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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노 May 09. 2021

성공한 여자의 기분을 느끼다

여행 24일차: '여행의 종착지' 두브로브니크에 입성하다

2019.10.15 여행 24일차 크로아티아 스플리트-두브로브니크

스플리트 숙소에서 바라본 풍경
스플리트 숙소에서 바라본 풍경

오전 7시에 일어나 침대 위에서 빈둥거리다가 배가 고파서 몸을 일으켰다. 아침 메뉴는 전날과 같이 토스트기에 구운 식빵이었다. 이날은 우유 대신 커피를 마시고 싶어서 숙소에 있는 돌체구스토 커피머신을 이용했다. 파란색의 카페 룽고 캡슐을 넣고 커피를 내리자 따뜻한 아메리카노가 완성됐다. 유럽 카페에 아메리카노를 파는 곳이 거의 없어서 오랜만에 아메리카노를 마주했는데 무척 반가웠다. 한국에선 매일 마시던 커피가 이렇게 귀하게 느껴질 줄이야. 무엇이든 늘 붙어 있을 때는 귀한 줄 모르고, 멀리 떨어졌을 때 비로소 그 존재의 소중함을 알게 되는 것 같다. 

스플리트 숙소에서 아침 식사
스플리트 숙소에서 아침 식사

맛있게 구워진 식빵을 먹은 후 커피 잔을 들고 테라스로 나갔다. 망망대해에 떠 있는 크루즈와 고즈넉한 마을을 바라보며 아메리카노를 마시니 왠지 성공한 여자가 된 기분이 들었다. 전망 좋은 테라스에서 아침마다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즐기는 삶을 꿈꿔왔는데, 잠시라도 그 꿈을 실현할 수 있어서 기뻤다.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은 행복감이 온몸에 스며들어 지금 이 순간의 공기를 영원히 간직하고 싶었다. '나도 돈을 많이 벌어서 이렇게 근사한 집을 사야겠다'고 다짐하니 갑자기 근로의욕이 넘쳐났다.  

스플리트에서 두브로브니크로 가는 길
스플리트에서 두브로브니크로 가는 길
스플리트에서 두브로브니크로 가는 길
스플리트에서 두브로브니크로 가는 길

이제 스플리트를 떠나 이번 여행의 종착지인 두브로브니크로 이동해야 할 시간. 스플리트 숙소에 "2박 3일 동안 나의 공간이 되어줘서 고마워"라고 마지막 인사를 건넨 후 버스 터미널로 걸어갔다. 오전 10시에 출발한 버스는 무려 5시간을 넘게 달렸다. 처음에는 차창 밖으로 보이는 아름다운 바닷가 마을의 전경을 감상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는데, 버스 안에 오래 갇혀 있다 보니 점점 시계를 쳐다보게 됐다. 갈수록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는 기분이 들 무렵, 버스가 보스니아 국경을 지나 휴게소에 정차했다. 간만에 땅을 밟으니 '아이구' 소리가 절로 나왔다. 시원한 공기를 쐬며 멋진 전망을 즐기다가 다시 버스에 올라탔다. 

두브로브니크 숙소로 가는 길
두브로브니크 숙소 테라스
두브로브니크 숙소 테라스에서 본 풍경

버스는 크로아티아 국경을 넘어 한참을 달린 끝에 두브로브니크에 들어섰다. 나는 에어비앤비 숙소 호스트에게 "두브로브니크에 도착했어요"라고 메시지를 보냈다. 그러자 "지금 데리러 갈게요. 버스 터미널 8번 플랫폼에서 만나요"라고 답장이 왔다. 잠시 후 티코를 닮은 작은 차가 내 앞에 멈춰섰다. 숙소 호스트인 다니카 할머니였다. 많은 사람들이 에어비앤비 후기에 적은 대로 다니카는 친절하고 인심 좋은 주인이었다. 숙소에 들어가자마자 그녀는 바다가 보이는 테라스로 나를 안내한 뒤 오렌지 주스, 과일, 피자, 그리고 직접 만든 애플파이를 대접했다. 머나먼 나라에서 온 손님을 손녀처럼 따뜻하게 대해줘서 너무 감사했다. 빼어난 경치를 보며 맛있는 음식을 먹으니 '숙소 예약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머무를 개인방에 짐을 풀고 구시가지로 가는 버스 시간을 알아봤다. 서울에서는 아무때나 쉽게 버스를 탈 수 있는 것과 달리 숙소 근처에는 버스가 한 시간에 한 대 꼴로 다녀서 시간표를 필수로 확인해야 했다. 처음에는 불편하다고 생각했는데, 버스가 정해진 시간에 맞춰 오길 기다렸다가 탑승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아날로그 감성이라 왠지 낭만적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스르지산 케이블카를 타러 가는 길
스르지산 케이블카를 타러 가는 길
스르지산 전망대에서 본 풍경
스르지산 전망대에서 본 풍경
스르지산 전망대에서 본 풍경

구시가지에는 정말 많은 관광객들이 모여 있었다. 나는 먼저 해가 지기 전에 도시 전경을 보고 싶어서 스르지산 전망대 케이블카를 타러 갔다. '내려갈 때는 운동 삼아 걸어가야겠다'고 생각해 편도 티켓만 구매하고 케이블카에 탑승했다. 전망대에 올라서자 바다 위에 두꺼운 성벽으로 둘러싸인 구시가지가 한눈에 보였다. 중세 시대의 정취를 풍기는 주황색 지붕의 건물들이 오밀조밀 들어찬 모습이 비현실적으로 예뻤다. 지점토로 빚고 지붕만 주황색으로 칠한 것처럼 아기자기했다. 왜 두브로브니크가 '지상 천국'이라 불리는지 이해가 되는 절경이었다. 

스르지산 전망대에서 본 풍경
스르지산 전망대에서 본 풍경

하늘이 서서히 어두워지자 구시가지에 조명이 켜지기 시작했다. 어느덧 깊은 밤이 되어 도시는 노란빛으로 물들었다. 깜깜한 산길을 혼자 걸어 내려가는 건 위험하다고 판단해 우버를 불렀는데, 계속 기다려도 택시가 잡히지 않았다. 이러다 오늘 안에 못 내려가지 않을까 걱정이 돼서 케이블카 타는 곳으로 뛰어갔다. 다행히 케이블카는 아직 운행 중이었다.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고 편도 티켓을 구매한 뒤 안전하게 하산했다.  

두브로브니크 구시가지
두브로브니크 맛집 토니
두브로브니크 맛집 토니

구시가지를 구경하다가 허기져서 다니카가 추천해준 식당 토니를 찾아갔다. 비좁은 골목길을 따라 늘어선 테이블 중 한 곳에 앉아 현지 맥주와 해산물 스파게티를 주문했는데 둘 다 맛이 뛰어났다. 특히 스파게티는 연어, 오징어, 홍합, 새우 등 해산물이 듬뿍 들어가 있고 간이 짜지 않아서 대만족이었다. 역시 현지인이 추천하는 맛집은 믿고 갈 만하다. 

두브로브니크 구시가지에서 연주하는 사람들(왼쪽)
숙소 테라스에서 본 두브로보니크 야경

저녁 식사를 마치고 구시가지를 천천히 돌았다. 반질반질한 대리석 바닥과 고풍스러운 건축물은 중세로 시간 여행을 온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거리 연주가의 감미로운 바이올린 선율은 두브로브니크의 매력을 더욱 부각시키며 본격적으로 관광을 시작하는 내일을 기대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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