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아통제기의 성장통
원래 삶에는 인생 존망기가 있다. 삶이 너무 재미없고, 이렇게 사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고. 이렇게 내가 세상에 작은 점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이십대의 나도 그랬던 것 같다. 이렇게 흘러가는 삼십대가 너무 싫었다. 아 이렇게 나는 나이만 들고, 삶은 재미가 없고, 이게 무슨 의미가 있지? 삶에는 의미도 있지만, 의미보다 더 좋은 것들은 많은 것을 아직 알지 못한 채로 나를 비관하며 시간을 떼우던 시절이 있었다. 허무함에 빠진 채 침대에 누워 나란 존재에 대해 생각했다. (하지 마세요. 별 의미 없습니다. 우리는 그냥 지구를 거쳐가는 생물일 뿐인 걸요? 우울증으로 가는 하이패스)
나는 왜 태어났으며, 나의 본질은 무엇이며(신분제가 첼폐된 지 백 년도 더 넘은 사회에서, 왕족이 멸망한 사회에서 이게 무슨 의미가 있나요? 우리의 본질은 모두 인간입니다.), 나는 대체 무슨 의미를 가지고 살아가야 하는가? 나는 이제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런 저런 생각과 동시에 과거의 나 왜 그렇게 살았냐. 도저히 나 자신을 사랑할 수 없는 순간이 오게 된다. 누군가 나에게 이건 너무도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우리의 두뇌가 발달하는 과정의 일부일 뿐이란 말을 해줬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프로이트가 말한 초자아의 개념으로 볼 수 있는 전전두피질 때문이라고.
전전두피질은 우리가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알려준다. 옳은 것과 옳지 않은 것을 구분해주고, 충동을 제어하거나 억제해주며, 암울한 상황에서도 긍정적인 면을 찾을 수 있게 하고, 장기적으로 유리하거나 개인의 이득을 초월하는 대의에 도움이 되는 결정을 내릴 수 있게 도와준다. ( p.156, 우리가 사랑에 빠질 수 밖에 없는 이유, 스테파니 카치오프 지음)
문제는 이 놈의 전전두피질이 25세까지 성장한다는 것이다. 아 그래서 내가 대의인 수능을 앞두고도 공부가 하기 싫었구나. 그래서 두 번이나 봤구나. 몸이 먼저 성장해버린 성인은 하지 말아야할 실수를 만들어내고 만다는 것. 인생 정말 절망이 아닐 수가 없다. 젠쟝. 그치만 어떡하겠는가. 이미 살아난 것은. 이미 이십오세를 넘긴 나는 전전두피질이 모두 성장했고, 나는 이제 세계 속에서 충동을 억제할 수 있는 멋진 인간이 되었다는 것에 축복을 내릴 수도 있지 않겠는가?
하고 싶은 것을 모두 할 수 없다는 것은 절망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런데 절망만은 아닐 것 같다. 나는 이제 더 이상 평생 후회할 말과 행동을 하지 않을 제어장치를 지녔다. 바보같은 행동을 하고선 이불을 뻥뻥 차버릴 일도 줄었으며, 세계 속의 나를 정확하게 인지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니까 하고 싶었는데 못 했다고 느끼는 것은 어쩌면 하지 말았어야 할 일일 수도 있는 것이고. 이제는 이 넓고 큰 세상 속에서 나를 지킬 수 있는 힘이 생겼다고 생각한다. 하고 싶은 것을 모두 하고 사는 것이 인생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에게 주어진 현실에서 최선의 삶을 찾아나가는 과정도 꽤나 멋질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