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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순 고인돌에서 찾은 음식문화의 기원

by 길가영
화순 고인돌_08.24.png 화순 고인돌에서 찾은 음식문화의 기원



전라남도 화순은 세계 최대의 고인돌 군집 유적이 있는 곳이다. 이곳의 고인돌은 단순히 돌을 쌓아 만든 선사시대 무덤이 아니라, 당시 사람들이 어떤 사회 구조 속에서 살았고 무엇을 먹으며 살았는지를 짐작하게 하는 중요한 단서이다.


우선 고인돌의 존재는 계급과 지배층의 등장을 보여준다. 거대한 바위를 다듬고 운반하여 무덤을 축조하는 일은 개인의 힘으로는 불가능하다.


수많은 인력이 동원되었음을 뜻하며, 이는 이미 농경을 통해 안정적인 식량을 확보한 사회였음을 말해준다. 또한 무덤에서 출토된 돌검, 돌화살촉, 청동기 무기류는 단순한 생계용 도구가 아니라 권력과 위세를 드러내는 상징물이었다.


곧 고인돌은 권력자의 무덤이자 공동체를 다스리던 계층의 존재를 보여주는 역사적 흔적이다.


이러한 고인돌은 농경사회와도 깊이 맞닿아 있다. 당시 화순 사람들은 조, 보리, 콩과 같은 곡물을 재배하며 집단적으로 살아갔다. 거대한 고인돌을 세우기 위해서는 공동의 노동이 필수였고, 이를 가능하게 한 것은 곡물 재배를 통한 식량의 잉여 생산이었다.


출토된 민무늬토기와 붉은 간토기, 항아리형 토기, 시루 등은 곡물을 저장하고 조리하며 음식을 준비하는 데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시루의 출토는 선사시대에도 곡식을 찌거나 떡을 만들어 제례와 의례에 활용했음을 보여준다.


이는 곧 화순 지역의 음식문화가 이미 곡물 중심으로 자리 잡고 있었음을 잘 말해준다.


고인돌과 관련된 장례 의식은 음식문화와 떼어놓을 수 없다. 무덤 주변에서는 의례와 제사가 함께 이루어졌음을 보여주는 흔적이 발견되기도 한다.


특히 민무늬토기, 붉은 간토기, 항아리형 토기, 가지무늬토기 등 다양한 토기가 고인돌 무덤방에서 발견되어, 죽은 이가 생전에 사용하던 밥그릇·음식 저장 그릇이거나 의례용 제기(祭器)로 쓰였을 가능성이 높다.


권력자의 죽음을 기리기 위해 공동체가 모여 곡물과 음식을 마련하고 함께 나누는 장면은, 단순한 배식이 아니라 사회적 통합의 과정이었다. 음식은 생존을 넘어 신앙적 의미를 지니며, 공동체의 결속을 다지는 매개체가 되었던 것이다.


오늘날 화순의 향토음식 속에는 이러한 선사시대의 흔적이 이어져 있다. 곡물과 콩을 이용한 두부, 나물 반찬, 제철 채소를 중심으로 한 건강한 밥상은 농경과 공동체 협동의 전통 속에서 발전한 것이다.


화순 고인돌은 단순한 무덤이 아니라, 농경과 의례, 권력과 공동체가 함께 만들어 낸 음식문화의 뿌리를 보여주는 역사적 현장이라 할 수 있다.



참고문헌

국립문화재연구소, 『화순 고인돌군 발굴조사보고서』, 문화재청, 2001.

한국고고학회, 『한국고고학사전』, 가람기획, 2007.

김용만, 「청동기시대 고인돌과 사회 구조」, 『한국고고학보』 제42호, 2000.

전라남도·화순군, 『화순 고인돌 세계유산 보존관리계획』, 2010.

디지털화순문화대전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 문화유산 고인돌, 화순 그랜드컬쳐넷,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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