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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ape Mar 22. 2023

책상 서랍도 열어봐야지

봄철의 책상 정리

틈틈이 정리하며 지낸다고는 했는데, 내 방 책상은 여전히 엉망이었다. 무언가 생산적인 일을 하려면 책상에 앉아야 했는데, (모든 게 핑계지만) 그러기 싫었다. 필요한 물품들을 쓰기 편하고 보기 좋게, 책상의 가용 범위가 넓어지도록 정리해야 했다. 앉고 싶은 책상을 만들고 싶었다.


먼저 책상 위의 자잘한 물건들을 쏟아내 펼쳤다. 사탕, 초콜릿, 캐러멜 등의 간식거리부터 이번 생일선물로 받은 핸드크림과 향 제품들, 그 외 작은 소품들이었다. 우선 이렇게 크게 크게 분류를 한 다음, 미처 버리지 못하고 남아있던 오래된 쓰레기들도 버렸다.


그다음, 드디어 이 친구들을 데려왔다. 바로 거북이 인형 주머니다. 퀼트를 배우시는 엄마가 만들어주신 것이다. 엄마와 함께 퀼트 선생님 작업실에 놀러 갔다가 견본을 보고 귀엽다고 했더니, 엄마의 다음 퀼트 수업 도안은 이 거북이가 되었다.


그렇게 크기가 좀 더 큰 엄마 거북이, 작은 아기 거북이 두 마리가 우리 집으로 왔다. 얼마동안 장식품으로만 놓여있다가 드디어 자리를 찾았다. 엄마 거북이에는 간식거리를, 아기 거북이에는 키링과 배지 등의 액세서리들을 담은 것이다. 그렇게 내 책상 위 귀여운 인형들이 늘어났다.




책상 정리를 할 때마다 생기는 고민이 있다. 물건들을 눈에 보이는 자리에 어떻게 두어야 할 것인가. 책상 서랍 안에 넣어두면 공간은 마련할 수 있지만, 서서히 내 기억에서 잊힐 염려가 있다. 필요해서 사놓고는,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두어서 잊어버린 적이 종종 있었다.


그래서 이번 책상 정리를 하면서는 버리거나 치우는 과정만이 아닌, 서랍 속에 무엇이 있었는지 다시 찾아보는 시간도 가졌다. 어떤 물건을 어디에 어떻게 넣어놨는지. 나아가서는 당시의 내가 어떤 생각으로 이렇게 정리해 놓았을지 새삼 가늠을 해보기도 했다. 그러면서 지금 쓸만하다고 생각되는 것들은 책상 위 보이는 곳으로 꺼내두었다.



지난겨울은 꽤 추웠고 눈도 많이 왔었다. 한 해의 마무리와 새해의 시작을 맞이하게 한 계절이기도 했다. 계절의 변화는 곧 시간의 흐름을 체감하게 한다. 어느새 3월. 어디서 들으니 '올해를 새로 시작할 세 번째 기회'란다. 바깥 풍경만 봐도 푸릇푸릇하고 쨍하니, 채도와 명도가 부쩍 높아졌다.


그동안 나는 잘 지내왔을까. 큰일도 없었지만, 달라진 일도 없는 것 같아 조금 씁쓸하기도 하다. 이 와중에 새롭고 따뜻한, 생동하는 봄의 기운을 빌려 감히 이야기해 본다면. 지금 이렇게 보낼 수 있는 시간도 다시없을 것이다. 상대적으로 미숙할 뿐, 이 또한 지나가면 다시 돌아오지 않을 시간이다.


그러니 '보이는 책상'만 치우지 말고, 좀 더 시간이 있는 만큼 '책상 서랍'도 들여다보며 살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감정이란 나와 함께 하는 사람들, 주변의 일과 현상들을 보다 깊고 풍성히 들여다보도록 도와주지만, 나 스스로에게는 별별 쓸데없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부작용을 일으키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감정이 풍부한 나의 이러한 특징을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감정을 통해 잘 얻고, 잘 느끼고, 잘 생각한 다음 마지막으로 잘 흘려보내고 싶다. 이 흘려보내는 것을 잘하는 게 바로 내공인 것도 같고.


봄의 풍경을 창밖으로 보지만 말고, 직접 나가서 따뜻한 햇볕을 좀 쬐어야겠다. 봄을 더 확실히 느낄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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