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남배추 Mar 25. 2024

아이들이 즐기는 할로윈데이 Trick or Treat

커뮤니티의 힘을 느낄 수 있었던 축제의 날

미국에서 할로윈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더 큰 축제이다. 할로윈이 다가오기 한 달 전부터 코스튬의 가격은 고공행진을 이루기 시작하기 때문에 미리 서둘러서 준비하는 사람들도 무척 많다. 물론 할리우드 스타들처럼 온 가족이 함께 코스튬을 맞춰 입고 거리를 활보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아마도 가족들이 초대된 파티에나 그렇게 차려입지 않을까 싶은데, 사실 그들만의 세상이라 알 길이 없다. (웃음) 다만, 학교를 에워싸고 있는 맨하탄 건물사이에서 아이를 키워본 입장에서 보면, 아이들만큼은 정말 제대로 꾸민다는 것이다. 심지어 코스튬을 직접 제단하고 박스를 이어 붙인 경우도 있다. 도저히 아이 혼자서 만들었으리라고는 상상이 안 가는 작품들을 보면, 무조건 카메라에 담고 싶은 충동이 일고 만다.


할로윈데이의 유래

미국 할로윈데이는 영국과 아일랜드의 켈트인들로부터 왔으며, 11월 1일을 새해의 시작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10월 31일은 새해를 맞이하기 전에 악령들을 물리치는 날이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와 비슷한 것이 있다. 바로 ‘동지’이다. 일 년 중 밤이 가장 길고 낮이 짧은 ‘동지’에 귀신을 쫓겠다며 문지방에 팥죽을 뿌리기까지 했었는데, 세월이 지나고 흐르면서 팥죽은 더이상 뿌리지 않게 먹는 날이 되었다. 미국의 할로윈데이 또한 악령을 물리치는 행위에 집중한다기보다, 자기가 흠모하거나 평소에는 좀처럼 할 수 없었던 코스튬을 입고 거리를 활보하는 날이 된 듯 하다. 아이들마저 사탕을 마음껏 먹을 수 있는 날이니 누구도 손해볼 것 없는 할로윈데이이다. 이를 즐기는 방법은 연령과 가족구성에 따라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지금 여기서는 지극히 미국동네에서 볼 수 있는, 아이들과 함께 하는 할로윈데이에 대해서 말해보고자 한다.



…………………..


할로윈데이 당일에는 그야말로 아수라장인 곳이 있다. 바로 크리스토퍼스트릿이다. 지하철입구를 나가자마자 이미 만취한 사람들에서부터 서로를 사랑하는 사람들, 그리고 한참 파티 중인 사람들로 가득 차있다. 크리스토퍼스트릿에는 맛집과 펍도 많아서 할로윈에는 그 분위기가 더욱 가중된다. 하지만, 저녁에 아이들과 함께 할로윈분위기를 느끼고 싶어 할로윈퍼레이드를 보러 갔다가는 정말 인산인해에 아이를 놓쳐버리는 사태에까지 이를 수 있기 때문에 비추하는 바이다.


대신 우리에겐 낮이 있다. 할로윈데이행사도 코로나 이전과 이후로 나뉘는데, 아이와 함께 미국을 건너간 해부터 코로나가 시작되었기 때문에 코로나이전이 진정 어땠는지는 잘 모른다. 다만, 미국맘들에 의하면 학교마다 조금은 달랐지만 대부분 할로윈당일에 코스튬을 입고 오도록 공지를 했었고, 아이들도 놀러 오는 기분으로 서로 나눠먹을 사탕을 들고 등교했었던 듯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심지어 내가 다시 한국으로 돌아올 때까지도) 그 문화는 사라졌다. 코스튬을 입고 아이들이 할로윈스피릿을 만끽하다 보면 사회적 거리를 유지하기 어려웠으리라는 판단때문이었겠지만, 코로나가 어느 정도 해제된 이후에도 코스튬은 금지였다. 나와 내 작은 아이는 할로윈데이를 제대로 즐겼던 적이 없어서 그 이전을 회상하며 아쉬울 것이 없었는데, 미국맘들 사이에서는 아이들이 놀 수 있는 것들이 하나둘씩 빼앗기는 기분이라며 몹시 슬퍼했다.


하지만 노는데 진심인 미국인들이 그냥 넋놓고 있을 리가 만무했다. 학교에서는 할로윈을 즐길 수 없는 상황을 매우 안타깝게 생각하며, 주말행사로 바꾸어 야외에서 실시하더랬다. 학교와 학부모회에서 마련한 주말할로윈행사는

마치 구에서 소규모로 진행하는 행사처럼 각이 잡혀 있었다. 일단, 코스튬을 입은 아이들이 공원을 따라 둥글게 일렬로 행진을 한다. 그리고 퍼레이드가 이뤄지는 중간중간, 사탕을 나눠주는 학부모가 서있다. 그들은 거의 강탈되듯 사탕을 빼앗긴다. 이윽고 간단한 퍼레이드성 걷기가 끝나는 곳에는 비눗방울장인분이 열혈비눗방울쇼를 연출하고 있고, 초청받든 연주자들이 축제음악을 연주한다. 서로의 거리를 재어보던 그들이 이 날만큼은 사회적 거리와 상관없이 서로를 부둥켜안고 손잡았다. 이것만으로 충분히 할로윈을 즐기는 미국문화를 체험했다고 생각했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잘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들의 할로윈에 대한 열정을.


다음 해가 되었다. 2022년으로 어느 정도 코로나가 해제된 해였지만, 학교는 여전히 코스튬을 금지하고 주말파티로 전환하였다. 대신에 2022년 10월 31일에는 동네의 할로윈행사가 코로나 이전처럼 이루어졌는데, 사실 살면서 그런 모습은 처음 보았기 때문에 아이들보다 내가 더욱 신나더랬다.


조그마한 상점이나 슈퍼마켓에서조차 사탕을 챙겨서 나눠주고, 각 레스토랑에서 만든 과자를 나눠주는 커뮤니티. 90년대에 동네이웃이 이사왔다며 떡을 건네던 그 시절처럼 커뮤니티가 모두 힘을 합해서 아이들을 응원하고 있었다.  누가 돈을 대는 것도 아니지만, 커뮤니티가 있기에

서로 잘 살 수 있다는 걸 경험한 그들은 자발적으로 모두가 웃고 떠는 장을 만들어주었다. 내가 내 돈을 내고 놀이동산에 간 것도 아닌데, 이렇게 즐거울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 뭔가를 건네받을 때마다 머리를 조아리며 감사의 표시를 듬뿍 하는 나와는 다르게, 땅콩알레르기가 있는 아이는 사탕에 땅콩이 들었는지 꼼꼼히 확인하고 사탕종류를 바꾸기까지 하더랬다. 친구들과 함께 받는 사탕바구니는 점차 무거워졌고, Trick or Treat이라기보다는 Take it or not에 가까웠던 동네행사는 그렇게 끝이 났다.


물론 여기서 끝날 리가 없다. 2차전은 아파트 내부이다. 원래는 다른 건물이든 자유롭게 드나들며 Trick or Treat행사를 즐겼는데, 코로나 이후로는 각 건물이 좀 폐쇄적이 되었다고 한다. 그래도 어떻게든 할로윈을 멋지게 만들고 싶은 우리아파트매니저는 할로윈행사에 참여하는 세대가 표시된 종이도 나눠주며 아이들이 즐길 수 있도록 했다. 그 동그라미표를 보면서 한 층 한 층 클리어해 나가는데 참여 호수거 직접 사탕을 줄지, 문 밖에 사탕을 둘 지까지 쓰여있어 그들만의 세심함에 놀라고 말았다. 노는 데 일가견이 있는 사람들이다.


이렇게 멀리 나가지 않더라도 주변에 할로윈을 곳곳에서 느낄 수 있는 일들이 많으니 아이들은 이내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시간을 아쉬워했다. 어른들은 이미 기가 상당히 빨린 상태라 집이 그립다. 그래도 같이 달콤한 트릿을 위해 돌아다녔던 장면은 계속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이번 해는 영어학원에서 행사하는 게 아니라면, 아무래도 할로윈은 패스할 것 같다. 그래도 그냥 보내기 아쉬우니 동짓날에 팥을 쑤어봐야겠다. 그 팥으로 팥죽도 만들고, 팥빵도 빚어 먹을 생각에 군침이 돌면서 가사노동을 생각하니 코스튬을 사고 싶어지고 마는 저녁이다.

이전 17화 가을이 되면 무조건 애플픽킹-BMW이용자의 뉴저지 편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