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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배추 Apr 08. 2024

한겨울이 되기 전에 브롱스주 라이트쇼!

Bronx Zoo Holiday Lights 놓칠 수 없어요

브롱스주.


동물원이라고 하면 어린이대공원처럼 저렴한 가격으로 어린이들과 귀여운 동물들을 볼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모든 게 비싼 뉴욕에서 동물원만 예외일리는 없었다. 계산기를 두드려 보자면, 세 가족이 브롱스주의 티켓을 사서 가면 적어도 100달러 이상의 지출은 필수불가결이었다. 물론 이 가격도 순전히 물 한 모금도 사 마시지 않을 때의 이야기다.


다행히 일주일에 하루, 수요일만큼은 공짜로 브롱스주가 모두에게 오픈이 된다. 뉴욕주의 경우, 박물관이나 미술관 등을 공짜로 오픈하는 날이 더러 있는데, 브롱스주는 수요일이 해당되었다. 그리하여 뉴저지에 살던 시절, 큰 마음을 먹고 브롱스까지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가본 적이 있다. 매우 멀었고, 겨우 도착한 브롱스동물원에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 브롱스에 사는 사람들이 다 모였나?‘


문제는 그때의 날씨가 찜통 같은 더위였다는 사실이었다. 체면을 차리는 사람들조차 서로에게 오만상을 피워가며 그르렁거리는데, 동물들은 그럴 힘마저 상실했는지 다 널브러져 있거나, 그늘을 찾아 모습을 감추었더랬다. 원래부터 자연친화적인 동물원이다 보니 동물이 갇혀 있는 우리도 규모가 컸고, 그 때문에 찾기 어려운 동물은 무더위가 더해져 동물을 찾아볼 수 없게 만들었다.


지쳤었다. 다시 갈 이유를 잃고 동물원로 향하는 발걸음을 끊게 되었다. 적어도 내 돈으로 티켓을 사서 올 수 있는 날이 오지 않는 이상, 다시는 못 오겠다 생각했다. 물론 공짜로 입장가능한 날이 있다 보니 굳이 티켓을 사서 오기란 쉽지 않았다. 한국에서 보는 보아뱀이나 뉴욕에서 보는 보아뱀이 다를 리가 없을터이기도 했고.


그랬는데,,

분명 그랬는데,,,

우연히 브롱스쥬의 홀리데이라이츠가 그렇게 볼만하다는 말을 듣게 되었고, 그 한마디로 우리는 다시 브롱스주에 가게 되었다.


한국에서는 워킹맘으로, 뉴욕에서는 전업맘으로, 금전적으로 절약해야 하는 이유는 산더미였지만, 마법의 문장 “지금 아니면 언제 보겠어? “라는 마음으로 비싼 티켓을 끊었다. 문제는 막상 끊고 나니 그 멀리까지 어느 세월에 가며, 밤에 브롱스를 걸어야만 한다는 사실 역시 슬슬 걱정이 되었다.


브롱스라는 동네가 안전한 동네도 아니고, 총기사건이 일어났다 하면, 보통 브롱스가 대부분을 차지할 정도로 사건사고가 많다 보니 더욱 그랬다. 브롱스주 근처역에 도착한 우리는 앞만 바라보고 걸었는데, 다행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생각보다 괜찮았다. 물론 차로 이동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아서 우버를 이용해서 가면 더할 너위 없지만, 이미 Bronx Holiday Lights 티켓값도 비싼데 우버까지 탈 수는 없었다.


이윽고 브롱스주 출입구에 도착하고, 티켓을 검사하고 입장하였다. 아직 해가 떠있는 상황이라 주변의 동물들을 둘러보았다. 늦가을이었기 때문인지 동물들은 한여름처럼 축축 늘어있지도 않았고, 새가 가득한 건물에는 생김새가 특이한 새들도 가득 있어서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아직 라이트쇼까지 시간이 남아있었지만 시간이 더디게 흐르지만은 않았다.


해가 조금씩 기울어가는 초저녁,  중간중간 숨겨놓았던 동물모양의 조각상들이 불빛을 뽐내며 드러나기 시작했다. 전반적인 모습은 우리나라 청계천의 빛초롱축제와 큰 차이가 없다. 다만 그 공간이 브롱스주이고, 라이트쇼사이사이에 동물들이 간혹 보인다는 것, 그리고 모든 오마쥬가 다 동물이라는 것이 달랐다. 밤의 브롱스를 겪어본 적이 없는데, 숲으로 이루어진 동물원에서 보는 라이트쇼는 의외로 신선했다. 밤이란 색은 모든 걸 뒤덮으면서도 빛만큼은 더욱 영롱하게 빛나게 보여주기 때문일까? 살아있는 동물이 아닌데도 연 씬 사진을 찍게 하는 힘이 있었다. 그리고 엄청난 빛을 뿜어내는 거대한 인간공작도 보이고, 인간사슴도 보이니 반하지 않을 수 없는 노릇이었다.


물론 그중에서도 모닥불에 구워 먹는 마시멜로는 동물원나들이의 정점을 꼽았다. 처음으로 마시멜로를 불에 구워 먹는 터라 마시멜로는 까맣게 타기 일쑤였고, 그럼에도 좋다고 계속 마시멜로를 본인이 굽겠다며 또다시 불을 붙여가며 그렇게 즐겼다. 숲이 있고, 동물이 있고, 동물모양의 라이트가 있는 곳에서 모닥불이라니 그냥 그 상황이 너무 좋았다.


모닥불의 타닥타닥 소리.


브롱스라는 동네가 아무리 위험해도 여긴 동물원 안이었고, 평온했으며, 안전했다. 물론 집에 가야 하는 상황까지 생각해야 하니 머리가 지끈거렸지만, 라이트쇼를 보러 온 사람들은 많았고, 사람 많은 곳에는 또라이가 있을지언정, 강도는 없을 것이라 생각되어 나름 안심이 되었다.


규모가 워낙 크다 보니 모든 곳을 다 돌아보았을 때는 다리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더 이상 걸을 수 없다고 생각될 때가 돼서야 우리 셋은 겨우 브롱스주를 나설 수 있었다. 또 한 번 더 가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그 뒤로 한 번을 가기 힘들었던 뉴욕의 동물원.


그때의 경험이 아직도 머릿속에 선명하게 남아있는 걸 보면, 한 겨울이 오기 전에 얇은 자켓을 입고 브롱스주를 거니는 밤길은 여전히 매력적일 거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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