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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이 재밌어지는 기술

<건축가의 공간 일기> (일상을 영감으로 바꾸는 인생 공간) 조성익

by grape

집에서 약 20분 거리에 도서관이 있다는 반가운 소식을 들었었다. 하지만 때는 기온 30도를 훨씬 웃도는 무더위의 한여름. 언덕배기에 있는 그 도서관에 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렇게 몇 개월 후, 어느새 걷기 딱 좋은 가을이 코앞으로 다가온 날, 그 도서관이 생각나 바로 집을 나섰다. 그렇게 처음 갔을 때 보인 책 한 권. 바로 <건축가의 공간 일기>였다.


자신이 다닌 공간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건축가. 내가 막연히 상상했던 멋진 모습 중 하나였다. 음악가의 음악 이야기, 미술가의 그림이야기와 같은 꼴이지만. 건축가의 공간이야기는 느낌이 좀 달랐다.


이 책은 공간에 조금이라도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어렵지 않게 공간의 목소리를 알아채는 방법, 즉 공간을 나만의 관점에서 즐기는 법을 전하고자 했다. 음악 감상이 취미인 사람, 미술 감상이 취미인 사람이 있듯 이 책을 통해 공간 감상을 취미로 삼는 사람이 늘어나는 것. 그리고 자신만의 관점으로 발견한 인생 공간을 다른 사람과 공유하는 것. 소박하지만 야심 찬 상상을 하며 이 책을 썼다. _'프롤로그' 11쪽


식당이나 카페, 갤러리에 관심이 많은 나. 사람들과 함께 혹은 혼자만의 시간을 잘 보내고 싶기 때문이다. 자연스레 공간을 향한 관심도 생기면서 건축, 인테리어와 같은 전문 영역도 조금씩 궁금해하곤 했다. 나름 인스타그램이나 여기 브런치에도 내가 다녀온 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남겨왔다. 전문지식은 없으니, 그곳들을 다녀오면서 보고 느낀 것들을 기록해 놓은 일기에 가까웠다. 그런데 비슷한 모티브를 가진 책을 발견한 것이다. 기록하고 남기는 행위에 남다른 의미를 부여하는 모습들도 눈에 띄었다.


하지만 이만큼 반가웠던 첫인상에 비해, 처음부터 오래 읽지는 못했다. 이 책 말고도 눈길이 가는 다른 책들 몇 권도 있었기 때문이다. 타이밍이 안 맞았을 수도. 결국 맨 앞의 한 두 챕터만 읽고 나왔었다. 다시 몇 개월 후, 다른 도서관에서 빌려갈 책을 찾던 내 눈에 이 책이 다시 들어왔다. 책을 따로 정하지 않았기에 더 반갑기까지 했다. '지금인가 보다.'



공간에 대한 이야기인 만큼, 결국 사람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같은 공간이어도 사람의 성향에 따라 달리 볼 수 있다. 그동안 나 스스로도 이해하기 어려웠던 내 감정적인 부분들(혼자 있고 싶지만, 방구석에 처박혀 있기는 싫은 그런 기분)이 비슷하게 묘사된 내용들도 많았다. 그렇게 크고 작은 응원들을 받기도 했다.


감정 대피, 집중력을 주는 몰입, 느린 위로 등 공간 감상을 통해 삶의 질을 높이는 노하우들 또한 가득 담겨 있다. 예시로 언급된 공간들 중에는 해외도 있어 당장 찾아가기 어렵지만, 작가는 계속 강조한다. 그만한 곳을 내가 머무는 곳, 내 가까운 곳에도 충분히 옮겨올 수 있다고. 일종의 기술을 전수받은 느낌이다. 앞으로 조금 더 재미있게 일상을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공간 감상에 꼭 필요한 활동. 걷는 걸 좋아하는 내 모습도 새삼 기특하다.






몰입은 입력된 정보를 나만의 이야기로 재해석하도록 도와준다. 단순히 정보를 많이 입력하기 위해서라면 멀티태스킹에 적합한 사무실에 있는 게 맞다. 하지만 자신만의 관점을 발견하려면 '몰입의 공간'에 나를 두어야 한다.
_'몰입을 원한다면 몰입의 공간으로' 95쪽
타이핑은 목표를 향해 빠르게 나아가는 글을 쓰는데 유리하다면, 손글씨는 생각과 생각 사이에 여백을 만들어 사색적인 문장을 만드는 데 유리하다.
_'아날로그 공간이 주는 생각의 여백' 106쪽
기차역은 군중 속 익명성과 유대감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공간이다. 그래서 사람 때문에 귀찮지도, 혼자여서 외롭지도 않은 공간이다.
_'기차역에는 사람이 있다' 115쪽


나를 닮은 공간을 꾸미려면 나의 취향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이야기는 맞다. 하지만 그 취향이 1950년대 북유럽 의자에 대한 선호냐 하면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그 북유럽 의자를 통해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가'이다. ...독특한 인테리어의 문제가 아니다. '내가 가치를 두는 일이 인테리어를 통해 일어나는가'의 문제다.
_'거장 건축가의 핑크하우스' 171~172쪽
무엇이 나다운 것인지는 스스로 깨달아야 하지만, 그 과정에서 우리는 타인의 시선을 무시할 수 없다. 아니, 타인의 시선을 통해 나의 개성은 더욱 성장하고 단단해진다. 일단 친구부터 초대하자. 그것을 계기로 공간을 꾸미다 보면 나의 내면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때로는 '실행 먼저, 생각 나중'으로 흘러가는 것도 방법이다.
_'타인을 내 공간에 들이는 방법' 184쪽
나만의 아지트처럼 잠시 머무는 공간이라면, 생활감은 오히려 공간의 신선감을 감소시키는 역작용을 한다. 아지트에 생활감이 생겨서 너무 편안해지면, 어딘가 비밀스러운 공간으로 숨어들 때의 스릴이 사라진다. 따라서 나만의 아지트를 만들 때 중요한 것은 '생활감의 강제 종료'다. 필요한 살림 도구를 다 갖춰두지 말고 조금 불편하더라도 공간의 신선도를 유지해야 한다.
_'톰 소여의 아지트에는 아무것도 없다' 189쪽


늘 나를 두던 익숙한 내 집은 내 공간 경험의 원점이다. 잠시 익숙한 원점을 벗어나 미지의 좌표, 미지의 집에 나를 두어보는 것. 그리고 그 집이 마련해 둔 일상에 몸을 맡기고 자신에게 일어난 변화를 관찰해 보는 것. 이렇게 집을 탐험하다 보면 종종 우리는 내가 바라던 행복에 더 깊이 공감해 주는 집을 만나게 된다. 삶에 대한 나의 이해가 공간을 통해 확장되는 것이다.
_'하룻밤, 시간을 공간으로 빚는다면' 209쪽
내가 사는 동네를 자세히 들여다보라. 산책도 하고 안 가본 골목에 들어가 보기도 하면서 공간을 음미해 보라. 어느 동네든 자주 다니며 세심하게 관찰하다 보면 발 밑의 보물을 발견할 수 있다. 동네를 탐험하다 보면 나를 두고 싶은 공간 목록이 생긴다. ...좋은 공간은 어디에나 있다. 우리의 발견을 기다리면서.
_'동네를 빵집 하나로 고를 순 없지만' 218~219쪽
명작 건물은 인류 역사의 위대함을 깨닫게 하지만, 일상의 건물은 당장이라도 우리 삶에 적용할 수 있는 현재의 지혜를 나눠준다. ... 공간은 나와 마주하고 타인과 대면하는 무대다. 우리가 좋은 공간에 나를 두는 이유를 사랑하고, 그 안에서 위로를 받는 이유는 공간이 사람을 품기 때문이다. ...도시를 채운 99%의 일상 공간, 그중 하나를 운 좋게 만나 나만의 단골 카페로 삼고, 나다운 집으로 꾸미고, 친구를 초대한다. 공간에서 시간을 보내며 우리는 성장한다. 공간에 시간이 쌓이면 일상 공간은 인생 공간이 된다.
_'도시의 숨겨진 99%를 여행하는 법' 229, 231~23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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