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폴리탄파스타와 버섯크림리소토
설을 맞이해 할아버지를 뵙고 다시 서울로 올라가는 길. 동생은 계속 아쉬워했다. 얼마 전 치과를 다녀왔는데 치료했던 부위가 다시 아파 컨디션이 좋지 않았던 것. 다행히 약을 먹고서는 통증은 가라앉은 듯했지만, 오랜만에 할아버지와 함께 보내는 시간에 집중하지 못한 것 같아 속상해했다. 그런 동생의 마음에 내심 공감하며, 저녁으로는 뭔가 부드러운 음식을 먹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처음 떠오른 것은 리소토였다. 꾸덕하고 느끼한. 전날에는 매콤하고 칼칼한 게 생각나서 닭볶음탕을 해 먹었는데. 바로 다음날 느끼한 음식이 떠오르다니. 나도 참 음식에 진지하다. 레시피를 찾아보니 집에 있는 재료로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전날 닭볶음탕을 만들고 남은 새송이버섯도 활용할 수 있었다.
그러나 크림리소토만을 생각하니 뭔가 아쉬웠다. 이 맛과 양을 보완할 만한 다른 메뉴가 또 없을까. 그러자니 토마토 베이스의 음식이 생각났다. 그렇게 스튜, 파스타가 떠올랐다가 마지막은 나폴리탄파스타로 결정. 이전에 인스타그램에서 봤던 나폴리탄파스타. 마침 예전에 사놓은 후랑크소시지도 있으니 해볼 만했다. 두 가지 메뉴를 만들 생각을 하다니. 맛있는 걸 먹고 싶다는 욕구가 이렇게 강력한 것이었다.
먼저 새송이버섯, 양파, 마늘 등 두 요리에 모두 쓰일 재료를 꺼냈다. 새송이버섯 일부는 다지고, 일부는 편으로 썰었다. 양파 또한 일부는 다지고, 일부는 채 썰었다. 마늘은 통마늘밖에 없었기에 칼손잡이 끝으로 다져줬다. 재료의 양과 손질한 모양이 헷갈리지 않도록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했다. 프랑크소시지는 길게 어슷 썰어둔다. 조리도구도 평소보다 많았다. 프라이팬 두 개에 냄비 한 개. 모처럼 가스레인지가 가득 찼다.
크림리소토부터 시작했다. 프라이팬에 올리브유를 두르고 다진 마늘과 다진 양파, 다진새송이버섯을 먼저 볶는다. 양파가 투명해질 즈음 우유를 붓는다. 우유가 끓으면 슬라이스 체다치즈를 두 장 넣고, 치즈가 녹으면 밥을 넣고 뭉근히 끓여준다. 이때 주걱으로 밥알을 살살 눌러 적당히 으깨고, 소금으로 간을 한다. 이미 익은 쌀인 만큼 오래 끓이지 않아도 됐다. 제법 리소토 같은 모양이 나오니 살짝 흥분했다.
한편 다른 냄비에는 소금을 넣은 물을 끓였다. 그리고 파스타면을 약 7분 정도 삶았다. 나중에 볶을 것을 생각해 살짝 덜 익도록. 여러 과정을 동시에 하니 정신이 없었지만, 한편으로는 내가 셰프라도 된 것 같아 뿌듯하기도 했다. 면을 삶은 물은 버리지 않고 남겨 둔다. 삶은 파스타면에는 약간의 마요네즈를 넣고 버무린다. 면이 붇지 않고, 더 고소해지는 효과도 내기 때문이다.
이제 나폴리탄파스타를 만들 차례. 나폴리탄은 케첩 소스와 소시지를 넣어 만든 파스타로, 일본에서 현지화된 서양 가정식이다. 올리브유를 두른 프라이팬에 다진 마늘과 채썬양파를 넣고 볶는다. 다음에는 어슷 썬 소시지와 편으로 썬 새송이버섯도 넣고 볶는다. 그렇게 재료들이 적당히 익으면 팬의 가운데를 비워주고, 거기에 케첩과 굴소스만을 먼저 살짝 볶는다. 이렇게 하면 케첩의 신맛이 날아가고 맛이 더 깔끔해진다. 이렇게 소스가 어느 정도 볶아지면 다른 재료들과 한꺼번에 섞는다. 마지막으로 면수 한 국자와 버터를 넣고, 면에 소스의 맛이 배도록 센 불에 볶아주면 완성이다.
플레이팅하고 보니 탄수화물 파티가 따로 없다. 예쁜 접시에 따로 담으려다 보니 프라이팬에도 음식이 남았다. 외식을 하면 양이 적어서 눈치 보며 먹게 되는 메뉴인데, 이날 저녁 우리 가족은 두세 번 리필해 가며 든든하게 먹었다. 직접 요리했을 때의 큰 장점이다. 수많은 설거지는 감수해야 하지만.
리소토를 만들어보니 이상한 자신감이 생겼다. 이제 밖에서는 굳이 안 사 먹어도 되겠다는. 하지만 재료와 조리 노하우에 따라 천차만별일 리소토의 맛을 생각하니, 잠시 교만했던 모습을 반성했다. 집에서 리소토를 해 먹었다는 성취감만 남겨 두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