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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 슬 Sep 26. 2023

예술병에 걸린 제가 드라마요? (feat. 주제파악)

살다보니 내가 더 좋아지는 30대 여자 사람 이야기



부처님의 은덕으로 구제된 중생(나)은 드라마를 제작하는 회사와 보조작가 계약을 하게 되었다. 이것 참 감사한 일이었으나, 나에겐 고질병이 하나 있었는데, 완치가 그리도 어려운 불치병이었다. 맞다. 유망한 바로 그 이름 예술병 되시겠다


예술병도 도통 예술병이 아닌지라, 말기였다. 말기. 멜론 탑텐은 귓구녕에 넣지도 않았고, 드라마는 본 적이 없다. 고전문학만 끄적이던 시절도 있었다. 여려분, 모두 그런 시기를 겪으며 어른이 되는 것이 아니겠어요? 질풍노도의 시기였다고 칩시다. 보조작가 계약 전 10년간 내가 본 드라마는 단 두 편이었다. 디어마이프렌즈와 멜로가 체질. (지금은 방영하는 모든 드라마를 다 봅니다. 그래야 뭐든 될 것 같단 말이죠...)


예술병에 걸렸다고 하기엔 내가 쓴 소설은 좀 황당하다. 최종심에 든 나의 소설 ‘그게 사랑이야ㅁ’는 최강창민이 결혼한다는 소식을 듣고서 쓴 소설이다. 네, 사람이 이렇게나 입체적입니다. 나는 언제 처음 사랑을 배웠을까? 솔직히 많은 소녀들의 첫사랑은 ‘오빠’들이 아닌가! 소설은 현실을 반영해야 한다고 강렬하게 믿는 나는 한 소녀의 완덕기를 다루고 싶었다. (탈덕과 완덕은 완전히 다르다. 완덕은 이 덕질이, 강렬한 사랑의 주기가 끝나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내 인생에 거지같은 탈덕도 많았지만(아홉시 뉴스에서 그만 만나요. 술은 한강이 보이는 니네들 집에서나 쳐 자세요. 요즘 배달 잘 되잖아요. 다들 서울 살잖아요. 안주는 배달하시고, 여자친구 같은 시기에 한 명만 사귀시고..네 도박하지 마시고, 술 먹고 운전 좀 하시 마세요. 너무 상식적인 일들이잖아요? 필요한거 있으면 본인 돈으로 사시고, 돈 많잖아요.), 창민오빠만큼은 내 사랑을 완벽하게 끝내주었다. 오빠, 애도 보셨더라구요. 행복하세요. 잘 사세요. 아마 이런 말 안 해도 오빠는 잘 살 거 알아요. 오빤 그런 사람이니까요. 나는 오빠의 행복을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한때 내가 너무 사랑했던, 다른 여성들과 눈만 바주쳐도 홧김에 눈깔에서 불꽃이 튀어나오게 했던  첫사랑의 결혼이라니. 남자의 첫사랑만 평생가는 것이 아니다. 구오빠의 생일은 아이디와 비밀번호에 남아 병크를 일으켜도 손에 익어 지울 수 없는 것이 아닌가?


어린 시절의 기억을 털어쓴 하이퍼리얼리즘에 입각한 소설덕에 나는 보조작가라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다시금 말하지만, 지난 10년간 드라마 판에 흥한 드라마가 얼마나 많은지 다들 알지 않은가? 그나마 본 드라마는 죄다 영국이나 미국 드라마였다. 나는 도깨비, 시크릿 가든, 상속자들, 태양의 후예 등등 알만한 드라마 한 편 보지 않았다. (언급하고 보니 모두 김은숙 작가님의 드라마인데.. 이것만 안 본 게 아니다.) 또 오해영, 청춘시대, 시그널, 파스타, 질투의 화신 등등등 (참고로 지금은 거의 다 봤습니다.) 하루종일 중독자마냥 드라마를 틀어 놓고 살면서 그동안 못 본 드라마들을 점령하는 중인데, 문제는 내가 그녀들의 선택을 응원할 수 없다는 데에 있겠다. 이를테면, 5월의 청춘에서 명희가 희태에게 빠지는 순간을 보며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명희야! 뭐하니! 인생 펴야지! 독일 가야지! 아 뭐하니 명희야!!!! 남자가 뭐라고.. 물론, 두 사람의 사랑이 비극으로 끝날 것이란 슬픔이 클리셰고 맛도리인거 네 저도 압니다. 근데 제가 그 부분에 쫌 미맹이라.. 이래서 내가 데뷔가 안 되나 봐요. 이런 거 좋아하시는 분 있나요? 그렇다면 제가 악착같이 데뷔하겠습니다. 새로운 맛을 열어 볼게요....


다시금 말하지만, 당시 10년간 내가 봤던 드라마는 단 두 편 이었다. 하나는 디어마이프렌즈, 또 다른 하나는 멜로가 체질. 디어마이프렌즈가 나오던 당시엔 노년의 삶을 다룬 소설들이 각광받고 있었다. 오베라는 남자, 창문을 넘어선 100세 노인. 나는 드디어 한국도 노년을 다루는 작품이 나오는 다는 사실에 감탄하여 본방사수하던 기억이 있다. 이후 멜로가 체질이 나오기 전까지 디마프만 20번 정도 돌려봤고, 윤여정 선생님의 손자 역으로 나오는 배우가 키가 참 크고 잘생겼다는 생각을 했었다. 역할이 너무 작은 것이 아닌가 싶었는데, 네 그는 스타가 되었어요. (변우석 배우십니다) 아마도 그 때 처음 드라마라는 장르에 관심이 생겼다. 이렇게 따뜻하고 좋은 글을 쓸 수 있다니. 기회가 온다면 한 번 배우고 싶다 정도의? 나는 바로 로버트맥키의 책을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책을 읽으며 생각했지.. 아.. 못하겠다고. 근데 또 사람이 하고 있어요. 인생은 진짜 모르는 일이니까요. 그리고 보조작가 시작하면서 친구들이 내게 한 말이 있다.

“‘멜로가 체질’ 같은 거 써줘.”

난 언제나 같은 대답을 했다.

“ 야 그걸 내가 썼으면 여기있겠냐? 방송국에 있지.“

친구들은 나의 실력을 너무 과대평가한다. 그리고 나 역시도 나 자신을 과대평가 하고 있었다. 나는 타인의 작품을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았다. 내가 더 잘썼다는 착각(네 다 고쳤어요. 잘 쓰면이러고 있지 않는단 사실을 이제 너무 잘 알아요)과 질투로 점철된 삶이었는데... 유명인이 책을 내면 화가 나서 잠이 오지도 않았다. 화난 마음을 달래느라 밤을 지새우기도 했다. 도대체!! 당신이!! 왜!! 책을!! 냅니까!! 질투가 이렇게 무섭습니다. 여러분. 타인의 글을 미워하고, 시기하고, 질투하다 보니 내 삶도, 글도 별로였다. 게다가 이런 마음이니 내 글이 재밌었을리가 있을까?


보조작가 일을 시작하지 않았으면, 화가 난 채로 우울한 글들을 계속해서 뽑아냈을 지도 모른다. 막상 보조작가일을 시작하니 내가 얼마나 세상을 쉽게 보고 있는가를 알게 되었다. 한 편의 드라마가 나오는 일은 정말이지!! 어려운 일이며, 제작 단계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회의와 아이디어가 수렴되는지 알아가는 과정을 배웠다. 좋은 기회였고, 나 자신을 돌아볼 기회가 되기도 했다. 그제서야 나는 주제파악을 하게 되었다. 노잼에 노답이라고 욕을 하며 보던 방영 드라마를 쓰는 작가들도 결국은 프로이며, 돈을 받고 글을 쓰고 있다고. 배우는 단계인 내가 타인의 장점을 보는 능력이 없다는 것은 재앙이나 다름 없다는 사실을. 일을 하며 마인드를 조금씩 뜯어고쳐낼 수 있었다. 나는 망드를 쓸 능력도 없는 작가란 현실을 깨달았다. 게다가 ‘보조’라는 수식이 없으면 나를 작가로 불러줄 곳도 없다는 사실을!!  타인의 장점을 보는 능력을 얻었다. 이건 단순히 글쓰기에만 생기는 장점이 아니었다. 일상에서도 조큼 많이 긍정적인 인간이 된 기분을 느꼈달까나...


실은 내가 그런 사람인 데에는 뭐 성격적인 부분이 좀 크다. 이상하리만큼 나는 나 스스로에게 엄격한 편인데, 덕분에 남에게도 엄격했다. 이를테면 드라마나 영화를 보다 발연기를 해대는 배우를 보면 참을 수가 없는 것이다. 아니 저 사람은 밥 먹고 돈도 받고 저것만 하면서 왜 못해? 하는 잣대를 들이대는데... 그렇다. 나는 어른이고, 정신을 차렸으며, 이보시게 당신도 밥 먹고 글만 쓰지 아니하는가? 자네의 글을 다시금 돌아보시게나. 당신의 컴퓨터에 있는 아이디어만 끄적거린 결과물도 없는 글들을 보면 한 편의 드라마를 끝내는 배우들의 커리어와 비교도 되지 않는다는 것을 말이다. 그들은 돈을 받고 일하는 프로의 길에 들어섰다는 사실까지도! 갑자기 마음이 헛헛해졌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이게 현실인 것을. 현실로 돌아온 나는 예술병을 뜯어고쳤고, 타인의 장점을 들여다 보려 노력하는 중이다. 헛헛한 마음은 따땃한 라떼로 채워나가는 어른이 되었으니... 오래 살아보자. 그러다보면 뭐 데뷔하겠지. 언젠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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