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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순의 산골이 키운 보양의 맛, 흑염소 이야기

by 길가영
화순 흑염소_08.17.png 화순의 산골이 키운 보양의 맛, 흑염소 이야기



전라남도 화순은 사방이 산지로 둘러싸인 분지형 지형을 이루고 있다. 북쪽으로는 무등산 자락이 이어지고, 화순군 내부에는 백아산과 모후산 같은 산악이 자리한다. 이러한 자연환경은 농업과 함께 가축 방목에 유리한 조건을 제공하였다.


특히 흑염소는 척박한 산지에서도 잘 자라는 특성을 지녀 화순 농가에서 꾸준히 사육되었다. 흑염소는 단순한 고기를 넘어 몸과 마음을 보하는 귀한 보양식으로 인식되어 왔다.


지역민들은 농번기나 명절, 마을 공동체 행사에서 흑염소 요리를 통해 기력을 회복하고 건강을 다지는 전통을 이어왔다. 이러한 배경 속에 흑염소는 화순의 대표적인 음식문화 자산으로 자리매김하였다.


조선시대 문헌은 흑염소가 왜 보양식으로 자리 잡았는지를 잘 보여준다.


『세종실록』에는 세종 25년 5월 기록에 ‘고(羔)’와 ‘양(羊)’을 구분하여 기록하고 있는데, 일부 연구자는 여기서 ‘고’를 흑염소로 해석한다. 일부 연구자들은 ‘고’를 흑염소로 해석하여 왕실에서 중요한 보양식이었다고 추정한다. 왕실 식재료 목록이나 진상품 기록에서도 ‘염소’와 별도로 ‘고’가 기록되는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 이는 왕실 차원에서 흑염소가 중요한 식재료였음을 짐작하게 한다.


『증보산림경제』에서는 흑염소 고기가 허약 체질을 낫게 하고 마음을 편하게 한다고 적고 있으며, 『본초강목(本草綱目)』의 명나라의 의학자 이시진(李時珍, 1518~1593)은 염소 고기가 원양(元陽)을 보하며, 허약한 사람을 낫게 하고 강정(强精), 강장에 좋으며, 두뇌를 차게 하고 피로와 추위를 물리치며, 위장의 원활한 작용을 도와 마음을 평온하게 한다고 기록하였다. 즉, 흑염소는 강장제와 보약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했음을 알 수 있다.


『동의보감(東醫寶鑑)』 허준(許浚, 1539~1615)은 염소 고기를 기력 회복과 소화 개선에 도움이 되는 식재로 분류하며, 보양식으로써의 가치를 분명히 하고 있다.


『승정원일기』에는 염소와 산양이 진상품이나 공납의 맥락에서 언급되는데, 이는 조선시대 궁중에서 염소류가 고급 식재료로 다뤄졌음을 보여준다.


이처럼 왕조의 문헌에 기록된 약용적 가치와 보양식 전통은 화순 흑염소 문화의 뿌리가 되었다. 산악지대라는 환경적 조건과 더불어, 조선시대부터 이어진 ‘흑염소 = 건강식’이라는 인식이 화순에서 더욱 굳건히 자리 잡은 것이다.


현대에 들어 화순군은 흑염소를 특산품으로 육성하며 국내 최초로 HACCP 인증 흑염소 도축장을 설립하였고, 흑염소 요리는 수육·불고기·탕 등 다양한 형태로 발전해 왔다. 또한 ‘블랙푸드’라는 건강 트렌드와 결합해 전국적으로 알려지면서, 화순은 흑염소 산업의 중심지로서 지역경제 활성화와 관광 자원화에 힘을 보태고 있다.


결국 화순의 흑염소 음식문화는 단순한 지역 특산을 넘어, 조선시대 문헌에 뿌리를 둔 보양식 전통과 화순의 자연환경이 결합한 결과라 할 수 있다. 이는 화순 주민들이 몸과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흑염소를 즐겨온 역사적 이유이자, 오늘날에도 이어지는 음식 문화적 자산이라 할 수 있다.



참고문헌

『세종실록』, 한국고전번역원

『증보산림경제』, 조선시대 농업·약용서

『본초강목』, 이시진 저, 한국 전래 해석본

『동의보감』, 허준 저, 조선 의학서

『승정원일기』, 국사편찬위원회

한국민족문화 대백과사전 ‘흑염소’ 항목, 한국학중앙연구원

디지털화순문화대전, 한국학중앙연구원

화순군청 농업기술센터 및 관광문화과 공식자료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전자사료, 『세종실록』 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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