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실은 40대가 되기 전에 해외에서 일을 한 경험이 있습니다. 대학생때였는데요.저는 막연히 호주에서 좋은 잡을 구할 수 있을 것이라는 순진한 생각으로 워킹홀리데이를떠났었습니다.하지만 당시 일자리를 찾으면서 저는현실을 보았고, 제 현재의 한계를 느끼는계기가 되었습니다.
호주로 워킹홀리데이를 가면서, 호주 현지에서 취업을 위해, 이력서를 20장 정도 준비해서 갔었습니다. 지금도 생각해보면 이불킥을 찰 만큼, 형편없었던 저의 첫 이력서. 저는 호주에서 당시 워홀러에게 인기였던 농장으로의 취업보다는 도시에서 영어도 배우고, 호주도 느끼고 싶었었습니다. 그래서 카페나 식당에 취업을 원했었습니다.
호주 워홀의 일반적인 모습
그런데 저의 이력서에는 대학 시절의 학회와 정당에서의 아르바이트 경험이 들어가 있었습니다. 그 중 쓸만한 것은 대학1년때 1년간 일했던 '서브웨이'에서의 아르바이트 경험 정도랄까요? 저는 서브웨이에서 알바로 시작해서 부점장까지 했었던 경험을 갖고 있었습니다. 하하
저는 이력서를 들고 집을 나섰습니다. 집 근처에 점찍어놨던 쿠키 가게가 있었습니다. 집에서 무척이나 가까운 것은 물론이고, 가게 점원들이 이쁜 유니폼을 입고 있었고, 다들 누가봐도 호주 사람들이였기에 영어를 배우며 일하기 좋아보였습니다. 제가 가게에 들어서자 모두들 반가운 미소로 반겨주더군요. 아마 당연히 손님인줄 알았을 겁니다. 저는 매니저를 찾았고, 여기서 일을 하고 싶다고 이야기하며 이력서를 건넸습니다. 저의 이력서를 살펴본 매니저는 지금 현재 자리가 없다며, 나중에 연락주겠다며, 나를 가게 밖으로 안내했습니다. 첫 실패. 저는 왜 그렇게 무작정 찾아들어갔을요?아마도 그 매니저의 눈엔 영어도 못하는 친구가 판매를 담당하고 싶어하는게 어이가 없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이제외선 듭니다. 저는 참 제 입장만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저는 마치 진격의 거인인 마냥, 집 근처에 카페며 식당을 다 찾아들어갔습니다. 무작정 이력서를 건네고, 일을 하고 싶다고 이야기하는 저를, 그들은 어떻게 생각했을까요? 그러던 중, 동네의 케밥집 사장님이 저에게 관심을 보여주셨습니다. 같이 자리에 앉아, 저의 이력서를 찬찬히 훑어보더니 사장님께서 여러가지 질문들을 하셨습니다. 내가 어디사는지, 이력서에 적힌 정당의 이름을 보며, 여긴 뭐하는 곳인지, 이런 질문들을 저에게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띄엄띄엄 대답하고 있었는데, 앞으로 제가 할 일은 청소와 테이블 닦기 등이라며, 내일부터 출근하라고 하는 겁니다. 이게 왠일 일을 구하러 나와서 2시간도 안된 시간에 내가 일을 구하다니! 정말 기뻤습니다. 영어를 배우고자 하는 나의 목적엔 조금 맞지 않는것 같았지만, 일을 구했다는게 기뻤습니다! 내가 케밥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다니, 한국에서는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 벌어진 것이였습니다.
인터넷에서 찾은 그때의 케밥집과 가장 유사한 집
그렇게 집에 돌아와, 같이 살던 친구에게 일을 구했다고 자랑을 했습니다. 친구도 제가 이렇게 일을 빠르게 구할 꺼라 생각을 못했는지, 본인도 이제 일을 구하겠다며, 당장 나가겠다며, 시티로 나가더군요. 그렇게 기뻐하던 중, 저는 전화를 받았습니다. 케밥집 사장님이였는데, 아내분이 아르바이트 고용을 하지 말라고 해서, 어쩔 수 없이 나를 뽑기로 했던 걸 취소하기로 했다며, 내일 출근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해주셨습니다. 하하 그렇지, 이렇게 쉽게 일이 구해지는게 어째 영 이상한 느낌이였는데, 역시나 제 느낌은 틀리지 않더군요.
이렇게 무작정 길거리를 다니며, 일을 구하는 것이 효율적이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저도 일자리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 시내의 유학원을 찾기로 하였습니다. 글구 친구가 집에 돌아와서는 제가 있었던 일을 얘기해주니, 박장대소하며, 거기 케밥집 가보고 싶다며, 다음날 점심을 거기로 먹으러 가자고 해서, 제가 '너 같음 가겠냐?'라고 했었습니다. 그때 제 친구가 엄청 웃던 그 모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친구야, 그렇게 웃겼니?응?
저의 첫 해외 취업은 쉽지 않았고, 저는 결국 건설 현장에서 속칭 노가다를 뛰게 되었습니다. 아침에 매니저가 저를 태우러 오면, 저는준비한 점심을 든 채 같이 차에 타고, 현장에 가서, 벽돌을 나르고, 자재들을 날랐습니다. 날씨가 너무나 더워, 이 곳이 지옥인가 싶을 정도 였습니다. 제가 굳이 호주까지 와서 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 1주일을 하고 나서 이 일은 그만두게 되었는데, 매일매일 현금으로 일당을 줘서 그 덕에 일주일이라도 버틸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일이 끝난 후, 함께 맥주를 마시며, 호주에서의 삶에 대해 이야기한게 기억이 납니다. 다들 외국인 노동자였기에...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경험도 없는 저를 노가다에서 받아준게 더 신기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나서 일주일간 잡 서칭 후 결국제가 얻은 일자리는 한국 식당이였습니다. 하하, 정말 호주까지 와서 한국식당에서 일하고 싶지는 않았었는데, 저를 받아주는 곳은 이 곳 뿐 이였습니다. 현실을 제가 직시하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영어를 잘 못하는 한국인이 호주에서 일할 수 있는 곳은 결국 한국인 커뮤니티 뿐 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실제로 많은
한국 학생들이 청소나 식당일들을 하고 있었는데
대부분 한국 사장님 밑에서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다행이라면 서빙을 담당하는 직원들은 모두 현지 호주인들이였고, 주방에서도 쉐프가 영어가 네이티브인 차이니즈였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래서 일은 영어로 진행되었고, 사장도 터키 사람인 관계로 영어를 써야하는 환경에 놓이긴 했습니다.
저는 키친핸드라는 롤을 맡았는데, 이른바 주방에서 일어나는 모든 잡일을 하는 역할 이였습니다. 설겆이에 청소에 그런 궃은 일을 도맡아 하였는데, 고기 불판 닦는데 가장 많은 시간을 썼었습니다. 이게 쉬운 일이 아니더군요. 근데제가 영어를 잘 못하니 늘 과묵하게 열심히 불판을 닦는 모습을 사장님이 굉장히 잘 보셔서, 저는 1달만에 승진하여 어시턴트 쿡 역할을 맡게되고, 키친 핸드는 새롭게 뽑게 되었습니다. 물론 주급도 올라갔구요. 저는 주로 비빔밥이랑 재료 손질을 담당하게 되었었는데, 제가 만든 음식들을 돈 내고 사람들이 사먹는다는게 제게는 너무너무 신기한 경험이였습니다. 그때 저는 제법 많은 돈을 벌었고, 이대로라면 한국에 돌아가지 않아도 잘 먹고 잘 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가 되었습니다. 호주 생활도 점차 안정되어 갔지만, 저의 목적은 영어를 배우는데도 있었는데, 영어를 구사할 일이 거의 없다는 것은 늘 맘에 걸리곤 했었습니다. 하지만 식당에서 일하며 늘 맛있는 식사에 높은 호주 주급을 받다보니 이 생활의 달콤함에 빠지게 되더군요
저는 돈도 벌었겠다, 이제일하지 않은 시간에 영어 튜터를 구해서 영어를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이건 정말 잘한 선택이였던 것 같습니다. 저는 튜터를 통해, 호주의 친구들을 사귀게 되었고, 이리저리 초대를 받아, 호주 현지인 파티들에 참석을 하고 튜터가 나이가 비슷하다보니 친구처럼 이곳저곳을 함께 다니게 되었습니다.이때부터 영어를 많이 쓰게 되었는데, 그 시간이 너무 짧았다는게 문제였네요.
저는 여기 생활에 더 젖으면, 한국에 못 돌아갈 수도 있다는 생각에, 호주 생활을 6개월 정도로 마무리하고 한국으로 돌아가서 대학을 졸업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근데 재밌는건, 호주에서 돌아오자마자 토익을 봤었는데, 인생 최고점이 나왔다라는거...이걸로 취업을 했다고 해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 마지막에 호주 튜터랑 놀러다닌게 빛을 발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6개월 정도 더 놀다왔으면 영어가 훨씬 많이 늘었을 것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