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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배추 Apr 01. 2024

메이시스의 땡스기빙퍼레이드

땡스기빙에 날아오르는 거대한 풍선들의 행진

땡스기빙데이가 다가오면, 제일 먼저 냉장고 안을 들여다본다. 우리나라의 구정에 휴무인 백화점들이 많은

것처럼, 미국의 땡스기빙데이에는 많은 상점들이 쉬기 때문에, 연휴가 시작되기 전에 음식을 구비해 두는 것이 무척 중요하다. 깜빡하고 냉장고 텅텅 빈 채로 땡스기빙데이를 맞이하게 되면, 구정과 추석이 끝나길 바라는 며느리의 마음처럼 친정이 아닌, 마트로 달려가고 싶어 진다.


그도 그럴 것이, 땡스기빙에는 대부분의 미국인들이 자신의 친정과 친척 등을 방문하러 떠나고, 다 같이 모인 가족들은 마치 전을 부쳐 먹는 우리나라처럼 칠면조, 감자 등 상다리 부러지게 차려놓고 먹기때문에 다들 사전에 장을 본다. 물론 예외도 있다. 제사음식이 번거로운 것처럼, 제대로 쪄낸 터키요리가 쉽지는 않아서 땡스기빙요리를 케이터링로 대체하는 가정도 많고 이제는 홀푸드나 타겟도 운영시간만 살짝 바꿔서 열기도 한다. 오픈한 델리도 있으니 외식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폭풍우가 오면 자동반사처럼 물과 휴지를 주워담는 것처럼 여전히 사람들은 땡스기빙데이가 오기 전에 분주하다.


전국적으로 연휴인 만큼, 땡스기빙 자체의 좋은 점인 가족을 만나서 담소를 나눈다는 점 말고는 특별히 재미있을만한 것은 없지만, 한 곳은 다르다. 바로 그곳이 뉴욕 맨하탄이다. 땡스기빙 당일에 메이시스 땡스기빙퍼레이드가 열리는데, 거리는 바리게이트가 세워지고 바람 빠진 풍선들이 준비하기 시작한다.


‘메이시스 땡스기빙 퍼레이드’


이름 그대로 메이시스백화점의 스폰서로 이루어지는 행사인데, 하늘을 나는 풍선을 건물만큼 크게 만들어서 퍼레이드를 진행한다. 코로나로 파산까지 갔던 메이시스라서 더 이상 땡스기빙퍼레이드는 없어지는 거냐며 다들 노심초사했는데, 규제가 풀리면서 매출의 고공행진을 찍으면서 그들의 건재함을 다시 보여주었다. 즉, 앞으로 땡스기빙퍼레이드는 열릴 것 같다.(웃음)소비, 만세!


사실 보통 큰 행사는 나라에서 하는 경우가 많다보니, 미국에서 주목받는 커다란 행사를 백화점이 주도한다는 사실이 매우 신기했는데, 노는 데 허투루 하는 법이 없는 미국인들은 풍선지구대회를 나가는 것처럼 건물만큼 커다한 풍선을 잔뜩 만든다. 그 크기를 가까이서 보면 압도적인데, 문제는 그걸 보기가 참 어렵다는 것이다.


퍼레이드가 시작되는 시작은 9시 정도인데, 그 훨씬 전부터 사람들이 길거리에 모여 진을 이루기 시작한다. 시작시간에 맞춰 가면 지하철입구에서부터 통제가 되기 때문에 진입자체가 어려운 데다가, 일단 어디든 올라탈 수 있는 곳만 있으면 철봉이든 어디든 전부 매달린 상태로 발 디딜 틈이 없다. 심지어 새벽부터 출동하여 자리를 맡는 사람도 많다. 미국에서 공짜로 열리는 유명한 행사는 이 정도는 감수해야하는 것 같다.


물론 메이시스 퍼레이드가 펼쳐지는 6번가 건물에 사는 사람들은 6번가 통제지역을 지나다닐 수 있는 출입증을 미리 받아 이동한다. 심지어 퍼레이드가 잘 보이는 곳에 위치한 회사들은 땡스기빙데이 때 회사파티를 열어서 가족들을 초청하기도 하는데, 와인과 다과를 마시며 즐긴다고 한다. 따뜻한 실내에서 편안하게 볼 수 있는 그들이 어찌나 부럽던지.


사실 아이를 데리고 아침부터 퍼레이드를 보러 가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나도 가지 말까 했었지만, 미국 전역에서 모두 주목하는 행사라서, 또 뉴욕에 살고 있던 때라서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대신에 백번 양보해서 조금 늦게 행사장소에 도착했더니 이미 사람들로 만원을 이루고 있었다. 28번가의 8번가까지 갔다가 6번가로 서서히 올라갔지만 뉴욕경찰이 바리케이드를 치고서는 7번가 도로부터 다 막아놓았더랬다. 저 멀리서 보이는 풍선들은 분명 건물만큼 큰 모양인데 너무 멀리 떨어져서 보다 보니, 내 엄지손가락의 손톱처럼 보인다. 그래도 맨하탄의 건물사이를 저런 커다란 풍선들이 떠다닌다는 게 너무나 신기하다. 아이도 봤으면 좋겠는데 아침부터 서두르는 게 싫었던 모양인지 화가 나있다. 조금 더 가까이 진입이 가능해서 다가갔다. 아쉽게도 내 앞에서 저지당해서 나는 멀찍이 떨어져서 혼자 보았다. 다 같이 보면 좋았겠지만  아이만이라도 잘 보길 바랐다. 그런데 뭔가 단단히 화가 난 아이는 계속 화를 내기만 해서 결국 다시 내게로 돌아왔고, 어르고 달래서 저 멀리 보이는 엄지손톱만 한 풍선들을 같이 지켜보았다. 아이는 조금 풀렸는지 힐끗 보기 시작했다. 그랬더니 이제는 보이지 않는다고 성화다. 도대체 우리가 왜 이 멀리 나와서 이 고생을 하고 있나 현타가 왔지만, 다행히 집에 가기 전에 도로규제가 조금씩 풀리면서 아주 살짝 커다란 풍선이 눈앞을 지나가는 모습을 보았다. 아이의 눈도 덩달아 커진다. 잠시동안이었지만 저렇게 커다란 풍선이 떠있을 수 있다는 사실과 그 풍선들이 건물들 사이를 다닐 수 있다는 모습을 본 아이가 나와는 조금 더 다른 세상을 볼 수 있기를 희망해 본다.


물론 그 다음 해부터는 아예 퍼레이드는 갈 생각을 안 하고, 그냥 맛있는 음식을 잔뜩 사놓고는 하루종일 먹고 눕는 게으름뱅이의 연휴를 보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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