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원호 Nov 17. 2019

그들만의 작은 천국 3화

가을 단편소설집 세 번째 이야기 : 고통의 정원

세 번째 이야기 : 고통의 정원      



그녀는 잠을 잘 수 없었다. 고통이 그녀를 안에서부터 갉아먹고 있었다. 잠시 눈을 감으면 죄책감과 그리움이 마음속에서 활화산처럼 터져 나왔다. 끅끅거리는 울음소리로 그 슬픔을 억누르고 또 억눌렀지만 기어코 비어져 나온 눈물은 온몸을 적시며 뚝뚝 떨어져 내렸다. 그녀는 자기 자신을 꼬옥 붙들고 바들거렸다. 그러지 않으면 모든 게 사라져 버릴 것만 같았다.     

벌써 일주일 째였다. 조금 지나면 괜찮아질 것이라던 고통은 며칠이 지나도 조금도 사그라들지 않아서 첫날 그대로만큼 아팠다. 그녀는 어쩌면 고통이 더 커지는 것 같다는 생각도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 그리워지는 거라고, 그래서 더 아픈 거라고 생각하고 싶었다. 어쩌면 그래야 하는 걸 지도 모른다. 아파하고 고통스러워하면서 영혼에 새겨야 하는 걸지도 모른다. 그래야지 조금이라도 속죄할 수 있는 걸지도 모르는 일인 것이다. 그녀는 한없이 고통스러웠지만, 이 고통을 잃고 싶지는 않았다.     

그녀가 떠나보낸 것은 작고 어린 강아지였다. 아직 채 한 살도 되지 못한 흑백의 강아지. 쿠키와 크림이 적당히 섞인 카펫 같은 털을 지닌 예쁜 아이였다. 그녀는 아직도 그 아이를 처음 만날 때를 어제처럼 선명하게 기억했다. 아직 어린 티를 채 벗지 못했으면서도 다 어른인 마냥 그 아이는 의젓하고도 새침한 눈으로 그녀를 쳐다봤었다. 호기심과 경계심이 모두 어려있는 그 눈은 보석처럼 빛나고 있었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손을 내밀어 그 아이가 냄새를 맡게 도와주었고, 그 아이는 그녀에게 꼬리를 흔들어주면서 그녀의 손등 맛을 보았다. '깨물어도 괜찮아, 이렇게 쪼꼬만데 조금은 허락할 수 있지.'하고 그녀는 생각했고, 그것은 분명 오산이었다. 몇 개월 뒤엔 아마 시도 때도 없이 놀자고 깨물어대는 그 아이의 모습에 조금 혼비백산해야만 할 테지만, 그때는 그런 걸 몰랐었다. 그래서 그 아이는 깨물었고 그녀는 웃을 수 있었다. 봄을 닮아서 봄에 다가왔던 아이. 그렇게 그녀는 갓난쟁이를 갓 벗어난 그 아이와 친구가 될 수 있었었다.     

그 모든 것이 어제 같은데, 함께 걷고 뛰고 혼나고 사랑하던 것이 어제 같은데 갑자기 모든 것이 끝나 있었다. 그들이 같이한 시간은 고작 5개월뿐이었지만 남은 것은 고통의 크기는 50년, 500년 같이 거대했다. 그 거대하고도 선명한 고통 속에서 그녀는 사랑했던 강아지의 모든 모습을 날붙이로 베이듯 예리하게 떠올리고 또 떠올렸다. 매일 걷던 산책길, 항상 기다리던 횡단보도, 항상 머뭇거리던 음식점, 그녀를 보며 지어주던 미소. 모든 게 고통이라 그녀는 그 아이를 항상 기억할 수 있었다. 눈을 감아도 숨을 쉬어도 가시지 않는 일이었다.     

그녀는 결국 잠드는 것을 포기하고 밖으로 걸어 나왔다. 낮에는 어머니께서 전화하셨었다. 뭐라도 잘 챙겨 먹으라고, 힘든 건 이해하지만 그러다가 몸 다 망가진다고 말이다. 그녀는 어머니의 말씀이 맞다고 생각했다. 한 발자국 바깥으로 발을 내딛는 순간 몸이 휘영청 흔들렸고, 그녀는 덜컥하는 기분을 느꼈다. 밥이라도 잘 먹었어야 할 텐데- 하는 생각은 곧 후회로 이어졌다. 아니, 밥이라도 더 많이 줬으면 좋았을 텐데. 조금 더 신경 써 주었다면, 조금 더 많이 사랑해주고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게 해 주었다면, 그러면 아직 같이 있을 수 있었을까. 그녀는 그렇지 않다는 것도,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동시에 다 자신의 잘못인 것 같은 죄책감을 내려놓을 수가 없었다. 사랑한 만큼의 책임이 그녀의 어깨를 무겁게 짓누르고 있었다.      

그녀의 집 앞에는 오래된 궁궐이 한도 끝도 없이 펼쳐져 있었다. 오래된 고도의 밤은 고요하고 서늘했고, 가을을 맞은 귀뚜라미들의 울음소리만이 음악소리처럼 이리저리 흔들렸다. 그녀는 궁궐의 담을 따라서 세상을 정처 없이 걷고 또 걸었다. 세상의 모든 고통이 발걸음이 될 때까지 걷고 싶었다. 이 길조차도 사랑했던 강아지와 함께 수백 번 걸었던 길이라 고통스러웠지만, 그녀는 무작정 고통과 맞서며 걸었다. 걷다 보면 무언가는 끝날 것 같았다. 끊어지는 느낌을 수백 번쯤 받으며 그녀는 밤으로 물든 궐담을 거닐었다.  
        

온갖 환상들이 그녀를 휘감았다. 과거의 잔재들은 행복했던 기억들로 그녀를 후벼팠고, 미래의 환영들은 닿을 수 없는 아득함으로 그녀를 삭아들게 만들었다. 좋았던 기억은 다 후회와 아쉬움으로, 좋았을 기억은 비참함으로 모두 다 고통이 되었다. 웃음도 울음도 다 절망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순간이었다. 그녀는 어딘가 멀리에서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온다고 생각했다. 자정을 훌쩍 넘은 시간이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꽤나 무섭고 이상한 일이었다. 그녀는 귀를 쫑긋 세우고 바람소리에 집중을 기울였고, 다시 한번 해맑은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포착할 수 있었다. 그녀는 기묘한 기분 속에서 그 웃음소리를 향해서 다가가기 시작했다. 그 웃음소리에는 무어라 설명할 수 없는 기이한 끌림이 있었다. 익숙하면서도 두렵고 포근하면서도 날카로운 그 소리는 어딘지 모르게 그리움을 닮아 있었다. 어머니의 뱃속에서 태아가 듣는 소리처럼 부드러이 퍼지는 웃음을 따라서 그녀는 계속 걸었다. 궐담을 따라서, 오래된 전각과 은행나무들을 지나서,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대문을 발견할 때까지 걸었다. 그리곤 우뚝 멈춰 섰다.   
  

이 동네에 산지도 벌써 이십 년이 넘었음에도 그 대문은 그녀가 처음 보는 것이었다. 분명 궁궐과 맞닿아있는 문이니 궁궐의 어딘가로 통할 텐데도 그녀는 맹세코 그런 문을 본 적이 없다고 장담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건 그렇게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그녀는 걸어온 방향을 점쳐보았고, 이 즈음이라면 궁궐의 공개되지 않은 비밀 정원 쪽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어쩌다 보니 평소 걷던 지역을 지나쳐 잘 오지 않는 궁궐 깊은 곳으로 와버리게 된 모양이었다. 그녀는 빼꼼 대문 안을 들여다보았고, 그 안에서 웃음소리가 확실히 들려오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대문은 활짝 열려있었고, 안에서는 어슴푸레한 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그것은 감각으로는 설명하기 힘든 아주 어슴푸레한 빛이었다. 마치 새벽과 동틀녘 사이에 있는 것 같은 모호한 빛. 어둠처럼 사물을 삼키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모든 것을 밝힌다고 보기는 어려운 참 이상한 빛이 대문 안 쪽에서 빛나고 있었다. 그 빛은 마치 그녀에게 손짓하는 것 같았다. 찾아야만 하는 무언가가 그 안에 있다는 마냥 부드러운 손짓이었다. 그녀는 어슴푸레한 저 너머에서 '야아! 거기 서어!' 하는 여자아이의 목소리를 들었고, 조금 용기를 내었다. 들어가면 안 되는 곳이라면 문이 열려있거나 아이들 소리가 들려올 리가 없었기에 무언가 위험한 일이 일어나는 장소 같지는 않았다. 귀신이나 악령이 나오기엔 지나치게 밝았고, 일각수나 용이 나오기엔 너무 어두운 풍경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왜인지 모를 애타는 그리움으로 대문을 성큼 넘어섰다.      

대문 안 쪽은 생각보다도 더 밝았다. 어슴푸레하면서도 밝은 풍경 덕분에 그녀는 잠시 시간 감각이 혼미해지고 말았다. 그녀는 집을 나선 시간이 자정 너머였던 것은 확실하게 기억했지만, 지금이 몇 시인지는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해가 떠있다고 보기엔 애매하게 어둡고 달이 떠있다고 보기엔 부드럽게 환한 분위기 속에서 그녀는 발걸음을 옮겼다.     

대문 너머에는 작은 언덕이 있었고, 그녀가 언덕을 넘어가자 널따란 구릉과 함께 꽤 소담한 풍경이 눈 앞에 펼쳐졌다. 멀리에는 작은 전각들이 뜰을 형성하고 있었고, 구불구불한 소나무들이 뜰의 구석구석을 수놓고 있었다. 구릉의 오른편으로는 작은 시내와 숲이 구불구불 자라고 있었고, 왼편으로는 거친 산세와 어두운 수풀들이 시야를 가렸다. 그녀는 구릉 사이에서 뛰어노는 작은 형체들을 역시 발견할 수 있었다. 일곱 여덟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자그마하고 예쁘장한 아이들이었다. 아이들은 술래잡기라도 하는 건지 와아~ 하는 소리와 함께 웃고 서로를 밀치며 뛰어다녔다. 마치 새끼양이나 아기 사슴 같은 작은 짐승들이 뛰어노는 것 같은 모습에 그녀는 잠시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참으로 오랜만에 지어보는 웃음에 그녀는 스스로도 놀라고 말았다.     

아이들은 구릉을 쏜살 같이 뛰어다니며 놀다가 그녀와 갑작스럽게 맞닥뜨렸다. 한 아이가 앗! 하고 탄성을 내질렀고, 아이들은 곧 눈이 땡그래진 채로 토끼마냥 사방팔방 도망쳐 구릉 사이로 숨었다. 남겨진 것은 까치 같은 옷을 입은 아홉 살 남짓의 어린 여자아이 한 명뿐이었다. 소녀는 주변을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더니 씩씩거리면서 그녀에게 다가왔다.   
       

"에잉. 아줌마 때문에 다들 도망갔잖아요. 금방 잡을 수 있었는데!"     

그녀는 아줌마라는 말에 살짝 발끈하기는 했지만, 이 소녀가 방금 전까지 술래였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조금 참기로 했다. 그녀는 소녀에게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너흰 여기에서 뭘 하고 있는 거니?"     

소녀는 의심스러운 표정으로 그녀를 쏘아보았다.     

"누구세요? 오늘 여기 처음이신 거예요?"     

"응. 이 동네 오래 살았는데 이런 데가 있는 줄도 몰랐네."   

"이상하네요. 오늘 누가 온단 말은 없었는데. 혹시 누가 초대했다거나 말을 해줬나요? 이도 저도 아니면 검은 삽살개 아저씨라도 마주치셨다거나요."       

"아니? 그냥 대문이 열려 있어서 들어왔는데?"     

"그래요? 그거 정말 이상한 일이네."     

까치옷의 소녀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면서 폴짝폴짝 뛰어 구릉 너머로 걷기 시작했다.   
   

"야! 너네 먼저 놀고 있어! 나 해야 할 일이 생겼어!"
     

구릉 뒤의 아이들은 꽁지가 빠져라 사라졌고, 그녀는 잠시 조금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여긴 아이들이 노는 장소인 거니?"     

"네. 어른들은 저 뒤에 전각에서 잠만 자거든요. 하긴, 막 몇십 년씩 지나면 자는 것 말고는 할 게 없을 것 같긴 해요. 저도 여기 한참 있어야 될 텐데 조금 걱정이네요."     

"너희는 잠을 안 자?"     

"아뇨. 가끔 자요. 놀다가 힘들면 잠도 자고 꿀도 먹고 떡도 먹고 그래요. 저는 호박엿을 아주 좋아해요! 꼭 그래야 하는 건 아닌데, 재밌잖아요. "     

"그래? 여기서 사는 모양이구나. 궁궐 안에 이런데가 있는 줄은 몰랐네."     

"살면서 세상 모든 걸 다 알 수는 없잖아요. 저도 아줌마가 여기 왜 오셨는지 모르겠는걸요!"
     

소녀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엉덩이를 툭툭 털면서 말했다.  
             

"저는 잘 몰라도 아마 제 스승님께서는 아실지도 몰라요! 우리 산군님께 같이 한번 물어보러 가요."     

"산군님? 그게 누군데?"     

하지만 소녀는 그녀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옷깃을 잡아끌며 구릉 사이를 뛰었다. 자그마한 수풀들과 잔디들이 아이의 당찬 발걸음에 이리저리 흔들려대고 있었다. 그녀는 영문을 모르는 채로 까치 같은 색채로 빛나는 소녀에게 끌려가는 수밖에는 없었다.     

거대한 전각 앞에 도착한 소녀는 귀엽고 정중하게 읍을 하더니 청했다.   
  

"산군님, 산군님, 여쭤볼 게 있어서 왔어요."     

하지만 전각 안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고, 소녀는 오만 인상을 다 쓰더니 한 번 더 읊조렸다.   
  

"산군님, 산군님, 일어나시라니까요. 여쭤볼 게 있어서 왔대도요."
    

그녀는 '이번에도 대답 없으면 그냥 박차고 들어가야지' 하는 중얼거림을 들었지만 잠시 넋을 놓았는지라 반응하지는 못했다. 전각은 그녀가 여태껏 봐온 궁궐의 그 어떤 구조물보다도 아름답고 소박했다. 웅장한 대들보와 서까래는 적어도 수백 년은 된 적송으로 만들어진 것 같았고 뜰의 구들장과 석재 역시 단아하면서도 세련된 멋이 있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건물이 왜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았는지 그녀가 의아해하고 있을 때, 소녀는 발로 전각의 문을 낑낑거리고 밀쳐 열고 안으로 뛰어들었다.

"오늘따라 정말 너무하시네!"     

하지만 전각 안에는 오래된 모포와 그 위에 놓여있는 석상을 빼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소녀는 해태를 닮기도 하고 사자 갈기 같은 것이 달려있는 것으로도 보이는 그 석상 앞에 쪼르르 달려가서 다시 갸우뚱하면서 말했다.

     

"거 참 귀신이 곡할 노릇이네. 오늘은 왜 또 이 모양이시지? 산군님? 대답 안 하시면 우물에 빠트릴 거예요? 저 한다 하면 하는 거 아시죠? 툇마루도 씹어 먹고 난초도 동강 낼 거예요?"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지만 석상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소녀는 발을 동동 구르면서 길길이 날뛰었고, 그녀는 흥미로워하며 물어보았다.    
 

"그게 너의 산군님인가 보지? 너희 큰 어른이시니?"     

"네. 전대 지키미이시기도 해서 제가 많이 배우고 있어요. 평소엔 말 많은 훈장님 같은 분이신데 오늘은 돌이 되어 계시네요. 괴상도 하여라."     

"지키미? 여기를 지키는 사람이 너라구?"     

"네. 저는 여기 좀 오래 있어야 되거든요. 산군님은 아마 몇십 년 안 남으셨을 것 같아서 제가 물려받았어요. 아직 어설프지만 분명 잘 해낼 수 있을 거예요."     

"여기에 오래 있는다고? 너희는 여기서 뭘 하는데?"     

"뭘 하긴요. 기다리죠 당연히."     

"기다려? 누구를?"     
     

그녀의 그 질문에 소녀는 갑작스럽게 겁을 먹은 것 같았다. 눈을 동그랗게 치켜뜬 소녀의 표정은 앙증맞게 귀여우면서도 달래주고 싶게 만드는 것이었다. 소녀는 잠시 땡그래진 눈으로 고민을 하더니 무언가 알겠다는 표정이 되었다.     

"이제 알았어요. 아주머니는 사람이시지요? “

"그게 무슨 소리니. 당연히 사람이지. 그리고 아줌마 아니야. 언니라고 하렴."     

"으엑. 언니라고 하기엔 좀..."     

그녀는 잠시 주먹을 말아 쥐고 이 맹랑한 소녀에게 꿀밤이라도 먹일까 생각했지만 그건 보기 좋은 광경은 아닐 것 같았다. 소녀는 눈을 데굴데굴 굴리며 주먹을 꼬옥 쥔 그녀의 눈치를 보다가 재치 있게 타협했다.     

"그럼 아가씨라고 불러드리면 어때요? 여기 오신 게 이유가 있을 텐데 제가 지키미 역할 열심히 해드릴게요! 아가씨! 와! 듣기 좋다!"     

"얘는. 아가씨는 무슨. 난 일단 여기가 뭔지도 모르겠는걸."     

"모르시는 게 당연해요. 보통 사람들은 모르거든요. 여긴 안뜰이에요. 기다리는 곳이죠. 다른 말로는 고통의 정원이라고도 불러요."     

"고통의 정원이라고?"     

"네. 이 곳은 아주 긴 고통이 머물러 있는 곳이거든요."       
   

그녀는 주의 깊게 안뜰의 모든 것을 살폈지만 그 무엇도 고통스럽지도, 외로워 보이지도 않았다. 세상에 이토록 신비하고 천국 같은 곳이 또 있을까 싶을 정도였다. 그녀는 주변을 둘러보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까도 물어봤었는데, 무엇을 기다린다는 거니?"     

"뒤뜰로 함께 넘어갈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리지요. 한명일 수도 있지만, 여러 명을 기다릴 수도 있어요! 그건 저마다의 사정에 따라 달라도 괜찮으니까요. 가끔 막 열명씩 기다리는 친구들도 있는데 걔넨 참 운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저는 그냥 머리가 나쁘다고 생각하는 중이에요. 전 열 명씩 기다리고 싶지는 않거든요."     

"그들이 가려고 하는 뒤뜰이란 곳은 어떤 곳이니?"     

"정해진 사람들만 갈 수 있는 멋진 낙원이에요. 뭐 여기도 여기 나름대로 작은 낙원이지만 거기는 더 좋죠. 사랑하는 사람이랑 같이 갈 수 있으니까요!"     

소녀는 깡총깡총 뛰어서 돌로 된 해바라기에게 '안녕?' 하고 인사하고 그녀에게 와서 속삭였다. '저분은 9000년 동안 계셨던 로트와일러예요! 지난주엔 꽃잎이 이빨만큼 날카로웠는데 오늘은 얌전하시네요!' 그녀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몰라서 잠시 그 말을 곱씹었고, 그동안에 소녀는 깡총깡총 앞서 뛰어서 단정한 자세로 그녀를 마주 보았다. 그녀의 눈을 똑바로 마주 보며 소녀는 정중하게 말했다.    
 

"아가씨, 여기는 이승을 떠나온 동물들이 반려자를 기다리는 장소예요."   
  

그녀는 잠시 충격을 받았고, 곧 격통에 휩싸였다. 믿을 수 없는 말이었지만 그녀는 잠시 느껴진 자그마한 희망에 온 영혼을 다 걸어야만 했다. 가까스로 자신을 추스른 그녀는 소녀에게 물었다.     

"그게 정말이니? 이승을 떠난 동물들이 오는 곳이라고?"     

"네. 지금 눈으로 보고 계신 모든 풍경이 다 그들의 모습이에요. 여기서는 뭐든지 될   있거든요."   
  

그 말과 함께 소녀는 그들을 조심스럽게 뒤따라오던 아이들을 향해 왁! 하고 무서운 표정을 지었고, 그녀는 곧 온갖 종류의 새와 고양이 강아지들이 부리나케 도망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새가 되어 날아가던 작은 꼬마는 나무 위에 내려앉더니 그대로 솔방울이 되었다. 갈대밭 사이로 도망친 검은 고양이는 눈이 부리부리한 솔부엉이가 되어 그들을 보며 험상궂게 인상을 썼고 작은 바위나 코스모스 모양으로 숨어버린 아이들도 있었다. 그녀는 입술을 지그시 깨물며 소녀에게 물어보았다.
     

"그러면 살면서 사랑했던 아이들을 여기서 만날 수도 있는 거겠네?"     

"모든 동물들이 다 여기에 있지는 않아요. 누구나 안뜰에서 기다리는 건 아니거든요. 때론 그리움이 너무 짙어서 눈물이 되어 돌아가는 아이들도 있어요. 한 번이라도 더 주인을 보려고 빗방울이 되어 돌아가는 거죠. 빗방울이 되어버린 아이들은 다시는 안뜰에 돌아오지 못해요."     

그녀는 잠시 마음이 덜컥했지만 곧 괜찮아졌다. 그녀의 강아지가 그녀를 다시 보러 올리가 없었다. 원망하고 미워하면 했지, 혼자 뒤뜰로 넘어갔으면 넘어갔지 빗방울이 되어 그녀를 찾아왔을 것 같지는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여 그녀는 조심스럽게 그에 대해서도 물어보았다.
    

"왜 빗방울이 되는 거야? 여기서 기다리면 그래도 언젠가는 만나게 되는 거잖아."     

"인간의 시간과 동물의 시간이 달라서 그래요. 사람이 이승을 떠나오기까지 30년이 걸린다고 하면 동물들은 안뜰에서 3만 년을 기다려야 해요. 주인이 선하고 현명하여 삶에서 해야 할 일이 많을수록 그 시간은 더 늘어날 수도 있어요. 선행에 선행을 거듭하는 착한 사람들은 30만 년 가까이를 기다려야지만 만날 수 있기까지 한걸요. 자신의 소명을 다하며 가득 찬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니까 뭐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 영겁의 시간 동안 기다리는 건 그 기간만큼의 고통이기는 해요. 사랑한 만큼, 좋을수록 아픈 곳! 이곳이 아주 행복한 곳인 주제에도 고통의 정원이라고 불리는 것이 그 때문이에요."     

"그래서 기다리다가 지쳐서 빗방울이 되기도 하는 거구나."     

"네. 가장 사랑했던 것의 기억이 조금씩 사라져 가는 것은 견딜 수 없을 만큼 끔찍한 고통이에요. 안뜰의 아이들은 잊지 않기 위해서 정말 안간힘을 쓰고 매일 마음속에서 그리고 또 그리지만, 그만큼 더 아파할 수밖에 없죠. 안뜰에선 무엇이라도 될 수 있고 무엇이든지 할 수 있지만, 만날 수 있는 건 아파했던 이들뿐이에요. 아파해야지 잊지 않을 수 있으니까요."     

그녀는 그 말을 너무나도 잘 이해했다. 그녀의 일주일은 그와 같은 고통으로 가득 차 있었다. 견딜 수 없을 만큼 아프지만, 아프지 조차 않으면 기억조차도 사라져 버릴 것 같아서 그녀는 고통으로 살아가야만 했다. 그녀는 자신이 수만 년을 기다리지 못할 것을 알았다. 빗방울이 되어 상대방의 얼굴에 마지막 한 번이라도 맺히고 싶을 것을 알았다. 그래서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그녀가 말을 고르는 사이 소녀는 아주 가벼운 발걸음으로 정원을 깡총깡총 뛰어다녔다. '저기 저 사자같이 생긴 아저씨는 벌써 5만 년이나 계셨어요. 생전에 치와와셨대요! 지금은 되에게 위엄 있고 싶으신가 봐요!' 라거나 '저쪽 저 수국은 온 지 200년도 안된 제 친구예요. 저보다도 늦게 왔죠. 겁이 많아서 맨날 꽃이 되어 숨어있어요!'라는 재잘거림 가득한 이야기들과 함께 였다. 소녀는 계속해서 얘기를 들려주었다.     

"동물들이 기다리지 못하고 포기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어요. 사실 가장 큰 이유는 모든 인간들이 다 뒤뜰에 갈 수 있을 만큼 좋은 사람은 아니라는 점일 거예요. 뒤뜰에 가려면 천수를 누리며 사랑하고 배려하는 삶을 살아야 하거든요. 하지만 세상엔 인면수심의 망나니들이 너무 많아서 막상 수만 년을 기다렸다고 해도 뒤뜰에서 만나지 못할 가능성이 되게 높아요. 동물들은 사람이 못생겼건 잘생겼건 돈이 많건 적건, 심지어 자신을 학대하건 보살피건 상관없이 사랑하지만, 기다려도 만날 수조차 없는데 기다리지는 못해요. 그럴 바에야 눈물로 환생하여 흐르는 편이 나으니까요."     

"그럼 여기에 남아있는 동물들은 아직 희망을 가지고 있는 아이들인 거야?"     

"안뜰에 남아서 기다리는 동물들은 아주 큰 사랑을 가지고 있는 아이들이에요. 사랑하는 사람이 가득 찬 삶을 누릴 것을, 그래서 수만 년의 시간이 지나도 다시 웃으며 만날 수 있을 거라고 믿는 아이들이죠. 살면서 참 많이 사랑받았고, 진심으로 행복했던 아이들만이 그런 감정을 지닐 수 있어요. 그리고 그렇게 진심으로 사랑했을 때에만 이곳에서 그 긴 시간을 견딜 수 있는 거죠."     

시냇가에 앉아서 미소 띤 채로 책을 읽는 할머니는 주인과 함께 늙어간 골든 레트리버였고, 종이비행기를 날리려고 애를 쓰는 노인은 젊어서 마을을 호령했던 잘생긴 진돗개였다. 소녀는 그녀에게 말했다. 이곳에서는 무엇이든지 될 수 있다고. 그래서 그들은 자신이 가장 행복한 모습을 찾아서 그 모습인 채로 기다린다고 말이다. 가장 사랑했기에 가장 고통스러울 수 있는 그곳에서 동물들은 자신의 반려를 웃으며 기다리고 있었다.     

소녀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얘기했다.     

"아가씨, 사실 저는 알고 있어요. 찾고자 하는 아이가 있어서 여기에 들어온 거죠?"
     

그 말에 그녀는 소스라치게 놀라서 물었다.
    

"그걸 어떻게 아니? 혹시 그 아이가 여기에 있니?"     

"사람이 여기에 올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뿐이에요. 떠나간 아이를 너무 아파하고 그리워해서 명이 짧아지려고 할 때 자신도 모르게 문을 열고 들어오거나, 그게 아니면 그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다 못한 안뜰의 아이가 잠깐 초대한 거예요. 안뜰의 아이는 '나 이런데 있어, 괜찮아. 너무 아파하면 안 돼.'하고 말해주죠. 자신 때문에 너무 아파하다가 명을 깎을까 봐 알려주는 거예요. 그 대가로 안뜰의 아이는 꽤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하기는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이 아파하는 것을 멈춰주려고 애를 쓰는 것은 사람이나 동물이나 같아요."
     

그녀는 잠시 망설이다가 말했다.     

"내가 초대받았을 수도 있는 거니..? 그 아이를 만날 수도 있는 거고?"

"글쎄요? 그건 아무도 몰라요. 아가씨 상태를 보니까 하도 피골이 상접해서 혼자서 열고 들어왔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되게 많이 힘들었나 봐요 그럴 필요 없는데. 그리고 만약 그 아이가 불렀다고 해도 그 아이를 만날 수는 없을지도 몰라요. 안뜰로 사람을 초대하는 아이들은 한 가지 형태로 고정되어 버려서 알아보기 어렵거든요."     

소녀는 저 멀리에 자라고 있는 백송과 황금빛 억새밭을 가리켜 보였다.     

"저기에는 저보다 한참 전에 오셨던 두 모녀분이 계세요. 따님은 백송이 되셨고 어머님은 억새밭이 되셨죠. 두 분께서는 이제 십오만 년이나 되셨는데도 아직도 두런두런 말씀을 하세요. 티격태격하기도 하고 서로 기대어서 쉬기도 하시면서 남은 나날들을 기다리시는 걸 보면 정말 대단해요. 저는 저분들 밑에서 햇살을 쬐고 새들의 노래를 듣는 걸 아주 좋아한답니다. 배울 점이 많은 분들이세요. 저분들 역시 이만 년쯤 전에 사랑하는 분들을 안뜰에 초대하셨대요. 하지만 저분들이 초대했던 사람들이 알아보셨을지는 저도 잘 모르겠어요. 사랑했던 강아지들이 나무와 버들이 되어있는데 사람들이 알아보기가 쉽지는 않잖아요? 사람들은 영 똑똑하지 못하기도 하니까요. 더군다나 이곳에서 나가면 기억이 서서히 사라진대요. 아가씨도 그럴 거예요.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그냥 꿈 정도로 생각하며 행복하게 잘 살아갈 테죠."

"..."

"그러니까! 아가씨는 오늘 밤 이 꿈에서 깨고 안뜰에서 나가게 되면 그 아이가 잘 지내고 있다고 믿으면 되는 거예요. 아마 보랏빛 햇살이 뜰 때쯤이면 나가는 문이 열리지 않을까 싶네요. 여긴 괴롭히는 사람도, 아프게 하는 질병도 없으니까 다 괜찮다고 믿어도 돼요. 지키미로서 공인합니다."     

그녀는 잠시 생각에 잠겼고, 둘은 함께 고통으로 가득하여 아름다운 정원을 천천히 거닐었다. 소녀는 물끄러미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다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 정도로 그 아이를 만나고 싶으세요?"
    

그녀는 가슴이 미칠 듯이 아팠지만, 지금까지의 그리움에 사무치듯 부수어질 것 같았지만, 그럼에도 고개를 저었다.     

"아니. 계속 생각해봤는데 만나고 싶지 않은 것 같아."
    

소녀는 귀를 쫑긋 세우고 물어봤다.     

"왜요? 너무 아파서 여기까지 온 거잖아요. 지금도 한마디도 못 할 정도로 아프면서."
     

그녀는 눈을 질끈 감고 말했다.
    

"그 아이가 나를 기다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거든."

"이곳에서 어어어어엄청 긴 시간 동안 고통받을까 봐요? 본인이 되게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시나 봐요! 그렇게 오래 살 거라고 확신하시다니!"     

"아니야. 전혀 그렇지 않지. 그보다는 아주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는걸. 적어도 그 아이에게는 그랬어. 충분히 잘해주지도 못했고, 사랑해주지도 못했거든. 먹을 것도 많이 못줬고, 산책도 멀리 못 갔어. 산책하다가 자꾸 장난을 치려고 하면 혼을 내고 그랬지. 그 아이는 참 외로웠을 텐데, 배고프고 외로워서 나를 그렇게 따랐을 텐데, 나는 그 아이를 지켜주지 조차 못했어."

"..."

"너무 짧은 시간이었어. 그 아이가 기다려야 할 3만 년은 너무 긴데, 우리가 함께 한 시간은 5개월뿐이었는걸. 그 아이에겐 행복보단 힘든 게 더 많았을 거야. 못나고 못되었던 주인을 원망하고 탓할지도 모르지. 그렇게 원망하다가 새로운 삶을 찾아서 간 거면 좋겠어. 이곳에서 나를 기다려주는 것이 아니라."
    

때론 고통은 함께한 시간만큼의 깊이가 아니다. 그것은 사랑한 만큼의 상실이며 그리운 만큼의 통증인 것이다. 그리고 그 깊이와 그리움은 시간의 무게로 저울질되는 것은 아니었다. 짧았던 만큼 더욱 아플 수밖에 없는 기억에 그녀는 차라리 그 아이가 자신과는 다르기를 바랄 수밖에 없었다. 더 행복하기를, 다 잊고 다시 더 사랑받기를 소망하며 그녀는 안뜰의 모든 것에게 그 인사를 건네었다.
     

까치옷의 소녀는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생긋 웃었다.  
   

"에이. 나도 바본데 하는 짓이 나보다도 더 바보인 사람이었네요."  
   

그녀는 눈물이 앞을 가려서 대답하지 못했고, 까치옷의 소녀는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면서 말했다.  
   

"자아! 아가씨! 뚝! 그러면 안돼요. 안뜰에서 울면 시간이 짧아져요."    
 

그녀는 고개를 간신히 끄덕였다. 어느덧 보랏빛 무지개가 언덕 너머에서 안개처럼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 무지개는 몽글몽글 안뜰의 많은 것을 아침햇살처럼 집어삼키고 있었다. 그녀는 이제 떠날 시간이 가까워지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았다. 까치옷의 소녀는 그녀의 품에 안겨 배를 쑥 내밀고 대롱거리는 채로 말했다.     

"아가씨, 그거 알아요? 모든 게 다 끝나고 뒤뜰로 갈 때, 강아지들은 그 오솔길 앞에서 사람을 기다린대요. 혼자서는 열기 힘든 그 문을 함께 열어주고, 왜 이제야 왔냐고 꼬리를 흔들면서 처음과 같이 사랑한대요. 만년이 지났어도, 십만 년이 지났어도, 심지어 기다린 시간이 그 길이만큼의 고통이었어도 그들은 웃으며 함께 대문을 들어서요. 왜 그게 가능한지 아세요?"  
   

그녀는 울며 눈물로 말했다.

"아니. 모르겠어. 나는 정말로 모르겠어. 이렇게 아픈데 어떻게.. 왜.."

"그만큼 사랑했어서 그래요. 가족이었던 것이 기뻤어서, 속상했던 순간들이나 싸우고 삐쳤던 순간들마저도 너무 행복했어서, 그래서 기다릴 수 있는 거예요. 사랑받지 못했다면 기다릴 수도 없어요. 사랑받은 만큼, 사랑한 만큼 기다릴 수 있는 거랍니다."   
 

그녀는 결국 폭발적으로 울음을 터트렸다. 멀리서 터져 나오는 동틀 녘과 같은 울음이었다. 세상이 광휘와 눈물로 물드는 가운데 별빛 같은 고통이 세상 모든 인간과 강아지들의 기다림을 머금고 새로운 하루의 잎새가 되고 있었다.       

까치같이 검고 흰 옷을 입은 소녀는 활짝 웃으며 말했다. 도자기처럼 새하얀 이빨이 그녀를 물었을 때처럼 반짝이며 빛나고 있었다. 그토록 보고 싶었던 그 아이의 모습은 이미 그녀의 품에 안겨있었다.     

"있잖아. 나는 정말로 좋았어. 엄청 사랑받았다? 너와 가족일 수 있었던 건 내겐 정말 큰 축복이었는걸. 그러니까, 너무 울지 말았으면 좋겠어. 나 잘 기다릴 수 있으니까, 끝까지 다 잘 살다가 오는 거야. 그러면 그땐, 뒤뜰 문을 내가 열어줄게. 같이 산책할 때 그랬듯이 조잘조잘 떠들면서, 깨물고 핥으면서,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그러니까.. 그러니까.."     

그 아이의 마지막 말과 함께 그녀는 고통의 정원에서 빠져나왔다. 환한 웃음 속에서 그 아이가 건넨 마지막 말은 '너도 잘 기다릴 수 있었으면 좋겠어.'였다. 그녀는 사랑하는 아이의 행복한 웃음을 잠에서 깨어서도 오래도록 마음에 품고 자기 자신의 얼굴에 품었다. 그것은 조금도 시리지 않은 참 햇살 같은 웃음이었다.





그녀는 그 뒤로 많은 슬퍼하는 사람들을 만났다. 아주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이들을 잃은 뒤 그 상실감에 바스러져가곤 했다. 그리고 그녀는 그런 사람들에게 들려줄 말들이 많았다. 그녀는 늘 웃는 낯으로 사람들에게 말했다.     

"그들은 이승의 끝자락에 걸려있는 뒤뜰 앞에서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대문을 열어줘요. 그리곤 조잘조잘 떠들며 길을 안내할 거예요."      

그녀의 기다림 역시 길어질 테지만, 이제 그녀는 괜찮을 수 있었다. 문을 열어줄 까치옷의 어여쁜 소녀가, 그 땡글땡글한 눈을 빛내며 구릉 사이에서 기다리고 있음을 이젠 알기 때문이었다.



4번째 이야기에서 계속


이전 03화 그들만의 작은 천국 2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