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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 슬 Oct 19. 2023

스물 아홉살, 등단을 못하면 죽기로 결심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삼십대를 기다렸지 증말

.

내 인생의 대부분의 꿈은 작가였다. 작가가 되기 전의 나의 꿈은 수의사였는데, 그때도 지금도 사람보다 동물을 더 사랑하는 내게 딱 맞는 장래희망이 아닐수가 없었다. 문제는 나의 머리가 이과적 지식을 습득하는데에 상당한 문제를 지녔다는데에 있다. 내가 과학이라는 심오한 세계를 배운 이후로 수의사라는 멋진 꿈을 내다 버렸다. 신은 내게 과학이라는 위대한 학문을 이해할 두뇌를 주지 않으셨다. 그렇다고 이해하지 못할 것들을 암기로 떼워낼 정도의 명석한 두뇌도 없었다. 동물은 수의사가 아니여도 사랑할 수 있지 않은가? 나는 다른 방식으로 동물을 사랑하기로 결심한 채 수의사라는 원대한 꿈을 포기하기에 이른다. 이때부터 나는 자기객관화에 능한 인간이었으리라. 장하다. 그래도 이과를 갔어야지. 컴공갔어야지. c언어를 배웠어야지. 아니 비트코인...아니 삼성전자를....


쨋튼 돌고 돌아 작가가 되기로 결심했다. 이십대 후반, 나는 생에 처음으로 아르바이트를 시작하며 엄마와 아빠에게 나의 견해를 표명했다. 나 이렇게 데뷔해서 보란듯이 작가가 되겠다는 굳은 의지를 가지고서. 내게 타임머신이 있다면 나는 속삭일 것이다. 과거의 나 자신아 잘 들어. 취직하고도 작가는 될 수 있어. 차라리 그게 더 경험이 넘치는 편이 될 수도 있을 건데 말이야....


나는 패기가 넘치는 20대였고, 아르바이트를 하며 글을 썼다. 당연, 경험도 지식도 없는 어린 작가의 글이 그렇게나 뛰어날리가 없었으며, 무엇보다도 나는 천재가 아니었다. 그러면서 내겐 요상한 자신감 같은 것이 붙기 시작했는데,


계속하면 언젠가는 된다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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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나의 롤모델은 쉰살에 작가가 되어, 죽음 앞에서도 맥킨토시 켠 채 글을 쓰던 찰스부코스키였다. 그리고 꿈은 크게 가지는 것이 답이 아니었던가? 아쉽게도 나는 부코스키처럼 술을 마시거나, 방탕한 삶을 살거나, 나의 방탕함을 글로 남겨내지도 못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내겐 찰스부코스키 손톱만큼의 솔직함도 없었다.


그래서 이십대의 마지막, 그러니까 스물아홉 나는 그런 다짐을 했다. 올 해 안에 등단을 못한다면 나는 다신 글을 쓰지 않으리라. 그리고 이런 삶이 무슨 의미가 있겠니. 살아서 뭘 하겠니. 더이상 삶의 이유가 없다. (여러분 삶의 이유는 이런 곳에 있지 않아요. 삶의 의미는 떡복이와 내일 먹을 크리스피 크림 오리지널 글레이즈, 엄마가 보내준 반찬 등등에 있습니다)


스물아홉의 12월 31일. 또 나는 아무런 연락도 받지 못했다.

여전히 절망스러운 겨울이었다. 젠쟝. 또 이렇게 한 살 먹는구나. 이제서야 취업에 뛰어들기엔 너무 늦은 것 같고(아닙니다. 여러분. 늦지 않았어요. 어디든 나가요. 이력서를 내세요. 전 그냥 우울증이 심했을 뿐입니다.), 하긴 올해까지 쓰고 말기로 했으니까. 그래서 나는 이제 삶을 그만 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살아서 뭐해. 죽어야지. 죽어야지. 죽어야지 하는 생각이 들 무렵, 나는 나에 대해 생각하기로 했다. 근데, 내가 언제부터 그렇게나 계획적이었지? 내가 그렇게나 계획을 잘 지켰던가? 나는 내가 지키지 못한 계획들에 대해 생각했다. 그래. 뭐 어때. 올해 못한 건 내년에나 하면 되는 거 아닌가? 그래서 나는 내년에 등단하지 못하면 죽기로 다짐했다. 갑자기 만 나이를 계산했고, 뭔가 시간이 더 남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12월 31일의 겨울

제야의 종이 울리기도 전에 잠에 들었다. 스르르. 눈을 감고 일어나니 이미 해가 밝았다. 엄마와 아빠는 아침일찍부터 일출을 보고 왔다. 이 부지런한 사람들. 나는 이미 다 뜬 해를 보고서 보낸 영상을 보자 코끝이 또 찡해졌다. 아 이 망할놈의 우울증. 우울증은 확실히 눈물샘의 고장을 유발하는 것이 틀림없다고!


그리고 그  굳은 결심을 지키지 못한 다음해에 나는 모 공모전 최종심에 들어 드라마 제작 작가 회사와 프리랜서 계약을 하게 되었다. 비록 등단은 못했지만.


돌이켜보면 나는 왜 작가가 되고 싶었던가? 당시에 나는 글을 쓰고 싶었다. ‘무엇을’ 쓰고 싶지 않았다. 이제는 내가 왜 글을 쓰고자 하는지 안다. 나는 소설을 너무 사랑하지만, 모든 소설을 사랑하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알기에...

 

나는 도저히 한국 소설 속 남성들을 사랑할 수 없었다. 아니 사랑은 개뿔 이해할 수조차 없었다. 9n년 생, 경상도 출신 여성, 본가 외가 모두 남녀 겸상 안함의 지역에서 자란 나조차도 그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었다. 아니, 왜죠? 설렁탕이 왜 사랑입니까? 차라리 죄책감이라고 하세요. 엄마가 사다놓은 1900년대 초반 단편소설집들은 그렇게 먼지만 쌓였다. 하긴, 해리포터에서 갑자기 김첨지라니요. 좀 천지개벽이긴 합니다. 시대도 다르고, 작가도 다른 그 글을 보며 나는 좀 뭐랄까? 고전 소설에 대한 이해도가 낮았다. 그게 사랑이면, 그게 사랑이야? 아 돌겠네 정말. 그건 비단 소설책 안에서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아...드라마속 남자들이여. 미간의 주름을 펴시고, 어디 감히 주먹을 쥡니까! 정말 돌겠네요. 사랑을 묘사하는 그 방식이 싫었던 것이다. 그리고 뭘 또 사랑을 위해 모든 걸 다 포기합니까? 아 진짜 이 사람들의 선택 갑갑하네. 이해가 안 되는 구만. 아 사랑이 꼭 그런 데에만 있나요? 아 안되겠다. 이거 내가 한 번 살아남아야겠다. 다른 사랑에 대해 쓸 것이다. 케이트 블란쳇이 누군가의 여친역할을 하며 생각했던 그 말을 내게 되뇌인다.


“거머리처럼 살아남아서 이 판을 뒤집어 버리겠어!!”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이해못하는 저 지점 덕분에 나는 계속해서 지망생일지도 모른다. 아, 근데 세계는 둥글고 세상은 변하니까. 그러니까 악착같이 살아서 내 맛에 맞는 글을 써내리라!! 그래서 지금의 나는 죽기는 커녕 악착같이 살아가려 노력하고 있다. 매일 자전거를 타고, 미세먼지를 체크하며 환기를 결정한다. 음료수 캔을 따면 30초 뒤에 먹으며, 당을 조절하기 위해 온갖 카페 음료들을 끊어가는 중이다. 죽긴 왜 죽어. 죽어서 좋을 건 없다. 살아야지. 살아야 글도 내지 않겠는가?


몇년 전의 내가 매일매일 눈물샘이 고장난 상태로 눈물을 흘렸다는 사실조차도 기억나지 않는다. 삶은 이렇게나 쉽게 변하고, 그 속에서의 나 역시도 빠르게 적응해나간다. 그러니 살아보자고! 삶에는 재미난 것들이 많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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