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보니 ADHD더라 (6)

5. 변신 - ADHD MAN

by AIDNHF DJ

어느덧 약을 복용한 지 1주일이 지난 금요일.


회사에 도착 후 약을 복용한다.

혹시라도 누가 볼까, 조심스레 가방에 손을 넣어 약을 꺼낸다.


약 봉투에는 'OO정신건강의학과'라고 쓰여있기 때문에 특히 조심해야 한다.

혹시라도 누군가에게 보이는 순간,


'그거 아세요? OO님, 정신과 다니고 계시더라고요'


이 말이 돌수도 있으며,

말은 점점 포켓몬처럼 몇 단이고 진화할지도 모른다.


'그거 아세요? OO님, 직장 내 괴롭힘으로 정신과 다니고 계시더라고요'


이 정도면 귀여운 진화.


'그거 아세요? OO님, 조울증이라고 하시더라고요. 요새 사건사고도 많은데 조심해야겠어요.'


이 정도까지 가면 마치 이상해씨가 이상해꽃이 돼 듯이 무서운 진화이다.

물론 회사 동료분들은 좋으신 분들이기 때문에 큰 걱정은 없지만 그래도 사람 일이란 게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 아닌가.


나도 모르게 회사 내 조커로 이름을 알리는 것은 사양이다.


안 그래도, 최근 금요일마다 병원을 방문하니 어디가 아픈 걸까?라는 관심은 이미 있다고 전해 들은 바.

이러한 상황 속에서 약 봉투라도 보이는 날에는 복합적인 시선이 다가오는 것은 확정이다.


그렇기에 나는 평범한 삶을 사는 주인공이 가면을 쓰면 히어로가 되는 것처럼. 매일 숨어서 약을 통해 변신하고 있다.

물론 평범한 삶에서 더욱 평범한 삶으로 변신하는 거지만.


이게 싫으면 집에서 복용하고 오는 선택지도 있으나, 직업 특성상 야근이 많기 때문에 출근 후 약을 복용하는 것을 택했다.


아, 내가 이렇게 하는 이유는 약의 효과 때문이다.

약에 대해서도 이것저것 찾아봤는데,


간단하게 설명을 하자면 보통 중추신경을 자극하는 메틸페니데이트 계열의 ADHD 약을 사용하는데, 여기서 널리 알려진 것은 메디키넷과 콘서타가 있다.


메디키넷의 특징

약효 효과가 빠르게 나타남

지속시간이 짧음 (8시간)

용량을 세밀하게 조절할 수 있음 (5mg 단위)


콘서타의 특징

약효 효과가 천천히 나타남

지속시간이 김 (12시간)

용량 조절이 어려움 (18mg부터 9mg 단위로 증량)

그렇기에 메디키넷을 복용하는 나는, 약효의 타이밍을 내가 조절할 필요가 있었다.


또, 내가 추가로 먹고 있는 아토목세틴 계열도 있는데 이는 위 두 약과 다르게 중추신경을 자극하는 물질은 아니다.

그래서 단기간에 효과가 나타나기는 어렵고 중추신경자극하는 것으로 효과가 없을 경우에 같이 복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럼 이렇게 까지 조심하며 먹는 약을 복용하고 나서 '너 많이 달라졌어?'

라고 스스로에게 의문을 던져보면


솔직히 많이 달라졌다.라고 말할 수 없다.


인터넷을 보면 리미트리스의 주인공처럼 뇌의 한계가 해제되어 엄청난 세계로 나를 이끌어 나갈 것 같지만 그러한 효과는 말 그대로 영화 속에 존재한 이야기이다.


하기 싫어 미뤄왔던 것을 할 수 있는 힘을 주는 것도 아니고, 그냥 하기 싫은 거는 똑같이 하기 싫었다.

약에 대한 핑계로 해야 할 일을 계속 미뤄왔던 걸까?

라는 기대도 있었지만. 그건 그냥 나 자체의 존재였던 것 같다.


하긴, 그러면 ADHD 없는 사람들은 다 열심히 살고 성실히 살게?

생각해 보면 터무니없는 기대이긴 했다.


그래도 몇몇 환경에서 좋아지는 게 느껴졌기 때문에 매우 만족하고 있다. 크게,


노래 실력이 올라감.

회의 중 더 이상 다른 사람들의 말을 유추하지 않아도 됨.

내가 내 말을 정리해서 말할 수 있게 됨.

졸음이 현저히 줄음. (제일 만족스러움)

머릿속 안개가 사라짐.


이 정도에서 느끼고 있다. 그리고 이게 끝이다.


사실 첫날, 정말 리미트리스 주인공이 된 것 같은 기분에 1주일 동안 책도 읽고, 수학 공식도 풀어보고 대학생 이후로 생각해보지도 않았던 공부를 다시 생각해보기도 하고 했지만 결국 나는 그대로였다.


그리고 언제나 좋은 것이 있으면 대가가 따라오는 법. 약으로 인한 부작용도 있었다.


식욕 감퇴

뒷목 뻐근함

약효가 끝난 후 오는 괴리감


이러한 부작용이 있었지만, 엄청 심한 편은 아니었고 이 조차도 약을 복용하는 기간이 늘어나면서 차차 줄어들고 있다.


결국 결론적으로 아마 나는 약을 계속 먹게 될 것이라 결론지었다.

삶이 엄청나게 드라마틱하게 변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없으면 안 된다 라는 느낌이다.


한 달 약 3만 원 정도의 약 값에 내 정신건강의 복지를 생각하면 나쁘지 않은 결과이다.

그리고 이 약을 더 먹지 않았을 때 모니터 너머로 아침마다 동태 눈빛으로 노려볼 나 자신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계속 먹기로 결심했다.


그렇기에 언제나와 같이 약봉지를 뜯고 한입에 털어놓고 삼킨다.


자, 이제 또 변신해볼까.

내 변신은 약 30분 정도 걸릴 예정이다. 느긋이 변신을 기다려볼까 하지만, 현실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OO님. ~관련해서 이거 부탁드려요."

"OO님. ~ 해서 작성 부탁드립니다."


악당들도 주인공이 변신할 때 가만히 있어주는 매너가 있지만 이곳은 바로 공격하는 곳.

그렇게 정신없이 하나하나 현실의 공격을 방어하다 보면 어느덧 나는 변신 완료.


변신을 완료했다는 기준은 옆 창문을 통해 나무 한그루를 봤을 때.

그 나무가 정확히 서있는 걸 인지했을 때. 비로소 나도 현실에서 제대로 서있는다.


오늘도 변신 완료. 출격 ADHD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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