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쓰시면 좋습니다
주가지수 전망에 대한 기사를 볼 때마다 한 번씩 이런 설명을 한다.
"코스피의 12개월 선행 주당순이익(EPS) 전망치는 ~, 그래서 코스피지수의 12개월 선행 주가수익비율(PER)도 연초보다 소폭 조정된 13배 수준이다."
코스피, 순이익, 주가. 뭔가 주가지수의 전망을 다룬 말인 것 같은데, 저게 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PER이 몇 배라는 건 무슨 의미인가?
PER(Price to Earnings Ratio, 주가수익비율)의 가장 기본적인 정의는 현재의 주가를 직전 회계연도의 주당순이익(EPS, Earnings Per Share)으로 나눈 것이다. 주당순이익이란 한 해 동안 회사가 벌어들인 순이익을 발행주식수로 나눈 값으로, 보통주 한 주에 배정되는 순이익의 값이다.
주가와 주당순이익에 각각 발행주식수를 곱해줘도 값은 같다. 따라서 PER은 아래와 같이 표현해볼 수 있다.
PER = 현재주가(P) / 직전 연도 주당순이익(EPS) = 시가총액 / 직전 연도 당기순이익
이렇게 계산해보면, 현재의 주가가 회사가 낸 이익보다 몇 배 수준인지를 가늠해 볼 수 있다. 재무비율을 분석하면서 언급되는 삼성전자의 PER이 21배다, 카카오의 PER이 220배다 하는 말은 현재 그 회사의 주가가 전년도 당기순이익의 21배, 220배라는 의미이다.
그래서 PER은 투자원금 회수기간으로 해석할 수 있다. PER이 21배인 삼성전자의 주식을 샀다면, 앞으로 21년 동안 매년 주당순이익을 100% 회수해야 원금을 회수할 수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어, 그럼 PER이 220배인 카카오를 오늘 사면 원금 회수까지 220년이 지나야 되는데, 내 자식의 자식의 자식까지 물려줘야 원금을 회수할 수 있다는 뜻인가? 나는 그냥 한 달 정도 들고 있다가 팔 생각이었는데? 이거 잘못 산건가?
놀랄 필요 없다. 여기서 말하는 원금 회수기간은 이론적인 개념일 뿐이다. PER을 구성하는 두 개의 변수인 주가와 순이익 모두 고정된 값이 아니다. 주가가 계속 오른다면, 220년은 커녕 한 달도 안돼서 원금 이상의 수익을 내고 팔 수도 있다.
PER은 현재 주가가 고평가, 혹은 저평가되어 있는지를 판단하는 기준으로 주로 사용된다. 보통 PER이 높으면 고평가, 낮으면 저평가되었다고 판단한다.
PER이 작년에 10배였는데, 올해 15배로 높아졌다면, 순이익이 크게 변하지 않은 상황에서 주가가 많이 올랐거나, 그 반대인 경우를 생각해볼 수 있다. PER이 낮아졌다면, 순이익의 증가 속도를 주가가 채 따라잡지 못했거나, 순이익은 변동이 거의 없지만 다른 외부 요인으로 주가가 낮아졌다고 생각해볼 수 있다.
PER로 현재 주가를 평가해보려니 한 가지 걸리는 점이 생긴다. PER의 계산식을 다시 한번 보고 오자.
'현재'의 주가와 '직전연도'의 당기순이익을 비교한다? 회사는 지금도 돌아가고 있는데, 현재 주가를 작년의 이익으로 평가하는 게 맞는 걸까?
정확한 평가를 위해서는 현재, 혹은 예측되는 이익을 가지고 계산하는 게 좀 더 합리적이다. 그래서 예상 주가 산출 등에는 예상(또는 선행) 주당순이익(Forward EPS)을 분모에 두고 계산하는 선행 PER(Forward PER)이 자주 쓰인다.
이렇게 계산한 선행 PER을 활용해서 예상 주가를 산출해볼 수도 있다. 처음 다뤘던 PER의 계산식을 조금만 응용하면, 다음과 같이 바꿔볼 수 있다.
예상 주가 = 선행 PER × 선행 EPS
따라서 선행 PER과 예상 이익을 구해서 대략적인 목표주가를 설정해볼 수도 있다.
예컨대 삼성전자의 2021년 기준 선행 PER이 16배인데, 반도체 업황이 예상보다 큰 폭의 호조를 보여 예상되는 순이익이 주당 7천 원으로 상향된다면, 예상 주가는 16 × 7,000 = 112,000원으로 추정해볼 수 있다.
그 비교는 그 회사의 과거부터 현재까지 PER의 변화를 비교하는 것일 수도 있고, 같은 산업에 종사하는 경쟁사의 PER과 비교하는 방법일 수도 있다. 두 개 다 써보는 게 좋다.
예를 들어, 삼성전자의 지난 3년간 PER 변동 추세를 살펴보자.
이번에는 산업 내 경쟁사 간 비교를 해보자. 삼성전자와 반도체 제조업에서 세계 수준의 경쟁력을 자랑하는 SK 하이닉스가 그 대상이다.
결과론적인 비교이긴 하지만, 2018년 말, PER이 더 낮은 SK하이닉스를 샀다면, 2019년 말 삼성전자보다 약 11.3%p 높은 55.5%의 수익률을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시점에 하이닉스를 매도하고 PER이 더 낮은 삼성전자를 샀다면, 2020년 말에는 하이닉스보다 19.3%p 높은 45.2%의 수익률을 얻었을 것이다.
이렇게 동종업계의 경쟁사 간 PER 분석을 통해 해당 기업이 상대적으로 저평가되었는지, 고평가 되었는지를 분석해 투자에 활용해 볼 수도 있다.
PER을 통한 분석은 빠르고 직관적이다. 재무제표를 깊이 보지 않더라도 금세 계산해서 분석해 볼 수 있다.
올해 PER이 너무 높다. 그런데 선행 PER이 급하게 내려간다. 이익이 급증할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반대라면? 업황이 좋지 않다는 신호가 너무 많다. 사지 않거나, 혹은 들고 있다면 팔아야 된다는 결론을 얻을 수 있다.
또는 다른 경쟁사들보다 너무 높은 PER을 부여받는다. 이유가 뭘까. 독점적 지위를 얻고 있는가, 아니면 일시적인 이벤트로 가격이 오른 것인가.
이렇듯 계산된 PER의 분석만으로도 다음에 어떤 분석을 해야 할지 방향을 잡아볼 수도 있다. 굳이 어려운 공식 대신 간단하게 분석할 수 있는 좋은 수단이다.
대신 간단한만큼 PER의 한계는 명확하다. 당장 순이익이 적자인 기업은 PER을 활용해 예상 주가를 산출하면 주가가 음(-)의 값을 갖는다. 즉, 평가가 불가능하다.
둘째, 상대가치평가이기 때문에 높고 낮음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없다. 처음에 설명했던 삼성전자의 PER은 21배고, 카카오의 PER은 220배이다. 물론 영위하는 사업분야가 다르기 때문이지만, PER만으로는 다른 사업을 하는 회사의 가치를 비교해볼 수는 없다.
셋째, 주가가 PER과 맞춰서 움직이지 않는다. 위에서 예로 들었던 삼성전자는 2019년 PER 전년대비 2배가 넘게 올랐는데도 가격이 계속 올라 2020년에는 20배를 넘겼고, 지금도 가격이 더 오를 거라 전망하고 있다.
PER은 간편함과 직관성 덕분에 오랫동안 활용되어온 지표다. 이번에 다루지는 않았지만, PER의 역수를 취해 채권수익률과 비교해보는 이른바 일드갭(Yield Gap) 분석을 통해 주식시장의 과열 여부를 판단해 볼 수도 있는 등, 그 활용 범위 역시 매우 넓다.
반면 PER은 분명한 한계를 갖고 있다. 결국 PER은 평가 기준 중 하나로 쓰일 수는 있지만, 절대적인 기준은 될 수 없다. PER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서는 다른 지표(PBR, PSR, EV/EBITDA 등)와 기본적인 회사의 재무분석을 활용해야 한다. 이 내용에 대해서도 조만간 다뤄볼 예정이다.
주식투자를 하면서 접하는 생소한 지표들에 대해서 겁먹을 필요는 없다. 개념과 활용방법을 이해하고 그 지표가 가진 한계점을 분명히 인식해서 활용한다면, 이 지표들은 주식투자에 있어 많은 도움이 될 수 있다. 지레 겁먹고 피하지 말고 하나씩 공부해보자. 생각보다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