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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 슬 Oct 21. 2023

내가 사랑했던 모든 것들에 대해서

돌덕에서 야빠가 된 한 인간의 자아 성찰기


내가 사랑했던 모든 것들에 대해서


지디가 말했다. 영원한 건 절대 없다고

세삼 이것보다 맞는 말이 어디있을까? 서른의 나는 더이상 단 음식을 많이 먹지 않으며, 예전처럼 단걸로 나를 채우는 일이 즐겁지 않다. 나의 첫사랑 창민 오빠의 결혼에도 슬프지 않았다. 아니 세상이 반쪽으로 갈라질 것 같았는데... 그리고 나는 오디션 프로에 나온 이제는 오빠가 아닌 어린 친구들에게 몇 번의 눈길을 주었다. 그건 오빠들이 아홉시 뉴스에 너무 많이 나온 책임도 있습니다. 제발 이제 그만 연예인 그만하실 분은 그만 하시고 나머지 분들은 사회면 말고 연예면에만  나오기로 우리 손가락 걸고 약속해요. 내방의 침대, 일기장, 고양이, 아주 친한 너의 애인 아 뭐 그런 거 안 되셔도 좋습니다. 제발요.


누군가의 꿈을 응원할 정도의 마음의 여유가 사라졌으며, 나 자신을 응원하기도 벅차다. 듣고 있나 나 자신 좀 잘 되어보자꾸나. 진작에 잘생긴 남자들 말고 나를 응원하고 살았으면 내가 더 잘 됐을까? 실은 나는 이 마음에 대해선 회의적이다. 나를 응원하고만 살기에 삶은 너무 넓고, 재밌는 것들은 넘쳐나니 말이다.


돌덕후의 최후는 뮤덕이라 했던가. 나는 아직 최후로 가지 않았다. 그들의 병크에 지쳐버린 나는 해외로 마음을 돌렸다. 몸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는 옛 선조들의 말 하나 틀릴 것이 없다. 나는 귓구녕에 사대주의가 박힌 인간 마냥 영어 가사로 된 노래만 듣는다. 그들과 나의 거리만큼 나의 일상을 지킬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들의 내한을 기다린다. 돌덕에게 남은 것은 익룡처럼 소리칠 공간의 부재가 되시겠다. 나는 이제 실력파? 가수의 콘서트장에 한 마리의 익룡으로 자리잡았다. 입덕엔 단 한가지 이유가 필요해도 탈덕엔, 그러니까 내가 너를 사랑하며 참은 수천 수백가지가 한 번에 폭팔하여 일어나는 화학작용이 필요하다. 나에게 그 불씨를 지핀 약품은 다름 아닌 실력이었다.


물론이지 실력좋은 아이돌도 많겠다만, 어머니가 내게 물려주신 소중한 두 눈은 실력에 돌아가지 않았다. 나의 눈은 오로지 그의 얼굴, 얼굴, 얼굴, 그리고 얼굴. 얼빠의 최후는 탈덕이 되었다. 나는 그의 개인 팬미팅에서 대 실망을 하고서 탈덕하기에 이르른다. 본인의 자아 성취에, 본인의 성장에 제 돈을 쓸 순 없어서 말이에요. 적이요? 실력을 갖추고 데뷔를...기대감을 가지고서 들어가기 전에 샀던 굿즈들을 정말 어떡하면 좋니? 그래도 굿즈에 박힌 당신의 얼굴 꽤나 잘생겼어요. 몇 번의 실패 끝에 나는 알게 되었다. 굿즈는 보관용이 아니다. 미래의 내가 ‘새 굿즈’를 50리터 쓰레기봉지에 버리며 지구야 미안해!를 외치는 것보다 닳고 닳은 굿즈를 버리는 것이 훨씬 삶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차라리 열심히 들은 기억이 있는 cd는 나를 위한 추억이라도 있다만서도..손때 하나 없는 굿즈들을 볼때마다 오는 현타란...


깨끗한 굿즈를 보며 뿌듯함보다 차라리 저 돈으로 햄버거나 먹을 걸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을 보아라. 마음은 그렇게나 가변적인데, 당시엔 그렇지 않다.


영원할 것 같았던 마음은 당시의 마음이다. 그리고 그 마음은 그 당시만큼 아름답게 불타오르지도 않는다. 오늘의 사랑을 내일로 미룬다고 더 사랑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삶이란 원래 그런 것이 아니었던가. 어제 외우지 않은 영어 단어를 내일 외우지 않았던 학창시절처럼.


모두 다 한 때라고 하는데, 어떡해요. 체내 덕후력이 일정 비율 필요한 저는 그게 안 되어서 말이에요. 매일 매일이 한 때 입니다. 좋아하는 것을 기다리는 것 만큼이나 신나는 게 없어요. 내가 안 해도 남이 열심히 하는 것만 봐도 마음이 풍족해지거든요. 정말! 침대에 누워서 남들이 열심히 하는 거 보는 그 세상 꽤나 마음에 들어요. 저는 말이죠.... 이건 농담이고, 무언가를 열렬히 좋아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 또한 능력이다. 나는 무얼 해도 너무 열심히 최선을 다하는 인간인 것을.


요즘 나의 최선은 야구다. 이건 실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가 없는데, 잘생긴 남자가 아니면 채널을 돌리던 내가 화요일에서 금요일까지 야구를 보고있다. 아 축구도 봅니다. 구기종목의 저주를 받으며 티브이에 대고 욕이나 하고 있어요. 미친 사람처럼요.


근데 야구선수 팬들이 그러더군요. 빠따 잘 치고, 공 잘 던지는 놈이 잘생긴거라구요. 아...저는 너무 오랜 기간 아이돌에 장착된 눈알이라 그런가요? 빠따 잘치고, 공 잘 던지는 놈은 그냥 야구 잘 하는 사람인 것 같아요. 잘생긴 야구선수는.. 아.... 네... 그건 ai 속에 있는 걸루 하고, 잘생긴건 모르겠고. 아 정말... 잘생긴 거 안 바랍니다. 제발요....


굿즈는 쓰라고 있는 것이고, 내일의 나의 마음은 절대로 다를 것이다. 좋아하는 것 만큼이나 가벼운 마음이 있을까? 나는 그 가벼움이 좋다. 그러니까 지금부터 마음이 닿는 데 까지 열심히 야구를 볼 예정이다. 그러니까...삼성 좀 잘해보라고...


그러니 오늘도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기다리며, 꽉찬 하루를 보낼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을 즐겨야지 뭐 어쩌겠어?

어제 내가 사랑했던 것들을 오늘도 사랑하리란 보장이 없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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