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얏트 호텔체인의 프리츠커가 복원한 시카고 애슬레틱 어소시에이션 호텔
현대 시카고의 가장 부자는 프리츠커 가문이다.
19세기 후반 시카고에 정착한 유태인 가문으로, 하얏트 호텔 체인을 만들고 지금껏 운영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시카고를 돌아다니다 보면, 건축가 프랭크 게리가 지은 프리츠커 파빌리온부터, 대학이나 각종 도서관까지 프리츠커의 이름이 참 많이 붙어있다. 이게 다 미국에서 손꼽히는 부자, 프리츠커 가문의 기부로 이루어져서 이다.
이중 우리에게 가장 유명한 프리츠커의 기부는 건축계의 노벨상 프리츠커 상이다. 하얏트 호텔 체인의 창업자 제이 프리츠커는 건축의 도시 시카고에서 태어나 자란지라 자연스레 유명한 건축가의 대규모 건축물을 많이 접했다. 1967년 그는 미완성이던 한 높은 천장고의 중정형 빌딩(건축가 존 포트만의 작품임)을 사들여 하얏트 리젠시 애틀랜타 호텔로 개관했다. 여기서 훌륭한 건축 디자인이 얼마나 손님과 일하는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는 가를 깨달았다.
노벨상에 건축 분야가 없는 것이 유감이던 제이 프리츠커와 부인 신디는 자신의 하얏트 재단에서 선정하는 건축상을 1979년에 탄생시켰다. 이게 지난 40여 년간 꾸준한 수상자를 낸 프리츠커 상이다. 이제는 대한민국 국토교통부가 발 벗고 상을 타기 위한 프로젝트를 발동할 만큼, 건축계의 진짜 노벨상이 되었다.
현세의 시카고에서 가장 부유한 이 프리츠커 가문의 체취를 잘 느낄 수 있는 곳은,
바로 시카고 다운타운 한복판의 셱셱 버거 건물이다.
한국에선 아직 긴 줄을 서야 먹을 수 있다는 셱셱 버거. 그러니 한국 사람들이 시카고 시내 밀레니엄 파크를 구경 왔다가 바로 맞은편의 이곳을 발견하고 반갑게 잘 들리는 곳이다.
고개를 들면 나무가 아닌 숲이 보이나니.
셱셱 버거가 일층 반쪽에 입주하고 있는 유서 깊은 건물은 바로 시카고 애슬레틱 어소시에이션이다.
시카고란 도시가 있게 한 19세기의 시카고 사회 명사, 마셜 필드나 사이러스 맥코믹 같은 사람들끼리 교류하고자 만든 남성 전용 소셜 클럽 건물이다. 백여 년 넘게 운영되다 특권층 소셜 클럽의 입지가 전 세계적으로 느슨해지던 2007년에 닫았다.
이에 제이 프리츠커의 아들인 존 프리츠커가 이를 매입했다. 하얏트의 호텔 개발 노하우를 살려 아주 고풍스러운 부띠크 호텔로 재탄생시켰다. 그리고 맨 꼭대기 루프탑 레스토랑에 프리츠커 상을 탄생시킨, 엄마 이름 신디를 붙였다. 앤디 워홀이 그린 당대의 사교 명사 엄마 신디의 실크스크린을 레스토랑 한가운데 걸고서 말이다.
시카고의 썸 타는 모든 선남선녀들이 다 모인다는 신디 루프탑의 발코니에선 미시간 호수의 아름다운 전경이 펼쳐진다.
눈 아래론 아버지의 이름을 딴 제이 프리츠커 파빌리온에서의 공연이 넓게 펼쳐진다.
현재 이들의 사촌인 J.B. 프리츠커도 무려 JFK의 조카 케네디를 이기고 일리노이주 주지사에 등극했다.
그렇게 프리츠커 패밀리가 다 장악한 시카고다.
이렇게 여기서 맥주 한잔 서서 마시면서 현세대 이곳의 최고 재벌, 프리츠커 가문의 시카고를 한번 구경해 보는 거다.
시카고 애슬래틱 어소시에이션은 그 자체가 올드 시카고 역사의 정수 같은 곳이다.
시카고가 대도시로 성장하는데 그 기초를 닦은 정재계 인물들이 모여 베니치안 고딕 형태로 1893년 완공했다.
그들만의 수영장, 테니스클럽, 농구코트, 펜싱장 등을 한 빌딩 안에 차곡차곡 쌓고 교류하던 최고급 사교 클럽이다.
위 사진상의 창문 없는 맨 위층 붉은 벽돌층이 예전의 테니스 코트다. (오른쪽 귀퉁이 유리 두 개는 테니스 사무실이다) 자세히 보면 창문틀 건물 장식에도 테니스 문양이 많이 들어가 있다. 당시 상류층 남성들에게는 테니스야 말로 신사의 스포츠 여서다.
이 시카고 애슬래틱 어소시에이션 건물은 1층은 셱셱 버거를 비롯한 임대상가가 차지하고 있다.
셱셱 버거가 위치한 자리는 예전에 클럽의 터키식 사우나 자리다.
1층 메자닌의 공중에 붕 떠 있는 이상한 위치의 공중화장실은 사실 수영장 락커룸 자리여서 그렇다.
1층 안쪽에는 그들만의 수영장이 있었다. 지금은 연회장으로 쓰이는데, 바닥은 예전 수영장처럼 타일로 레인을 그려놓았다.
계단을 타고 누구나 올라가 볼 수 있는 2층부터는 현재 시카고 애슬레틱 어소시에이션 호텔로 사용되고 있다.
누구나 방문할 수 있는 호텔 로비와 카페, 레스토랑이 있다.
정말 억 소리 나는 예전 최고급 사교클럽의 그 공간 그대로 사용되고 있다. 진중한 어두운 오크 빛 인테리어에 가득한 햇살이 마치 호그와트에 와 있는 것 같다. 시카고 노블들의 은밀한 공간이 시대가 변해 누구에게나 옛날의 속살을 내어주다니 참 눈호강이다.
게다가 이곳의 커피는 스타벅스보다 싸고 은밀하다. 단지에 철철 넘치게 담아주는 양파수프와 치즈버거도 상류사회 안주인의 초대로 대접받는 듯한 분위기에 감탄할 따름이다.
계단 한층 올라오면 시카고 오리지널 블루 블러드의 영화 속 한 장면 주인공이 될 수 있는데,
나는 왜 그동안 1층의 뉴욕 프랜차이즈, 셱셱 버거의 플라스틱 의자의 식객이 되었었던가.
호텔 프런트 데스크가 있는 2층 안쪽에는 밀크 룸이라는 곳이 있다. 예전 금주법 시대에 이 사교클럽 멤버끼리 고급술을 몰래 홀짝거렸던 은밀한 조그맣고 비싼 바다. 아직도 매우 비싼 가격으로 영업 중이다.
그 안쪽으로 한발 더 내딛으면 너른 멋진 공간이 나타난다. 옛날 소셜 클럽 회원들끼리 하얀 와이셔츠 팔뚝 걷고 당구나 다트게임이나 체스나 볼링이나 등등을 하며 놀던 게임룸이다. 지금도 대중에게 그 용도 그대로 오픈하는지라 몇 명의 그룹으로 가서 놀기 좋다. 그냥 호텔 이용객인 척하고 써도 되고, 혹은 저렴한 팝콘이나 핫도그 맥주 정도 시키며 놀아도 된다.
이 게임 룸에는 하나의 도시전설이 있다.
바로 야구단 시카고 컵스 로고의 기원이 이곳이다. 시카고 애슬레틱 클럽의 마크는 처음부터 위의 파란 빨간 C 형태였다. 후레시 민트, 스피아 민트로 유명한 미국의 껌 재벌, 리글리는 이 클럽의 멤버였다.
그가 1921년 시카고 컵스 야구단을 사면서 이 클럽의 마크를 야구단에 무단으로 가져다 썼단다. 저작권이란 개념이 당최 없던 시절의 이야기다. 그렇게 저 소셜 클럽의 로고는 시카고 컵스의 로고로 전 세계에 알려졌다.
몇 년 전 이 소셜 클럽 건물을 호텔로 오픈하면서, 현 시카고 컵스 구단주가 이곳을 방문했단다.
그래서 이 호텔의 소유주 존 프리츠커가 조크를 던졌단다.
너네 계속 시카고 컵스 로고 써도 돼. 내가 허락해 줄게 라고. ㅎㅎ
이 오리지널 시카고 컵스 로고 C 마크는 게임룸 안의 공던지기 레인 벽에 크게 박혀 있다. 다른 객실층 나무 바닥이나 연회장의 스테인드 글라스, 혹은 벽장식 리넨 등에도 오리지널 상태 그대로 남아 있다.
이 건물 곳곳을 다니면 탄성만 나올 정도로 이 내부는 너무 훌륭한 복원공사를 거쳤다.
건축계의 노벨상을 하사하는 프리츠커 패밀리답게, 이 건축물의 복원과 호텔 전환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백삼십 년 전 오크 기둥의 세부 장식 하나까지 다 떼어내 닦아내고 다시 조립하는 수고를 거쳤다.
이 사진 화이트 룸에는 종유석 같은 굉장히 독특한 천장 돌기가 있다. 모던을 추구하던 시기에 다 평 패널로 막혀 이후 아무도 그 존재를 몰랐단다.
복원공사 중 천장을 뜯으니 저 돌기가 구석에 단 하나만이 남아있었는데 그걸 기준으로 전체를 다 복원하여 예전의 영화를 되살렸다. 심지어 저 돌기들 끝에 작은 에디슨 전구도 복원해서 노란 불이 어여쁘게 들어온다.
이 건물의 엘리베이터 안 인테리어다. 농구장과 펜싱장 등을 철거할 때 나온 바닥재를 그대로 엘리베이터 안의 마감재로 재사용했다. 펜싱장의 바닥재 그대로 들어다 붙여서 펜서즈 클럽이라는 마크가 남아있다.
물론 이런 역사적인 랜드마크 건물의 복원을 제대로 하면 이점이 있다. 시카고 시와 일리노이 주에서 세금 크레디트를 양쪽으로 준다. 하지만 두 정부기관에서 요구하는 수준을 훌쩍 뛰어넘는 슈퍼 고퀄리티로 천문학적인 돈을 들여 건물을 살려낸 이유는 아마 이것일 것이다.
우리 프리츠커 가문은 시카고란 대도시가 생겨날 때부터 살기 시작한 레전더리 부자고,
이 건물은 시카고의 찬란한 역사다.
이는 프리츠커 건축상을 만든 부모님의 유지를 받드는 내가 할 레벨의 일이다 라는.
심지어 이 사업을 진행한 존 프리츠커의 외할아버지(Hugo Friend) 조차도 1906년에 이 시카고 애슬레틱 어소시에이션 멤버로 아테네 올림픽에 출전하셨다니. 시카고 명문 가문의 명예를 걸고 쇠락해 가던 이 역사적 랜드마크 건물을 생생히 살려냈다. 사업가로서 향후 호텔 브랜드 창출을 셈하는 비즈니스적 마인드와, 가진 부를 사회에 기여하는 사회 사업가로서도 매우 오버해서 열일 한 복원+개발 건물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일반적인 관광객에게 시카고에서 가봐야 하는 건축물은 윌리스 타워나 행콕 타워다만.
시카고를 그 기원부터 알고 싶다면,
과거의 영화와 그리고 현재가 있는 이 시카고 애슬래틱 어소시에이션 건물이다.
마지막으로, 이 호텔의 객실은 매우 레트로 하게 이렇게 생겼다. 침대 발받침이 기계체조 도마다.
예전에 이곳이 운동 중심의 사교클럽이었던 것에 착안해 객실의 모든 가구나 벽의 레이아웃조차 예전 운동 기구 스타일이다. 심지어 가운조차 복싱선수의 그것처럼 생겼다.
호텔 침대에 놓여있는 장식용 긴 러너에는 이런 말이 쓰여있다.
나는 시카고의 모든 것을 그리워해요. 1월과 2월의 (추위만) 빼고. 개리 콜(시카고 출신으로 할리우드에서 활동하는 유명 배우)
I Miss everything about Chicago except January and February.-Gary Cole
나도 그렇다. 너무나 좋았던 시카고 살기에서 단지 일이월만은, 머릿속이 눈보라처럼 뿌옇네.
참고문헌:
https://www.pritzkerprize.com/about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2019030613743640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