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한참 알바 뛸 나이(보조작가의 현실)
어쩐지 숨막히게 힘든 하루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선우정아의 도망가자를 들으며 지하철에서 눈물을 흘렸다. 네, 쪽팔린 거 압니다만. 눈물이 주루룩 났어요. 아 정말 성공해야겠다. 성공을 다짐하며 눈물을 흘렸던 더에는 수만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가장 큰 이유는 텅장이었다. 텅텅텅 비어버린 나의 잔고와 공허한 마음은 정비례의 관계를 이루고 있었으니.
눈물을 흘리는 동안 머릿속에선 이런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아, 이게 내가 살아온 삶의 결과물이라는 것을. 보조 작가는 말 그대로 보조 작가다. 내가 한 보조작가 계약은 프리랜서 계약이었다. 이 계약에 동의를 한 것도, 사인을 한 것도 다름아닌 나였다. 급여가 나오는 계약이 아니었기에 돈을 벌어야 했다. 더 이상 생활을 감당할 수 없어질 무렵, 나는 내가 너무나 열정적으로 일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현실이 시궁창일 땐 언제나 책을 읽었다.
하필 그날 읽은 책이 요즘 애들인지라 눈물이 줄줄 흘렀다. 열심히 일하는 데에도 계속 가난해지는 나.
마침 세금 신고 기한이었고, 홈텍스를 아무리 새로고쳐도 나의 월급이 뜨지 않았다. 아니 받은 돈이 있는데 왜 안 뜨나요? 회사 담당자는 내게 ”신고를 할 줄 모르는 게 아니냐“고 물었고, 나는 짜증이 밀어 올랐다. 그게 뭐라고 못 합니까? 정말로. 맥북이 문제인가 싶어서 켜지는데에 30분이나 걸리는 오래된 윈도우 노트북까지 켜 가면서 시도했는 걸요. 담당자에게 직접가서 신고할 예정이니 사업소득 지급 명세서를 뽑아 달라고 했다.
프린트가 가능한 가계에 들려 사업소득 지급 명세서를 들고서 정발산(쿵쿵따에서나 보던 정발산 역을, 대화행 열차 거의 끝까지 가면서도 머릿속이 복잡했다. 내 스스로 정한 길이고, 이 돈에 사인을 한 것도 나고, 지난 일년 간 벌어들인 돈이 이 금액이라는 사실을 받아드려야 한다. 이건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이고, 꿈꿔왔던 삶에 다가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마음만이 씁쓸했다.
세액을 환급받으며 머리가 깨질 것만 같았다. 이 돈을 벌어서 어떻게 나를 유지하고 살아가니. 정말. 진짜 나 이렇게 살아도 되는건가? 젠쟝. 누가 그렇게나 열심히 일하라고 했니? 그냥 내가 열심히 일했을 뿐. 아니다. 나는 나를 위해 열심히 일했을 뿐인데... 머리가 복잡해져왔다. 열심히만 하면 모든 것이 이루어진다는 성공신화가 깨어졌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열심히를 멈추고 싶지 않았다. 그것마저 하지 않으면 진짜 내 인생이 망할 것만 같은 착각에 빠지고야 말았으니.
통장의 잔고를 보며 절망에 빠졌다. 이거이거 사람 할 짓이 못 되는 구나 하는 생각. 나는 급하게 아르바이트 구인 공고 앱을 깔았다. 다신 이걸 깔 일이 없으리라 생각했는데 말이다. 다시 커피를 뽑아야 하는 시간이 왔다. 아 이놈이 커피, 커피, 커피. 손모가지가 아프겠지만 정기적인 일이 나를 살릴 것이다. 그렇게 들어오는 급여가 나를 더더욱이 숨쉬게 할 것이니 말이다.
아 내가 머리가 아팠던 것은 쓸 돈이 없었던 것이었구나. 내가 이렇게나 자본주의에 찌든 인간이었구나. 첫 알바를 마친 후 받은 월급을 받고선 마음의 안정을 찾았다. 이래서 자기만의 방이, 제 3기니가 필요하구나. 버지니아 울프가 100년전에도 알았던 것을 이제야 찾았구나. 이런 비정한 현실이여. 그래도 어쩌겠는가. 내가 선택한 내 인생인 것을. 살아보자. 해보자. 존버는 승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