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럴듯한 상차림을 간편하게
요리 프로그램을 보면 요리에 꼭 필요한 만큼만 유리볼에 담겨져서 긴 테이블에 보기좋게 놓여있고는 하다. 집에서는 그런 재료가 다 갖춰져 있는 경우는 대부분 없거니와 설거지는 매우 귀찮으므로 조리도구를 많이 쓰지 않고 간편하게 해먹는 요리를 하게된다. 더군다나 혼자 해먹고 살면서 어떤 조미료나 재료는 유통기한 내에 도저히 쓸 수 없으니 어쩌다가 한번 쓰는 재료는 구입부터 망설여지게 된다. 그래서 대애-충 먹을 수 있으면 괜찮지않나 하는 얼렁뚱땅 모드가 된지 꽤 되었는데, 그럼에도 집밥을 사수하는 이유는 내 입맛에 맞는 요리를 해서 먹는 과정과 시간이 일종의 셀프 케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집밥 잘해먹으며 행복하게 살았어요’는 아니다. 안타깝게도 제한된 재료와 시간 안에서 내가 생각할 수 있는 메뉴는 뻔하디 뻔해서(!) 비슷한 음식을 계속 먹는 패턴에 부딪히는 때가 오는 집밥 권태기같은 날이 오는데, 나름의 대안은 밀키트이다.
바쁘다 바빠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직장인들에게는 간편하게 데우기만 하면 되는 완제품도 적당할 수도 있겠다. 이미 조리된 음식이 배달되기도 하고, 데우거나 섞는 정도로 완성할 수 있는 밀키트도 있다.재료가 필요한 만큼 배달되어 장보는 번거로움을 줄여주기도 하고 레시피도 상세히 잘 적혀 있어서 별다른 스킬이 필요하지 않은 것도 편리하다. 뭐니뭐니해도 나에게는 (나는 시간도 여유있는 편이고 장보기도 좋아함) 평소에 못먹어 본 메뉴에 ‘도전’하고 맛보는 즐거움에 조금 더 방점이 찍혀있다.
거슬러 올라가보면 10년 전 쯤 Blue Apron이라는 밀키트 서비스를 들었을 때에 꽤나 멋져보였던 기억이 난다. 스테이크나 사이드 메뉴들까지 레스토랑에서 먹을 수 있을법한 메뉴를 집에서도 어렵지 않게 차릴 수 있어서 외식하는 기분을 낼 수 있다는 것이 꽤나 매력적으로 들리긴 했지만 굳이 시도해보지는 않았다.(유행에는 호락호락하지 않았던 과거의 나) 내가 직접 구독해서 이용하기 시작한 것은 한참이 지나서 코로나 즈음이 되어서였다. 한인들이 꽤 많이 거주하고 있는 북버지니아 지역에 사는지라 한식 밀키트 종류도 꽤 있고 최근 몇년 사이 밑반찬부터 메인 요리까지 종류도 꽤나 다양해졌다. 일하는 친구들은 대부분 한두군데를 시도해보고는 정기적으로 한식 밀키트를 구독해서 사용하는 것 같고 밀키트가 아니더라도 반찬을 정기적으로 주문해서 먹는 집들도 꽤 있다. 식재료 값 자체가 많이 오르기도 했고 남아서 버리는 것보다는 재료 낭비가 없고 조리 시간을 줄여주는 가정에게는 적합한 옵션처럼 보인다.
1인 가정인 내가 가끔 주문 하게 될 때에는 한식보다는 주로 양식/퓨전 밀키트로 주문한다. 앞서 서술한 것처럼 평소에 잘 안먹는 (내 머리에서 생각할 수 없는) 메뉴를 시도해보고 싶고, 레시피대로 요리를 집중해서 하고, 상상했던 맛이 잘 구현되었을 때에 뿌듯하기도 한 것은 덤이다. 완제품을 오븐이나 전자레인지에 데워먹는 것보다는 재료를 다듬고 볶는 요리의 과정도 꽤 즐겁다. 내가 이런 것도 할 수 있다니! 꽤나 요리를 그럴듯하게 해낸 것 같은 뿌듯한 성취감도 들고, 맛도 꽤나 그럴듯 해서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것에 대해 긍정적인 경험이 되어주고 있다.
며칠의 도시락 메뉴로도 적당하다. 일단 구독을 시작하면 일주일에 한번씩 선택한 메뉴를 (3개에서 5개까지) 받게 되고, 최소 2인분에서 4인분 정도의 양에 맞는 재료들이 소포장으로 온다. 최소 주문이 2인부터여서 한번은 요리한 뒤에 바로 한끼 식사가 되고, 다른 1인분은 자연스럽게 도시락 메뉴로 당첨이다. 개인적으로는 양조절을 잘 하지 못하는 편이라고 생각을 하는데(눈앞에 있는게 1인분이라고 여기는 편..ㅎ), 양이 정해져있는 것도 적정량을 먹는 데에 도움이 된다.
다음주 메뉴가 업데이트 되면 기한 내에 원하는 메뉴로 선택하거나 변경 할 수도 있다. 내가 주로 고르는 조합은 샐러드, 새우로 만든 요리 위주이다. 평소에 집에서 샐러드 재료를 다채롭게 준비하는 게 꽤나 어렵게 느껴져서 제대로 영양적으로 균형잡힌 샐러드를 먹기에는 밀키트가 적당하다. 요리한 것을 사진으로 남기고나면 마치 오늘을 정성껏 살아낸 것 같은 만족감까지도 든다. 일상이 권태로울 때에 샛길로 잠시 빠졌다 돌아오기에 적당하다. 소소한 변주만으로도 나를 돌보고 잘 챙기고 있구나 싶어진다. 먹고 살기 괴롭고 바쁘지만 그래도 우리 ’잘‘ 먹고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