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 나뉘어진 삶과 죽음의 이유
7 화 : 나뉘어진 삶과 죽음의 이유
찰리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깨어났다. 오래된 꿈을 꾼 것 같은데 기억나지 않았다. 눈에 보이는 풍경은 꿈꾸는 것과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눈에 보이는 곳곳에 부서진 전각의 파편과 엉망이 된 정원의 조각들이 놓여 있었고 오로지 연못만이 터오는 동을 받으며 평온하게 빛나고 있었다. 찰리는 지난밤 연못 안에서 열린 이계의 풍경을 생각하며 몸서리를 쳤다. 온통 폭발하고 소름 끼치는 생기로 가득한 그곳에는 모든 종류의 감정이 태풍이 되어 몰아치고 있었다. 찰리는 그곳이 한여름 여사가 말하던 감정의 세계라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어젯밤 이곳 후원에 쌓이고 쌓인 감정들이 어디에 가서 닿았는지도 이해하게 되었고 말이다. 그곳에서 튀어나온 괴물들은 무시무시하고 소름 끼치는 형상으로 살아있는 모든 것을 집어삼키려고 들었- 찰리는 명아가 괴물들에게 덮쳐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황급히 몸을 일으켜 세웠다.
온몸이 부서지고 장기가 비틀리는 것 같은 고통이 몸을 엄습했다. 찰리는 이대로 죽어버리고 싶은 충동을 꾸욱 참고 명아가 있던 전각을 바라보았다.
다행히 명아는 아무 일 없는 듯 여전히 잠들어있었다. 한여름 여사가 그 옆에 단정히 앉아서 돌보고 있는 것 같았다. 한여름 여사의 장심에서 흘러나오는 정심하고 평온한 감정이 명아의 미간에서부터 명치끝까지 흐르며 상태를 안정시키고 있었다. 찰리는 정말 물어볼 것이 산더미같이 많다고 생각하며 다시 뒤로 드러누웠다. 그래도 지난밤 같은 엄청난 사건을 치른 뒤에는 잠시 쉬어도 될 것 같았다.
한여름 여사는 무사한 계단 위 전각으로 명아를 천천히 옮겨놓았다. 각 밤의 사건에도 높다란 계단 위에 지어진 전각은 용케 제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녀는 명아의 작은 몸을 나르며 더 이상 그 어떠한 특이한 기운도 느껴지지 않는다는 걸 감지했다. 그건 참 이상한 일이었다. 분명 100마리도 넘는 마에게 둘러싸였는데 어떠한 변화도 보이지 않는다니 말이다. 한여름 여사는 약간 불길하다고 생각했지만 애써 고개를 저어 그 생각을 떨쳐 보냈다. 이 현상은 언젠가 과거에도 들었던 적이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 기묘한 기분은 곧 표횰히 사라졌다.
전각들이 사라졌음에도 감정들은 여전히 벽을 타고 흘러들어와 연못 안에 고이고 있었다. 정원에는 화약고 같았던 어제와는 달리 차분한 흐름이 생겨나 있었지만, 그래도 깊은 천천히 모여드는 것은 사실이었다. 한여름 여사는 감정탑이 제어되지 않으면 어젯밤과 같은 일들이 계속해서 일어날 것을 알았다. 그녀는 명아를 내려놓고 느릿한 발걸음으로 찰리를 향해 걸었다.
찰리는 연못가에 앉아서 흘러들어오는 감정들을 손가락 사이로 느끼고 있었다. 어젯밤의 일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부분 투성이었다. 찰리는 그를 가만히 쳐다보는 한여름 여사의 시선을 느끼고 부스스 자리에서 일어나서 앉았다. 그 둘은 긴히 할 얘기가 있었다.
한여름 여사는 긴 호흡을 고르다가 먼저 입을 열었다.
"찰리야. 어디까지 기억나니.”
찰리는 기억을 더듬었다. 마지막으로 기억나는 것은 명아가 공격당하는 것과 격앙된 감정을 두 손에 휘두른 것이었다. 그 뒤의 일은 왠지 어렴풋했다. 찰리는 한여름 여사에게 명아는 어떻게 된 것이냐고 물어보았다.
“명아는... 이상하리만큼 괜찮단다. 맥박도 정상이고, 감정 흐름도 잘 느껴지지는 않지만 평온해. 여기 처음 들어왔을 때와 비슷하더구나. 잠들었을 뿐이야.”
“그 괴물들은 뭐죠? 왜 감정의 세계로 문이 열렸고 왜 그들이 튀어나온 거죠.”
한여름 여사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찰리야. 묻고 싶은 것이 많겠지. 네가 왜 여기에 왔는지, 왜 이런 일에 휩쓸렸는지, 모든 것 다 말이다.”
찰리는 잠자코 한여름 여사의 말을 들었다. 한여름 여사는 호흡을 가다듬은 뒤 오랫동안 감춰져 있던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이 모든 것은 감정탑과 관련이 있단다. 감정탑은 인류가 감정 에너지를 이해하고 사용하는데 지고한 공헌을 하기도 했지만 동시에 미지의 세계로 통하는 입구였거든. 그리고 찰리 너 자신은 감정탑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사람이기도 하지.”
찰리는 처음 듣는 사실에 무척 놀랐지만 긴 호흡으로 이야기를 시작한 한여름 여사를 막을 수는 없었다.
“우리가 감정탑을 처음 만들 때에는 세상에 빛을 가져다줄 줄만 알았단다. 인류를 다음 단계로 올려줄, 영원한 화합과 통합의 장으로 이끌어줄 힘이라고 믿었던 셈이지. 마치 천국으로 향하는 바벨탑을 지었던 고대의 인간들처럼 우린 높다란 감정탑을 세우며 희열을 느꼈어. 그럴 수밖에, 감정 에너지는 이해하면 이해할수록 인종이나 성별, 소득 관계를 초월한 채 모든 인간에게 평등하고 기적적인 힘을 선사해줄 것이라는 확신을 안겨줬거든. 그래서 우리는 고대의 인간과 우리가 별다를 바 없이 비슷하게 우매할 것이라는 생각을 전혀 못했었단다.
감정을 집약시키는 기술은 충분했어. 감정 기술은 인간의 마음을 본떠서 발전한 기술이란다. 그리고 세상에는 감정을 자기 자신에게 끌어당기고 집중시키는 사람들이 정말 많았지. 노력하지 않아도 사랑받을 줄 아는 사람들, 자꾸만 다른 이들의 고민이 흘러와 고이고 자연스럽게 타인의 마음을 다독이는 사람들은 대부분 감정을 집약시키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었단다. 감정에 대해 예민하고 공감하며 자기 자신에게로 끌어당기는 사람들 말이지. 우리는 그런 특별한 사람들의 감정선을 면밀히 연구했단다. 그리고 곧 이 세상 무엇보다도 강렬하게 감정을 끌어당기는 기기를 만들 수 있었어. 우리는 그것에 '새로운 세계의 심장'이라는 이름을 붙였단다.
하지만 우리는 새로운 세계의 심장을 이용해 감정탑을 완공시킨 뒤에야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어. 중요한 건 감정에너지를 모으는 것뿐이 아니었거든. 흩어지고 옅어지려는 감정 에너지는 반대로 한 곳에 비정상적으로 모이면 각종 기현상을 일으키는데 우리는 당시에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단다. 마치 이 정원에 여러 신비한 동물들과 현상들이 생겨났듯이 감정탑에도 같은 일이 일어날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거야. 적은 양의 감정은 압축하지 않아도 사용할 수 있었지만, 감정탑 정도의 단위에서는 모여든 감정에너지 때문에 각종 기현상들이 활발하게 일어났지.
완공된 지 채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서 탑의 최상층부인 '심층부'에는 초자연적 현상들이 대거 일어나기 시작했어. 그중에서 무엇보다도 위험했던 것은 감정 이상 집적 현상으로 인한 괴생명체들이었단다. 우리가 마, 또는 마귀라고 부른 그 괴생명체들은 인간의 먹어치우는 존재들이었지.”
찰리는 그 말에 섬뜩함을 느꼈다.
“인간을 먹어치운다고요?”
“그래. 물론 우리가 소고기를 먹듯이 그들이 인간의 육신을 뜯어 삼킨 것은 아니란다. 하지만 그것들은 인간의 감정을 삼켰고, 감정이 모두 삼켜진 인간들은 그것들의 꼭두각시가 되었어. 고대로부터 안 좋은 일이 계속 생기면 ‘마가 끼었다'라고 해왔던 것 알지? 마귀에 닿으면 마가 낀단다. 그리고 그건 단순한 악운이 아니라 지독한 감정이 들러붙어서 몸을 지배하는 거야. 감정 집약체인 마귀들은 인간에 들러붙으면 한 가지 감정에 미쳐버리게끔 만들어. 그리고 그 감정은 대부분 부정적인 형태로 발현된단다. 분노에 끝없이 시달리거나, 끝없는 우울에 시달리는 것처럼 말이다. 마에 삼켜지는 거야.”
찰리는 어젯밤 연못에서 튀어나왔던 괴물들이 바로 그 마귀들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희미하고 옅은 일반적인 그림자인간들과는 다르게 그들은 뚜렷하고 실체가 있었다. 감정의 잔류물이 아닌 이상 집약체였던 것이다. 찰리는 한여름 여사의 이야기에 빨려 들어갔다.
“그 마귀들은 눈에 보이는 모든 인간들을 공격했고, 머리나 심장 같이 치명적인 부분을 공격당한 사람들은 곧 마에 물들어서 마찬가지의 괴물이 되었어. 곧 감정탑 심층부는 아무도 올라갈 수 없는 지역이 되었지. 마귀는 물론이고 마에 물든 인간들에게는 총이나 폭탄 같은 상식적인 무기가 거의 통용되지 않았는지라 우리는 거의 감정탑을 포기해야만 했단다. 적어도 너를 만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찰리, 모든 희망이 사라진 것만 같았어.”
찰리는 화들짝 놀랐다.
“저요? 저를 만나셨다고요?”
“그래 찰리. 너는 20년 전에도 우리 모두의 구원자였단다. 네가 태어났기 때문에 이 세상이 살아남을 수 있었지.”
찰리는 호흡을 가다듬고 재차 물어야만 했다.
“어째서죠. 20년 전이라면 전 갓난아기였을 텐데요.”
“그래. 아주 어린 갓난아기였지. 하지만 세상에서 가장 높은 감정 집약도를 가진 아이이기도 했단다. 온 세상의 감정이 네 작은 몸에 모여 빛나고 있었지. 마치 자그마한 감정탑 같았던 게 기억나는구나. 곁에 있기만 해도 우리 안에 모여 있던 감정에너지가 네게 부드럽게 흘러가는 것이 느껴졌거든. 우리는 네가 몸에 두르는 한없는 감정의 에너지를 보며 그제야 비로소 단순히 많은 양의 감정을 모아선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단다. 그 에너지가 몸에 해를 끼치지 못하게 하려면 감정 에너지를 '압축'시키는 능력도 필요했어. 그리고 너는 아주 자연스럽게 그 압축을 해내고 있었지. 감정을 모아내고 몸 안에서 압축시킨 너는 고농도의 감정을 몸에 두른 채 온갖 기적과 신비를 그 작은 손끝으로 도래시켰단다. 그 어떤 슬픔도, 그 어떤 광기도 네 앞에선 자연스러워지고 평온해지고 잠잠해졌었지. 우리는 그때 너에게서 감정을 압축하여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사용하는 방법을 배웠단다 찰리야.
하지만 우리는 너무 성급했어. 시간이 얼마 없기는 했지. 감정탑은 높았지만, 감정 밀도는 점점 높아지고 마귀들은 점차 심층부에서 중간지역인 신층부까지 내려오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극비에 붙여진 심층부와는 달리 신층부에는 민간시설들이 대거 들어와 있었어. 거기까지 마귀들이 들어오면 숨길 방법이 없었단다.”
“그래서 어떻게 했어요?”
“압축 모듈을 감정을 집중시키고 있는 세계의 심장에 이식하기 위해선 탑 꼭대기까지 올라가야 했어. 하지만 온갖 마귀들이 도사리고 있는 것은 물론이고 감정에너지의 집약도가 너무 높아서 거의 결계가 생긴지라 올라갈 수가 없었지. 하지만 우리는 너를 이용하는 방법을 찾았단다. 네 주변에서는 감정을 압축하는 특성이 과밀화된 감정을 중화시켜주었어. 마치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듯 고여있던 감정들이 자연스럽게 너라는 저수지로 흘러들어오기 시작한 거야. 그리고 우리는 감정 밀도가 낮아진 그 틈새를 이용해서, 네가 압축한 감정에너지를 이용해서 마를 격퇴 하며 꼭대기 층까지 올라갈 수 있었지.”
한여름 여사는 잠시 숨을 돌리며 차를 한 모금 마셨다. 기나긴 과거의 무게가 그녀를 덮쳐오는 것 같았다. 갑작스레 그녀는 10년은 늙어 보였다.
“그리고 그 탑의 꼭대기, 그 황량하고 신비한 곳에서 우리는 악마를 만났단다.”
“악마요?”
“그래. 그것은 우리가 그곳까지 오르기 위해 맞서온 마귀들과도 또 다른 존재였어. 감정은 시간과 공간에 영향을 받지 않고 존재하는데, 일부 해묵은 감정들은 과거와 미래를 초월해서 살아간다고 하더구나. 마치 감정의 결정체 같은 것이지. 그것은 자기 자신을 '살의'라고 불렀어. 거대한 검은 날개를 휘두르는 그 검은빛 갈까마귀에게 우리는 함께해온 수많은 동료들을 잃어야만 했단다.”
찰리는 악마의 묘사를 들으며 흠칫 놀랐다. 어젯밤의 악몽 같았던 기억이 떠오르는 것 같았다.
“잠깐만요, 거대한 검은 갈까마귀요?”
“그래 찰리. 네가 어제 구속했었던, 그리고 그물을 끊고 도망갔던 바로 그 갈까마귀가 살의란다. 다른 이름으로는 해를 삼키는 까마귀라고도 불리지. 그는 그 탑 꼭대기에서 인간의 멸망을 꿈꾸던 사악한 영령 중 하나야.”
“그것은 왜 인간의 멸망을 꿈꾸죠? 아니, 그보다 그때는 어떻게 퇴치했어요 그 괴물 같은 것을?”
“그것이 인간을 죽이려는 이유는 간단하단다. 그것이 대감정이기 때문이지. 대감정들은 긴 시간 같은 종류의 열망이 쌓이고 쌓이며 생겨나는 존재라고 하더구나. 그리고 '살의' 안에 쌓여있는 감정은 당연하게도 '살해 욕구'인 것이지. 인간이 인간을 살해하며 내뿜는 강렬한 감정에너지, 그리고 그 뒤의 슬픔과 증오가 그 대감정을 이루고 있는 원천이야. 당연히 인간을 죽이고 싶어 할 수밖에 없겠지.
우리는 그 당시에 여러 명의 사람들이 살의를 상대하고 있는 동안에 한 명이 세계의 심장에 압축 모듈을 인식하려고 했었어. 그리고 거기서 모든 문제가 생겼지. 세계의 심장 근처는 감정에너지가 너무 밀집해 있어서 인간은 가까이 갈 수가 없었어. 순수감정지체를 가진 사람도, 감정 결핍자도 말야. 오로지 찰리 너만 그 근처에 갈 수 있었지. 우리 중 가장 용감했던 이가 너를 안고 감정의 파도를 헤치며 세계의 심장에 닿았어. 그리고 너의 능력을 복제한 압축 모듈을 심장에 밀어 넣으려 했지. 하지만 모듈은 꿈쩍도 하지 않았어. 이미 감정에너지로 결계화 되어버린 심장이 거부하고 있었던 거야. 놀랍게도 그 순간 모듈을 끝까지 밀어 넣었던 것은 채 2살도 안된 찰리 너였어.”
찰리는 숨을 죽이고 자기 자신의 영웅담에 대해서 들었다. 그 끝에 어떤 무시무시한 이야기가 기다리고 있는지 알지 못한 채로 말이다.
“압축이 시작된 순간 그곳에는 감정이 빨려 들어가는 블랙홀 비슷한 것이 생겨났단다. 차고 넘치도록 고여 있던 감정에너지가 한순간에 압축되기 시작해서 생긴 현상이었지. 인간은 괜찮았지만 마귀나 마에 씌인 인간들은 모두 그 안으로 빨려 들어갔어. 그리고 그것은 살의의 검은 까마귀도 예외는 아니었지. 그것은 큰 목소리로 저주와 예언을 내뿜으며 블랙홀 안으로 사라졌단다. 다시 이 공간이 열리는 순간 자신은 반드시 돌아와 모든 인간을 검게 물들일 것이라고 말하면서 말야. 우리는 저 끔찍한 악마를 퇴치했다는 것에 대해 기뻐할 새도 없이 이 닥쳐올 저주에 대해서 대비를 해야만 했단다. 그리고 심지어 문제는 그게 끝이 아니었어. 거기서 모든 문제가 새로 시작되었지.”
한여름 여사는 안쓰러운 눈으로 찰리를 바라보다가 부드럽게 찰리의 손을 쓸어 만졌다
.
“미안하다 찰리야. 우리도 그때는 몰랐어.”
“무엇을 말예요? 뭐가 미안하다는 거죠?”
“감정능력을 똑같이 복제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 줄 몰랐단다 찰리야.”
“그게 무슨 말이에요?”
“우리는 너의 감정능력을 주파수 하나까지 똑같이 복제했단다. 너의 압축 능력은 엄청난 것이라 따로 증폭 수식이나 과대망상화할 필요가 없었거든. 그것이 너에게 모든 불행을 초래할 줄은 상상도 못 했어. 찰리야, 감정의 고유주파수는 곧 인간의 본질이기도 하단다. 우리가 영혼, 자아, 실체라고 부르는 것이지. 그것을 그대로 복제한다는 것은 곧 너의 영성을 그대로 복제한 것이었어. 그리고 너는 결국 부분적으로 압축 모듈의 일부가 되어 감정탑에 갇히게 되었지.”
찰리는 이 엄청난 사실에 사색이 되어 질렸다.
“뭐라고요? 그러니까, 지금- 저 탑 안에? 네?”
“그래 찰리야. 그날, 압축 모듈을 심장에 밀어 넣으며 너의 영혼은 두 개로 조각났단다. 감정을 끌어당기는 부분은 여전히 여기에 남아 이렇게 성장했지만, 압축 능력을 가진 너는 영원히 탑 안에 갇혀 지금도 모여드는 감정을 끝없이 압축하고 있지.”
“그게, 대체....”
“감정 집약체를 만들 때에는 여러 사람들의 감정능력 데이터를 받아서 여태껏 존재하지 않았던 강렬한 기기를 새로 만들 수 있었어. 하지만 압축 모듈을 만들 때에는 그럴만한 시간적 여유가 전혀 없었는 데다가 이미 너의 능력이 너무나 출중한 것이었단다. 그래서 우리는 그것이 너 자신인 줄도 모른 채 탑 안에 가둬버린 것이지. 그리고 그 부작용은 너에게는 너무나 가혹한 것이었단다 찰리.
너는 끊임없이 밀려오는 타인의 감정을 다룰 수 있는 능력을 완전히 잃어버렸고, 성장하며 끝없는 방황을 겪어야만 했겠지. 제어되지 않은 채 밀려든 감정들은 너뿐만이 아니라 너 주변 사람들마저도 파멸로 이끌었어. 압축되어 사용할 경우에 감정은 기적 그 자체이지만, 그저 흐를 경우에는 삶을 격랑 속에 밀어 넣는 폭풍일 뿐이니까 말이다. 그뿐만이 아닐 거야. 비록 나뉘어있다고 하나 탑 안에 갇힌 것도 분명 너였어 찰리. 그리고 나뉜 삶의 조각들은 불완전성 속에서 다시 완전한 합치를 꿈꾸지. 그 갈망은 곧 영원한 합치인 죽음에 대한 의지로 나타나. 네가 끊임없이 죽고 싶어 하며 탑을 갈망했던 것은 그곳에서만 네가 완전해질 수 있기 때문이란다 찰리. 그곳에 네가 있기 때문이야.”
찰리는 경악스러운 사실에 크나큰 슬픔을 느꼈다. 그동안 느꼈던 모든 외로움과 괴로움의 이유가 이곳에 있었다. 그동안 수없이 느껴온 죄책감과 삶의 무게가 기억에조차 남지 않은 머나먼 과거의 사건에서 비롯되었던 것이다. 찰리는 모든 것이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고 동시에 모든 것이 자신의 잘못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그 모든 것에 대해서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무기력함을 느꼈다. 찰리는 서글픔 속에서 물어보았다.
“그래서 제게 원하는 게 뭐예요. 제가 대체 뭘 어떻게 해야 하냐고요. 이제 또 무슨 일이 기다리고 있는 거죠.”
한여름 여사는 긴 세월 동안 청량하게 닦인 감정이 깊은 슬픔으로 가득 차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본인의 슬픔이자 온 마음으로 슬퍼하는 찰리의 감정에 대한 공명이었다. 한여름 여사는 한없는 죄책감을 느끼며 찰리에게 마지막 잔인한 이야기를 던졌다.
“감정탑 안에 남은 너의 압축의 조각 역시 너와 마찬가지로 끊임없는 죽음의 갈망을 느꼈단다. 자기 자신을 상실해서 일어난 현상이지. 그리고 그곳에 의지가 있기 때문에 감정탑은 여태까지 원만하게 작동해왔어. 하지만 몇 달 전부터 감정탑은 제멋대로 변하가기 시작했단다. 감정을 모으는 기능도, 압축하는 기능도 정상적으로 작동했지만, 그것이 더 이상 에너지화되지 않기 시작했어. 우리는 그것이 왜인지는 모르지만 압축 모듈을 작동시키는 네 영혼의 조각이 더 이상 죽음을 갈망하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판단했단다. 흐름에 대한 갈망이 사라진 거야. 인간으로 치면 의지를 잃은 것이지. 결국 탑은 더 이상 인간을 돕지 않기로 결정했어. 하지만 고농축 된 감정 에너지는 그 안에 계속해서 쌓이고 있지. 마치 거대한 폭탄처럼 말야. 더 무시무시한 것은 그 폭탄이 어젯밤 연못에서처럼 터지지 않더라도 도시에는 계속해서 부작용이 생긴다는 점이야. 도시 전체가 감정탑의 그림자 아래 있는 만큼, 탑의 의지의 상실은 도시 전체에 거대한 영향을 끼치기 시작했단다. 이곳 정원처럼 에너지가 과밀화되는 곳이 있는가 하면, 잊힌 신비가 되살아나기 시작한 곳도 있지. 조금 있으면 마귀들이 도래할지도 몰라. 그때가 되면 인간은 다시는 되돌아갈 수 없는 파국을 맞이하게 되겠지. 찰리야. 너는 이 현상을 멈춰야 해. 도시를 살리고 인간을 살려야 해.”
한여름 여사는 어떻게 해야지 탑을 멈출 수 있는지 더 이상 얘기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찰리는 어간 사이에 숨겨진 그 잔인한 의미를 확실하게 읽었다. 한여름 여사 역시 그 사실을 알아서 눈을 질끈 감을 수밖에 없었다. 감정탑을 다시 원래대로 되돌리기 위해선 찰리가 다시 죽음을 갈망하는 수밖에는 없었다. 그것도 탑 안에 영원토록 갇혀온 자기 자신과 하나가 되는 영원한 죽음을 꿈꾸어야만 했던 것이다.
찰리는 주섬주섬 짐을 챙겨서 일어났다. 아직 마음이 다 정리되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는 자신에게 허락된 시간이 그렇게 길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한여름 여사는 찰리에게 애써 담담한 표정을 지어주었다. 그녀는 이제부터 찰리가 걸어야 할 길과 내려야 할 선택이 얼마나 무거운 것인지 그 누구보다도 잘 이해하고 있었다. 찰리는 눈물이 되는 시간을 머금어 발걸음을 내디뎠다. 더 이상 말할 것은 없었다. 그는 죽음의 품 안으로 돌아가야 하는 운명이었던 것이다. 삶이란 조악하다. 선물인양 내던져놓고 어느새 앗아가진다. 살고 싶다고 말한 적 없음에도 우리는 삶을 건네받고, 죽음을 선택한 적 없는데도 어느새 차가운 무덤으로 내팽개친다. 그것은 찰리는 모두의 운명과도 같다고 생각했다.
한여름 여사는 명아가 깨어날 때까지 잘 돌봐줄 것이라고 그랬다. 찰리 역시 지금은 명아를 어떻게 봐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이 모든 일이 자신의 죽음에 얽혀있다면, 명아를 계속 곁에 두는 것도 적절한 일은 아닌 것 같았다. 찰리는 머뭇거리다가 발걸음을 옮겼다. 아직 자기 자신에 대해 어떻게 해야 할지 결정을 내리지도 못한 채였다. 결정을 내린 뒤에 명아를 마주하기로 마음먹고 찰리는 발걸음을 뗐다.
떠나며 찰리는 한여름 여사에게 마지막으로 물었다.
“란... 이 기계는 뭐죠? 이것도 이 사건과 관련이 있는 건가요..?”
한여름 여사는 머뭇거리다가 대답했다.
“잘 가지고 있으렴. 란은 다음 단계로 너를 분명 이끌어줄 거다. 여태까지 쭈욱 그래 왔지.”
“하지만 궁궐에 들어온 내내 작동하지 않는걸요. 어떻게 해야 하죠?”
“란이 왜 꺼졌는지는 모르겠구나. 20년 전에도 꺼진 적은 한 번뿐이었는데 말이다. 그래도 아마 중요한 시기가 되면 다시 켜질 게다.”
“20년 전에는 다시 켜졌어요?”
“응. 그때는 너 근처에만 가면 꺼지곤 했었지. 네 감정 압축 능력이 란이 사용하는 에너지 파장을 압축시켜버렸거든. 하지만 지금은 그 이유는 아닐 것 같구나. 워낙 오래된 기기라 그런 걸 거야.”
“알겠습니다.”
찰리는 정중히 고개 숙여서 한여름 여사에게 인사를 했다. 공간 너머에서 한여름 여사의 미안함이 짙게 쌓이는 것을 느꼈지만 굳이 그것에 대해서 언급하지는 않았다. 다시 만나지는 못할 것 같다는 예감이 마음 한편을 적셨지만 찰리는 그것도 무시하며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떼었다. 부서지는 오후의 햇살을 받으며 찰리는 궁궐을 떠나 마지막 여행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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