.


집안의 우환이라면 내가 어리거나 나이가 더 들었을 때보다 내가 뭐라도 해볼 수 있는 힘이 남아있 지금이 낫다.


상상하는 자체로 괴롭고, 후회도 들고, 그 후회로 인해 더 큰 괴로움이 느껴지지만 지나 보면 그것은 찰나을 기억하며 견뎌라.


1개, 2개로 점점 생각나는게 늘어나면 다 작성하면 된다.


생각보다 살만한 상황이구나


수용의 단계가 반복되면서 괴로움의 빈도수와 정도가 점차 줄어들고 발생한 괴로움 속의 나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된다. 결국 나한테 이런 일이 일어날 거라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 그리고 원인이 어찌 됐든 꼬리에 꾸리를 무는 부정적인 생각에 내가 나를 갉아먹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만약 이 생각이 안 들면 수용 단계를 지속한다.) 그러다 보면 누구도 아닌 나를 위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지 고민하게 된다.


힘들었던 상황에 내가 어떻게 대처하는게 나를 위한 행동이었을까, 그리고 그런 시련이 다시 온다면 나는 어떻게 행동하고 싶은지 등 과거의 나보다는 미래의 나에 대해 집중하게 된다.


4. 승화


'지치고 힘들고 무기력한 나'에서 '원래의 나'로 돌아오고 싶다는 생각이 점점 강해지고, 마지막에는 그 극심했던 고난을 남한테 울고 웃으며 얘기할 수 있게 된다.


그 고난을 농담처럼 웃으며 얘기한다고 힘들었던 일이 없어지게 되는 것도 아니고, 상기할 때 그때의 감정이 생각나서 힘들 수 있다. 중요한 건 그 빈도수와 정도가 확실히 옅어졌기 때문에 농담이 가능하다는 사실이다. 그때 내 자존감은 한층 높아진다.


누군가는 타인과 나를 비교하며 그래도 내가 더 낫다고 생각하며 힘든 걸 이겨낼 수도 있다. 나 역시도 사람인지라 그럴 때도 있었다. 하지만 타인과의 비교 통한 감사함은 비교할 다른 타인이 생기면 쉽게 변경되므로 약효가 짧다. 그래서 장기적으로 진정 나를 위한 길은 내가 그 상황을 어떻게 느꼈는지 나를 주체로 몸부림치듯 괴롭더라도 내 내면에 더 깊이 부딪쳐보는 것 밖엔 방법이 없다.


나를 알아야 백전백승


이렇게 딱 한 번의 고난을 제대로 승화시키면 다음의 고난은 더 힘들지언정 내가 이겨낼 힘이 있다는 걸 알기에 고통스럽지만 나름 견딜만하다.


괴로움을 승화시켜 자유로워진 내가 있을지, 과거에 매몰되어 허우적거리며 헤어 나오지 못한 내가 있을지, 그건 오직 나에게 달려있다.




사람마다 스트레스의 분야와 견딜 수 있는 정도는 다르다. 누군가는 '그것 갖고 그러냐'라 한다면 마음의 상처는 받겠지만 그 사람을 탓할 필요도 없고 무시하는 게 좋다.


내가 힘들면 힘든 거야


힘들수록 더 오래 걸리지만 조바심 낼 필요는 없다.

내 감정에 집중하자.

내가 있어야 타인도 챙길 수 있다.


보듬어주는 만큼 단단해지 나를 느끼고,

예전보다 내 자신과 세상을 더 넓고 깊게 볼 수 있에 감사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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