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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ape Feb 27. 2023

나는 이 향기를 좋아해

내 취향인 것들로 가득 채운 하루

친구네 집에 놀러 갔다가 핸드워시를 썼는데, 향이 무척 좋았다. 브랜드를 기억해 두었다가 직접 매장을 가보기로 했다. 사실 그동안 핸드크림이나 립밤은 선물 받은 것들 중에서 차례로 써오고 있었다. 모두 향과 색이 무난해서 덕분에 잘 써오고 있었지만. 이번만큼은 뭔가 욕심이 났다.


집에서 가까운 그 매장은 버스를 타고 가면 금방 도착할 거리였다. 하지만 최근 한낮은 걷기에도 그리 춥지 않았던 날씨. 그렇게 나의 뚜벅이 코스가 시작되었다.


인스타그램 저장 목록을 뒤져보았다. 그 매장 부근에 다른 구경거리는 또 없나. 가볼 만한 무료 전시들을 모아놓은 게시물들 사이. 규모는 크지 않지만 궁금한데... 거리도 가깝네!


여기에 하나 더. 지난번에 가봤던 한 카페의 2호점이 생긴 것도 이 근처였는데? 그렇게 매장, 전시 갤러리, 카페를 들르는 나만의 뚜벅이 코스가 탄생했다.



먼저 매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누군가와 만날 약속 없이 혼자 다닐 예정이었지만, 그렇다고 옷을 너무 편하게(?) 입지는 않았다. 렌즈도 꼈다. 뭔가 제대로 기분전환을 하고 싶었나 보다. 그렇게 30여분을 걸어 매장에 도착했다.


안으로 들어서자 핸드워시로 익숙한 향기가 코를 찔렀다. 예전 대학교 교양수업 과제로 허브농원을 방문했던 때가 떠올랐다. 허브 기념품 매장에서 향에 취해 나른하게 쉬고 있던 강아지의 모습... 아무튼.


핸드크림부터 섞이지 않게 차례대로 조금씩 발라보고. 향수를 시향 해보고. 핸드워시들로 손을 씻어보았다. 온갖 향들이 묻어나는 가운데, 가장 맘에 드는 한 가지 향을 찾았다. 만약 여기서 제품을 산다면 이 향을 사야지.


'나는 이 브랜드의 이 향기를 좋아해.' 무언가를 안다는 허세가 아니라. 그동안 이 브랜드에 대해 잘 몰랐다는 무지를 탓하는 것도 아니라. 나를 표현할 수 있는 또 한 가지 특징을 찾은 순간이었다. 묘하게 감동이었다.


매장을 나온 다음에는 다시 뚜벅이로 걸으며, 전시 갤러리에서 작품을 구경하고, 마지막 코스인 카페에서는 마침 딱 하나 생긴 자리에서 비치된 매거진을 읽었다. 내 취향인 것들로 가득 채운 하루였다.


상대의 필요를 보고 챙겨주는 것도 좋아하지만. 나 스스로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조금씩 발견하고, 그걸 즐길 줄 아는 사람도 되고 싶다. 그 행복이 돌고 돌아 내 주변에도 흘러갈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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