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grape Dec 20. 2024

사람에 대한 애정이 없었다면

<흑백요리사> 뒤늦은 정주행 후기

(넷플릭스 <흑백요리사> 캡처)


*본방이 끝난 지 두 달이 넘었지만,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으니 주의하세요*


<흑백요리사>를 뒤늦게 정주행 했다. 주변에서 들린 자잘한 스포들로 어느 정도의 결말은 알고 있었다. (이미 TOP2를 알고 봐서인지, 그들의 대결에서는 이미 정해진 패자에게 혼자만의 위로를 전하곤 했다.) 그래도 즐길거리는 충분했다. 또한 단순한 예능이 아닌 휴먼 드라마 그 자체였다고 말하고 싶다.


처음 100명으로 시작했던 경연은 몇 차례의 미션을 거듭하면서 40명, 20명, 15명, 8명을 거쳐 2명까지 남는다. <흑백요리사>는 그들이 만드는 요리뿐만 아니라 인생 이야기에도 주목한다. '인생을 요리하라', '이름을 건 요리'라는 미션 아래 참가자들은 누구보다 진지하게 임한다.


한 참가자는 '그동안 너무 바쁘게 지내와서 자신을 돌아볼 기회가 없었는데, 덕분에 좋은 시간을 가졌다'라는 후기를 남기기도 했다. 경연에서 이기기 위해 가장 자신 있으면서도 익숙한 요리를 내건 참가자도 있었고, 승패와 상관없이 자신의 길을 가겠다는 마음으로 완전히 새로운 시도를 한 참가자도 있었다. 후반부로 갈수록 남 일 같지 않고, 내 지인을 응원하는 마음마저 들었다. 


(넷플릭스 <흑백요리사> 캡처)
(넷플릭스 <흑백요리사> 캡처)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12화, 마지막 파이널 미션이다. 규칙상 처음부터 닉네임으로 참여했던 '나폴리 맛피아' 셰프는 이때부터 본명인 '권성준'이라는 이름으로 나선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울컥했다. '이름'이라는 것이 이렇게 의미가 깊은 것이었구나. 


TOP2 중 한 명인 에드워드 리 셰프는 '나머지 떡볶이 디저트'를 만들었다. 떡을 주재료로 한 아이스크림으로 다시 떡볶이 떡 모양을 만들고, 그 아래에는 고추장 캐러멜 소스를 뿌렸다. 플레이팅 할 때 고추장 캐러멜을 이리저리 튀도록 투박하게 담길래 희한하다고 생각했는데, 그것도 다 이유가 있었다. 


(넷플릭스 <흑백요리사> 캡처)
(넷플릭스 <흑백요리사> 캡처)


에드워드 리 셰프는 재미교포 2세로, 한국인 정체성에 대한 목표를 가지고 <흑백요리사>에 참가했다. 한국에서 음식을 먹을 때면 양이 너무 많아 꼭 남겼는데, 이것이 곧 한국인의 푸짐한 정임을 깨달았다. 그렇게 떡 몇 개가 남은 떡볶이 모양을 형상화한 디저트로 마지막 요리를 만들었다. 음식을 남기는 것과 모양에서도 아이디어를 얻었다는 점, 그리고 남겨진 떡볶이에서도 의미를 발견했다는 점이 참 감동이었다.


<흑백요리사>가 처음 공개됐을 무렵, 지인이 방송을 봤냐고 물었다. 본 적이 없다고 하자 그는 이렇게 말했었다. '글 쓰는 사람이 이걸 안 보면 어떡하냐'라고. 그만큼 사람에 대한 이야기도 담겨있다고. 이제는 지인이 나에 대해 답답해했던 이유를 알 것 같다. 


자신이 하는 일은 물론 사람에 대한 애정이 없다면 이렇게 만들 수 있었을까. 재미있다는 건 익히 알았지만 예상하지 못한 감동에 놀라버렸다. 특히 마지막 대결은 앞으로도 몇 차례 더 돌려볼 것 같다. 재미있게 본 영화의 배우 인터뷰를 찾아보고, BGM을 몇 번이나 반복해서 들어보듯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