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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 슬 Sep 20. 2023

하, 그때 소원을 구체적으로 빌었어야 했는데....

살다보니 내가 점점 좋아지는 30대 여자 사람 이야기

정확한 소원을 비는 것의 중요성을 몰랐던 한때...


하, 그때 소원을 구체적으로 빌었어야 했는데....


종교에 귀의하는 마음은 없다만, 나는 불교를 좋아한다. 코리안 오버핏 그레이룩의 창시자이자 5000년 조거 팬츠의 역사를 자랑하는 이런 종교를 사랑하지 않을 리가 없다. 보통 절은 산 속 깊은 곳에 있어 찾아가기 힘들다. 그러니까 매일매일 신앙생활을 하는 자들에겐 어려운 일이지만, 나 같은 나일롱 신자에겐 꽤나 괜찮은 종교다. 멀어서 못가겠어요. 제겐 자동차가 없거등여. 그리고 부처님은 제 마음 속에  계시잖아요... 내 안의 부다를 찾아내야 하는 거잖아요? 그렇잖아요. 부처님은 다 이해해주실거에요.


나의 할머니는 착실한 불교신자셨다. 암 수술을 앞둔 와중에도 새벽같이 절에 가서 당신의 기도를 드리고 오셨으니 뭐 말해 무엇하나. 할머니의 불심은 완벽히 배반당했는데, 수술 전 몸을 너무 고생한 탓에 수술은 잘 되었으나 경과가 좋지 않았다. 아픈 사람은 정말로 몸을 고생해선 안 된다.


이 무렵의 나는 아팠다. 말 그대로 몸이 아팠다. 항우울제의 부작용으로 살이 쪘고,(놀랍게도 평균 체중으로 넘어왔고, 주변에서 다들 살이 쪘다고 했다. 지금보다 살이 찌긴 했지만, 평균체중이었다. 이래서 사람들이 아픈 게 아닐까?)  살이 빠지지 않았다. 마음은 매번 아팠고, 사람들의 의미없는 말에도 눈물이 났다. 정말 눈물샘이 고장나서 그런가 타인의 말 한마디에, 별 일 아닌 말에 눈물이 흘렀다.(나는 정말로 눈물이 없는 메마른 인간이다. 영화보다 누가 울면 옆에서 비웃는 사람 그게 바로 저였어요! 그래고 현재는 놀랍게도 눈물이 사라졌다.) 어느정도 였냐하면, 아빠의 친구가 딸 수도권서 대학도 나오고 했으니 직장에 넣어준다는 청탁의 말에도 눈물이 흘렀다. 젠쟝. 내 인생 월급의 기회....그때 갔어야 했는데, 인간의 마음이 이렇게나 쉽습니다. 나는 지금도 이때 왜 울었는지 모른다. 아빠의 생일 케이크 앞에서 눈물을 펑펑 흘려버린 효녀 딸.. 네 그게 접니다. 그때 당황한 가족들의 표정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그 무렵의 나는 엄마와 아빠를 따라 온갖 여행을 시작했다. 이전에는 이런 저런 이유를 대며 공기 더러운 수도권에 머물었던 나였다만, 이상하게도 집에 가고 싶었다. 우울증이 방패가 되었는가 아빠와 엄마의 잔소리가 사라졌다. 그냥 내가 살아있다는 것에 감사하게 된? 이상한 상황. 나는 이 상황을 그냥 즐기기로 했다. (미안!) 우리는 불자들이 모이기로 유명한 섬에 가게 되었다. 아까도 말했지만, 절의 끝자락까지 올라가기 위해 산을 타야 했고, 병약한 체력을 가진 나는 엄마와 아빠를 먼저 보내기에 이르렀으나 두 사람은 의지가 있었다. 아빠는 기어코 적당한 나뭇가지를 찾아 내 손에 쥐어주었고, 산을 올랐다.


정상에 오르니 쾌적하니 뭐니 모르겠고 진심으로 죽을 것 같았다. 제발 앉읍시다. 60대를 바라보는 두 사람의 체력은 보란듯이 나보다 좋았고, 죽을 것 같은 마음을 가지고 정상에 오르자 어마어마하게 큰 불상이 있었다. 이상하게 경외심이 느껴진 나는 지갑에 있는 현금을 털어 함에 넣었고, 간절하게 기도를 올렸다. 제발, 제발, 제발 아무데서나 연락이나 오게 해주세요. 이미 넣은 글이 너무 많거든요. 이날 나는 무슨 귀신에 씌인 듯이 절을 할 수 있는 모든 곳에 돈을 넣고 기도를 올렸다. 간절하고 간절하게, “제발 어디라도 좋으니 제발 전화가 오게 해주세요.”


수중에 있는 현금을 모두 털고 난 후, 가뿐해졌다. 아빠는 다 상술이라며 (아빠의 mbti는 모르지만 100% 대문자 T일 것이다.) 차라리 그 돈을 커피나 사 먹으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너무도 간절했다. 제발, 이 거지같은 상황에서 벗어나는 것은 등단 뿐이리라!!!!!는 되도 않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러분 세상에는 다양한 삶이 있어요.)


그리고 며칠간의 요양을 끝내고 나는 다시 자취방으로 돌아오기 위해 비행기로 향했다. 김해공항으로 태워주는 길에 나는 또 눈물을 흘렸다. 그냥 아빠가 올라가서 뭘 하고 지낼거냐는 질문에 그렇게 울어댔다. 정말 미안해 아빠. 아빠의 단순한 궁금증은 나에게 피해의식으로 다가와 마음을 아프게 했다. 도대체 왜? 우울증이 이렇게나 무섭습니다. 여러분. 아빠의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울던 딸 이제 나 나았어요!내 인생 가장 많이 운 시기가 이때였던 것 같다. 다시 말하지만 지금은 눈물 한 방울도 나오지 않는다. 정말로 고장난 눈물샘으로 뒷자석에 앉아 눈물을 펑펑흘리는 딸에 엄마와 아빠는 당황을 했고, 보통의 경상도 부부가 그러하듯이 언성을 높였다. 두 사람이 언성을 높이자 이게 다 나 때문인 것 같아 또 울었다. 아까보다 더 크게. 두 사람의 목소리보다 더 큰 눈물로 두 사람의 싸움을 잠재운 후에 나는 홀로 쓸쓸하게 공항으로 들어갔다. 화장실에서 눈물을 닦는 와중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들었다.


온갖 르포형 프로그램의 추종자인 나는 모르는 번호를 받지 않는다. 그렇지만 그날은 달랐다. 나는 왜 전화를 받았을까?

“안녕하세요. 혹시 00(당시의 닉네임) 작가님 맞으신가요?”

네? 제가 작가요? 이게 무슨 일이죠? 이때까진 보이스 피싱이라고 생각했는데...

“저희는 000입니다. 지난 번 공모전에 내신 작품 그게 사랑이야를 보고 연락을 드렸는데요...”

이미 그 공모전은 결과가 나온지 한참이나 지난 후였다. 또 떨어졌구나. 그래 내 인생. 내가 무슨 작가야라며 스스로를 미워하고 있던 참인데? 뭐라구여?

”전화 가능하실까요?“

전화를 받아야했다. 그렇지만 나는 비행기에 탑승했어야 했고, 급한 일이 아니면 내일 전화가 가능하냐고 물었다. 비행기를 타야 한다는 말에 나는 문자로 명함을 받고 내일 다시 전화를 나누기로 했다. 전화를 끊고 비행기를 타러 가는 동안 심장이 쿵쿵 뛰었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이 어쩐지 부처님의 사랑이 아닐까? 어린 중생을 어여삐 여기시는 구나.


아 부처님, 저의 소원을 들어주시는 군요. 이럴수가 사랑합니다. 역시 부처님은 신이야. (근데 부처님은 신이 맞죠...) 비행기를 타고 집으로 가는 동안에도 심장이 너무도 쿵쿵 뛰었다. 아! 이게 무슨일이야?


다음 날, 침착한 상태에서 전화를 받았다. 공모전 담당자는 내게 영상 매체에서 일해볼 생각이 있냐고 물었다. 혹시 생각이 있다면 한 회사에 연계를 해주겠다는 말, 나는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예쓰라고 대답했다. 이후 면접을 보고서 드라마와 관련된 회사에 프리랜서 계약을 하게 되었다.


근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때 나는 간절히 다른 것을 빌었어야 했다.

“공모전에 당선되게 해주세요.”

그냥 전화를 부탁했으니, 이게 다 나의 안일함 때문이다. 혹여나 공모전에 글을 넣었다면 아주 구체적으로 소원을 빌길 바란다. ”공모전에 당선되게 해주세요. 가작 말고 당선이요!“


ps. 놀랍게도 해당 공모전에 글을 넣은 후 며칠 되지 않아 제주도의 한 절에서 소원을 빌었던 기억이 있다. 이후로 나는 절에가면 간절하게 빈다. “공모전에 당선이요! 당선!” 문제는 이후로 내가 공모전에 넣을 작품을 완성시키지 못했다는 데에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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