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초 회사 초년차의 덕목이란

신입 직장인이라면 응당 했어야 했던 것과 나의 소중한 인연들!

by AngieKim
나 빼고 다 남자!

3화 인생의 길목에서 주저하지 말기!에서 밝힌 대로 대학교 4학년 2학기때 컴퓨터 그래픽 교수님이 추천한 회사에 면접을 보고 아르바이트를 하기 시작했고, 졸업한 후에도 계속 다니게 되어 이곳은 나의 첫 직장이 되었다.


회사는 강변 테크노마트 벤처 동에 있는 IT 벤처 회사였고, 특이한 건 '병역특례'업체였다. 그래서 그런지 나와 같은 개발자는 모두 다 '남자'였고, 나이도 나와 비슷한 또래였다.


선배와 동기/후배들은 차례로 4주 훈련을 다녀왔고, 병특 관련 행정 업무 때문에 병무청 다녀왔던 선배도 기억난다. 그중 제일 기억에 남는 건 4주 훈련 다녀온 선배가 모나미 볼펜으로 그림을 그렸다고 보여줬는데, 생활관인가에 앉아서 그린 관물대 스케치였는데, 거의 데생 수준이어서 아직도 기억이 난다. (너무 잘 그렸잖아!!! 호재사마!)


그 당시 나의 모습과 비슷한데?!! 여기에 청바지와 나이키 운동화 착장은 필수! 사진: Unsplash의Joanna SCD


여중-여고-여대를 나온 나에게는 '병역특례'에 대해서 자세히 알게 계기였다, 그 후로 남자 동료들과 자연스럽게 군대에서 보직이 뭐였냐며 편하게 물어볼 수있었고 - 보일러병이 제일 편해 보이셨음 - 심지어 왜 남자들이 군대에서 족구 한 얘기에 흥분하는지도 간접적으로 알게 된 계기가 되었다.


여대생 00에서


'00군'으로 변모한 순간이었다.





한강은 그렇게 이뻤고!
올림픽대교와 한강 야경 뷰! - 출처 : 강변 테크노마트 공식 홈페이지

일단 병역특례는 잠깐 뒤로 하고, 내가 근무한 첫 회사인 강변 테크노마트에는 전망대가 있었는데, 옥상정원이라고 불린 그곳은 한강 뷰가 이쁘기로 유명했다. 크으! 올림픽대교와 한강의 환상적인 야경 사진을 보라!


한참 감수성이 풍부했던 그 시절에 회사에서 안 좋은 소리를 듣거나, 자괴감에 괴롭거나, 늦은 시간까지 야근을 하고 집에 갈 때는 가끔 바로 집으로 가지 않고, 옥상 정원에 내려서 한강을 바라보고 힘든 하루를 깊은 한숨과 함께 마감한 적도 많았다.


진짜 한강 뷰 맛집! - 출처 : 강변 테크노마트 공식 홈페이지

때로는 회사 동료들과 출근하자마자 힘든 하루를 시작하기에 앞서 노란 맥심 커피 한잔 들고 아침의 한강을 바라보면서 하루를 다짐하기도 하고, 데드라인은 다가오는데 개발 로직이 생각이 안 나 겁이 덜컥 나는 날에는 오후에도 혼자 나와서 한강을 바라보면서 새롭게 다짐도 하고 머리도 식히고 했었던 나의 힐링 장소였다.





나의 멘토 노건 사마

그때 나의 멘토는 노건 사마셨는데, 항상 긍정적이고 밝은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언제나 노력하는 분이셨다. 노건 사마는 내가 만들어준 별명이었는데, 그 당시 재패니메이션 (일본 애니메이션)를 즐겨 보던 중 '사마'가 익숙했고 나에게는 노건 사마는 그런 존재여서 '사마'로 지어드렸다. (욘사마 이후 나에게는 노건 사마가 있었던 것!)

사마 : 일본어에서 사람을 가리키는 명사 뒤에 붙어, 그 사람에 대한 강한 존경을 나타낸다. '~ 님' 정도의 의미인데 존경의 강도가 강하다고 생각하면 된다. (출처 - 나무위키)


그 당시 나의 최애 이누야사!!

노건 사마는 지금도 나의 멘토이신데 현재는 한양대 산업융합학부 겸임 교수와 동국대 겸임 교수로 계신다. 요즘에도 마라톤을 풀 코스로 뛰고 있으며, 성동구 지역에서 지역구 봉사를 포함한 활발한 활동을 하고 계신다.


아니 노건 사마
네이버 인물 사전에 검색이 되시는 거예요??!!
노건사마 - 곽노건 교수님

뵐 때마다 새로운 것을 하고 계셔서, 나에겐 자극이 되는 분이고, 내가 일하면서 대학원을 가고 싶다고 고민하고 고민할 때 너무 큰 고민 하지 말고 일단 해보라고! 아낌없는 응원을 주셨고, 내 인생의 이벤트마다 항상 오셔서 응원해 주신 분이다. 요즘에도 linkedIn으로 활발한 소통을 하고 있 다. (노건사마 항상 고맙습니다! )



나의 가장 이뻤던 시절 함께 해준 동료들

그 당시에는 DSLR 동호회가 대 유행이었는데, 우리 회사에는 캐논과 니콘 각각 1명씩 활동하는 동료들이 있었다. 서로 거의 경쟁하듯이 출사 다녀오고 사진 공유 해주고, 우리의 워크숍 사진은 거의 연예인 홈마(홈페이지 마스터 - 연예인 찍덕)와 같은 고퀄의 사진들이었다.

DSLR 카메라 - 출처 -캐논코리아 홈페이지





나는 그 동료들과 제일 친했고, 우리는 업무 끝나고 하늘공원에서 뿐만 아니라, 한강과 청담대교 등 우리끼리 출사를 갔다. 맛집에서도 맛있는 것도 먹고, 분위기 좋은 곳을 찾아서 사진도 찍고 했었던 시절이었다. 셋 다 술은 잘 안 마셔서 우리는 맛집과 출사 중심으로 나름 회사에서 즐겁게 지냈다.

사진: Unsplash의Minku Kang


아마도 그때 찍은 사진들은 어딘가 폴더에 있을 텐데, 너무 바빠서 볼 여유도 시간도 없다. - 사실 보면 그냥 그 시절이 그럽고 지나간 세월이 아쉽기만 해서 안 보게 되는 것도 있는 듯하다. 여자들은 알 거임...- 그래도 그때 내 모습을 이쁘게 찍어준 동료들에게 감사한 마음은 항상 가지고 있다. (Thanks 은재lee, 호재 사마)







| 인생 최초의 우유팩 차기

우유팩 차기 하던 테크노마트 하늘공원 - 출처 : 강변 테크노마트 공식 홈페이지


우리는 다들 어린 나이여서 그런지 점심시간에 뭔가를 항상 했어야 했다. 아마도 사장님이 주도해서 한 거 같긴 한데, 우리는 점심시간 테크노마트 하늘 공원에서 다 같이 우유팩 차기를 했다.


우유팩 차기 프로세스는 다음과 같다.

팩차기에 적당한 우유를 찾아요! - 출처 : 서울우유 홈페이지

시간을 아끼기 위해 일단 간단히 한솥도시락 - 왜 그렇게 맛있었니! - 을 빠르게 먹고, 그 옆 매점에서 우유 250ml를 2개 사서 누군가 - 그걸 그렇게 목으로 한방에 다 쏟아붓는 것이 항상 신기한 나였다 - 가 다 마셔버린 후 우유갑을 대충 탈탈 턴 다음 네모 곽으로 만든다. 그리고 그 2개를 위/아래로 조합하여 네모난 우유팩 공(?)을 만들었다. 어느 날은 3개를 마시고, 안에 심을 만들어 좀 더 보완한 우유팩이 탄생했다.


나는 2살 차이 나는 남동생이랑 나름 잘 놀아주는 누나였기에 어렸을 때 구슬치기 / 딱지치기 / 팽이까지는 거의 남매가 아닌 형제처럼 해봤지만, 우유팩은 처음이었다. 하.. 뭔가 민망하고 못할 거 같았지만, 성격상 여자라고 빼는 거 싫어해서 일단 해보기로 함!


룰은 이랬다. 다 같이 둥그렇게 둘러서서 자기에게 오는 우유팩을 발로 차서 다른 쪽으로 패스하는 것이었다. 당연히 손으로 치는 거 없이!!! 역시나 나는 키만 컸지, 운동 신경이 zero에 가까운 몸치여서 항상 내 차례에서 흐름이 끊겼다. 그 흥이 한참 오를 때 끊기는 정적... 너무 미안하고 민망한 순간이었다.


게다가 그때는 같은 IT 벤처 타운에서 일하는 남자 개발자들도 엄청 많았고, 영화를 보러 온 손님들도 연인/가족/친구들과 같이 한강을 보기 위해 쉬는 쉼터 같은 광장이어서 다들 우리가 하는 우유팩 차기를 구경해서 더 신경이 쓰였다. (지금도 볼링 치러 가면 옆 레인 사람들이 스트라이크가 나오면 게임에 영향을 받는 성격 ㅋ)


하지만, 가끔 운 좋게 내 발에 맞은 우유팩이 비슷한 방향으로 가는 순간은 가히 엔도르핀이 솟구치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나는 인생 최초의 '팩차기'를 해보았다!

그 후로 우리는 '세팍타크로'라는 아시안 게임 종목에서 사용하는 공도 구입하여 운동에 진심인 무리로 진화한다.


세팍타크로는 너무 아팠다.. 흑.. 그때는 안경을 쓸 때여서, 그 공에 피하지 못하고 안경에 맞은 적이 있었는데, 아픈 것도 그렇고, 창피하기도 하고, 한 번 손상 입은 안경은 은근 어딘가 이상한 구석이 생겨서 결국 안경을 바꾼 기억이 있다.

세팍타크로 공 - 출처 : 나무위키




인생 최초의 랜선 깔기와 파티션 나누기

나의 첫 직장에서 했던 그다음 기억에 남는 순간은 바닥에 랜선 깔기였다!


아마 지금은 이런 모든 설비들이 구비된 상태로 공유 오피스에 입주하겠지만, 우리가 입주한 테크노마트 벤처 타운은 섹션 별로 회사마다 블록을 임대하여 사용하는 구조여서 그런지, 바닥에 세세하게 랜선 작업이 되어있지 않았다.


내가 지금 근무하고 있는 회사도 이미 모든 책상마다 유선 랜이 연결되어 있고, 이제는 유선 랜보다는 전 구역 무선 랜으로 되어있어서 이런 작업은 할 필요도 없는데, 진짜 이 경험은 어디 가서도 못 할 경험이었다.


랜선 깔기의 프로세스는 이러했다.

일단 바닥 카펫을 다 걷어낸다. 내가 뽑아내려는 위치와 가장 가까운 패널 뚜껑을 열어 놓고, 시작 점에 있는 패널에서 랜선을 보낸다. 이 때는 미리 30cm 자에 랜선을 테이프로 묶어서 조합하고 그 자를 이쪽 패널에서 저쪽으로 보낸다.


그렇게 바닥으로 지중화(?) 시킨 랜선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컴퓨터와 연결되어 인터넷 사용이 가능했다. 랜선도 생으로 되어있던 걸 칼로 자른 후 랜선 커넥터인 플라스틱을 연결해 주면 새로운 랜선이 되었다.

랜선 케이블 만들기 - 출처 : 네이버


정말 신기한 경험! 학교에서는 경험해보지 못했던 IT의 세계였다. 허리를 구부려서 랜선 잡고 먼지 많은 바닥에서 랜선을 잡아끌어서 빼내고 이런 게 힘들었지만, 해 놓으면 뿌듯한 작업. 그리고 동료들과 하는 게 재밌었던 기억이다.



파티션 작업은 그다음 회사에서도 유용한 자산이 되었는데, 내 키의 80%만 한 파티션을 들고 바닥의 연결 지점과 맞춰서 툭툭 쳐서 넣으면 하나의 파티션 한 벽이 완성되었다.


툭툭 치거나 빼는 파워는 약해서 어려웠지만, 파티션이 혼자 이동시키기에 그렇게 무거운 무게는 아니었다.

회사 파티션 - 출처 : 나무위키




사회 초년생의 정석 - 정수기 물통 갈기

아 맞다! 나 정수기 물통도 바꿔봤네?!! 요즘에는 사무실에 냉온정수기가 다 있어서, 이런 일이 없지만, 그때 우리는 커피 포트와 정수기가 있었다.


그래서 물이 떨어지면 누군가가 물통을 바꿔야 했는데, 큰 물통은 진짜 어림없었고 가끔 작은 리터의 물이 배달되었는데, 그 작은 건 가능했었다. 아... 물론 정확도가 떨어져서 바닥에 흘린 물이 좀... 아니 많았다. 하하.


그래도 뭘 해도 빼진 않았던 것 같다. 나도 해 볼까? Just do it 정신!
나도 신입 때 해봤다! 정수기 물통 갈기!!! 아니 요즘엔 물통이 밑으로 내려갔네?!!! - 출처 : 구글 (물통형 정수기)



아마도 이런 여러 가지 경험들이 쌓여서 그때부터 나는 00 군이라는 별명이 생겼고, 회사를 옮겨도 그 별명은 한동안 유지되었었다.




사진: Unsplash의Redd Francisco




껍질은 진짜 깨지기 시작함

우리는 공부도 열심히 했는데, 네트워크 전공책을 원서로 사서 스터디를 했던 기억이 난다. 3화에서 말한대로 학교에서 장학금도 받고 모범생으로 열심히 공부한 나로서는 가희 충격적이었는데 그 이유는 이러했다.


학교 다닐 때는 - 지금 생각하면 발 번역 - 국문으로 번역된 전공 책을 주술서를 외우듯이 종이가 뚫어져라 밑줄 치면서 공부하는 모범생이던 나는 항상 나만큼 열심히 공부하는 사람은 없어! 라며 뿌듯함과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두께만 해도 10cm에 가까운 영문 원서로 된 네트워크 책을 사서 OSI 7 계층에 대한 설명을 원문으로 읽을 때의 느낌은 아?!! 나는 그동안 뭘 공부한 것인가! 싶었다. 하하. 아직도 이 책은 버리지 못하고 책장 구석에 꽂혀있다.


오랜만에 다시 펴보았다!

두께 좀 봐... - 출처 : 본인 소장




신입 개발자를 살려 준 은인들

그 당시 나는 PHP개발자였는데 PHP School과 각종 개발 관련 커뮤니티에서 팁을 얻어 가면서 개발했고 그 팁들은 블로그나 로컬 폴더에 라이브러리화 했다. 나중에는 그렇게 정리한 txt파일들이 폴더별로 DB/네트워크 /PHP/CSS 등등으로 나뉘어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때나 지금이나,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을 때는 나는 정줄을 놓는 상태가 자주 되었는데,

특히나 운영계 배포했는데, Error가 나버리는 상황이 되면,


아!!!! 어떡해!!!

라면서 혼돈의 카오스로 빠져버렸다.

입으로 호들갑스럽게 '큰일 났다'라고 하면서, 구글링을 열심히 했지만, 마음만 급하고 잘 진행되지 못했다.


그럴 때는 항상 위에서 언급한 나의 멘토와 선배, 동기들이 혼돈의 카오스 속 나를 멱살을 잡고 끌고 나와 정신 차리라고 한 다음 버그도 잡아주면서 나를 살려주었다. 하하하 (고마워요 나의 은인들!)


물론 그때마다 라이브러리 폴더에 개발 팁들은 쌓여갔다!

증상- 원인-해별방법-추후 재발 방지 순으로 작성했고, 이건 나중에 오류 발생 관련 대책서 작성의 기초가 되었다.






이렇게 즐겁지만 힘들기도 했지만 찬란했던 대학 졸업 후의 2년이 지나가고

나는 3개월의 휴식을 가지고 다른 회사로 이직하게 된다.


그곳에서 DB도 날려보고, 아주 파란만장한 개발자의 삶과

처음으로 기획을 해보고 기획자를 꿈꾸게 된다.



이 이야기는 다음 주에 해보기로 한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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