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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윤섭 Mar 07. 2023

행복을 사고팔아도 될까요

공간창직 워크숍_행복교환소

"행복교환소를 열었다. 여기서 회원들은 서로 행복을 나누고, 심지어 사고팔 수도 있다. 그 수단도 마음과 경험, 실물 재화까지 다양하다. 이용자는 교환소가 있는 공간에 행복했던 순간에 대한 후기를 남길 수 있다. 그럼 운영자는 좋아하는 책에서 행복 문구를 뽑아 다시 선물해 준다. 이용자가 직접 행복 공동체를 만들어 운영해 볼 수도 있다. 주제는 '소취행'이다. 소소한 취미로 행복 만들기다. 독서글쓰기, 걷기, 취향여행 등 자신이 특별히 행복감을 느끼는 취미에 관심자들을 초청하고 나누는 것이다. 또 이용자가 감사할 일이 생기면 '행복 후원'을 할 수 있다. 뜻하지 않은 큰 행복을 만났을 때 감사의 표시로 일정 금액을 기부하는 것이다. 그럼 그 돈은 그런 행복을 누리지 못하고 있는 불우한 사람들을 위해 쓰여진다. 그런 사람들을 교환소로 초청해 위로 여행이나 이벤트를 열어주는 것이다. 그리고 다시 얻게 된 행복감이 있다면 그 후기를 연례 공동체 행복 보고서로 엮어 낸다. 후원자는 물론 이용자 모두에게 그 내용을 나누고, 회원 간 행복의 파이를 키우는 것이다. 커진 행복은 또 다른 불행을 막고, 누군가 다시 어려워질 경우를 대비한 보험 역할도 한다. 이러한 '행복 사업'의 성공에 힘입어 이제 해외로 그 문을 넓힐 계획이다. 바로 '세계행복여행'을 준비하고 있는 것. 회원들과 연 1회 가난하지만 행복한 나라들을 함께 여행하는 것이다. 거기서 그들만의 행복 비결을 배우고, 또 이들의 다른 물질적 필요를 채워주고 오는 것이다. 행복판 공정 여행이 바로 그것이다." 게스트하우스에 들어찰 행복 가득한 상상으로 이번 글을 연다.


'한국인 행복지수 꼴찌...' 이제 이런 제목의 기사를 보더라도 낯설지 않다. 실제 한국인의 삶의 만족도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38개국 중 36위다. 꼴찌에서 3번째인 최하위권이다. 통계청이 발표한 '2022 국민 삶의 질 보고서' 내용이다. 여기서 한국인의 주관적 삶의 만족도는 2019~2021년 기준 10점 만점에 5.9점이었다. OECD 평균 6.7점은 물론, 살기 힘들 것 같은 일본(6.0점) 보다 낮다. 우리보다 점수가 낮은 나라는 콜롬비아(5.8점)와 튀르키예(4.7점) 두 곳뿐이다. 상위 1~5위는 핀란드(7.8점), 덴마크(7.6점), 아이슬란드(7.6점), 스위스(7.5점), 네덜란드(7.4점) 등 유럽 국가들이 싹쓸이했다. 이 지표는 OECD의 '더 나은 삶 지수(BLI)' 중 하나로 유엔 세계행복보고서(WHR)에 활용된다. 또 다른 보고서,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사회 정책 성과 및 동향 분석 기초연구'에서도 한국의 행복 수준은 10점 만점 중 6.11점이었다. 역시 OECD 국가 중 끝에서 7번째 최하위 수준이었다. 이 행복 점수는 "바닥이 0점이고 꼭대기가 10점인 사다리를 상상하세요. 사다리 꼭대기는 최상의 상태를 의미하고, 바닥은 최악의 상태를 의미합니다. 사다리의 어느 단계에 있다고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에 응답자 스스로가 매긴 점수다. 과연 자신이 이 질문에 답한다면 몇 점을 줄 수 있을까?


개인적인 '행복의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면 사회초년생 시절이 나온다. 처음 사회에 나가 정신없고,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2교대, 3교대는 예사였다. 회사 내 기숙사에서 잠깐 눈만 붙이고 출근할 때도 수두룩했다. 잔업, 주말 근무는 일상이었다. 하지만 행복했다. 회사는 일터이자 집이고 삶의 모든 것이었다. 선배들과 동거동락하며 그저 그렇게 '사는 재미'를 알아갔다. 그러던 어느 날 IMF가 터졌다. 이때를 기준으로 직업 생활도, 행복관도 모두 바뀌었다. 이리저리 쫓겨나고 전배 가던 선배들을 보면서였다. 한 바탕 지진이 휩쓸고 간 자리, 폐허가된 건물 잔해와 먼지 투성이 거리를 보는 듯했다. 당시 신입사원이었기에 나가라 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스스로 찔렸다. 시쳇말로 남몰래 눈물 좀 흘렸다. 캄캄한 회사 인근 공터를 홀로 배회하며 쓰라린 마음을 달래곤 했다. 주변의 불행 속에서 혼자 행복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자신만의 망상적(?) 행복관을 정립하는 계기가 됐다. "자신이 행복하기 위해서는 세상 모든 사람이 행복해야 한다." 주변에 불행한 사람이 있다면 그 불행은 자신에게 돌아올 수 있어서다. 주변 사람은 더 주변 사람, 더 주변 사람은 더더 주변 사람의 영향을 받는다. 결국, 이론적으로 세상 모두가 행복할 때라야 비로소 완전히 행복해질 수 있다. 당시, '항상 웃기'를 연습하며 "자신은 언제 어디서나 마음만 먹으면 행복할 수 있다." 생각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행복은 이런 식으로 얻을 수 없었고, 평생의 숙제가 되었다. 또 이것은 '세계'에 관심을 가지는 계기가 됐다. 외국어로 전공을 바꾸는 데에도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나이를 먹으며 이 세계는 자신이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주변'으로 서서히 수정되었다.


주변 공동체와 행복의 관계는 마냥 뜬금없는 소리는 아니다. 위에 언급한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사회적 고립 인구 비율이 낮은 국가 중에 행복 점수가 높은 경우가 많았다. 아이슬란드(2.0%), 핀란드(3.0%), 슬로베니아(4.5%) 등이 그런 경우다. 반면, 튀르키예(26.4%), 멕시코(22.1%), 콜롬비아(20.7%)  등 고립도가 심한 나라는 행복 점수도 최하위권이었다. 우리나라도 그런 경우로 고립 인구 비율이 18.9%로 OECD 국가 중 네 번째로 높았다. 곤란한 상황에서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친구나 친지가 없다고 응답한 것이다. 주변 공동체는 이렇게 불행을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 반면, 행복을 전념시키고 확대해주는 경우도 있다. '빅 포텐셜'의 저자 숀 아처는 자신의 저서에서 한 연구를 인용해 이렇게 말했다. "우리 자신이 행복하면 반경 1.6킬로미터 안에 있는 모든 친구의 행복감이 63퍼센트 증가한다. 와우!" 그러니 다른 이의 성공에 기여해 자신의 성공을 한 단계 높이라고 조언한다. 다른 사람에게 풍부한 자원과 에너지, 경험을 제공하면 자신의 역량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돌아온다는 것이다. 이것이 다른 사람들과 함께 선순환을 이루는 성공, '빅 포텐셜'의 개념이다. 또한 머리말에서 제시한 자연 생태계의 유사한 예시가 강렬한 인상으로 남았다. 맹그로브 정글 숲속에서 한 생태학자가 직접 체험한 내용이었다. 반딧불이 때문에 150여미터에 달하는 나무들이 동시에 빛을 발했다 멈추는 신비한 현상을 목도했던 것이다.

반딧불이가 무작위하게 빛을 뿜을 때 그 신호가 깊고 어두운 맹그로브 숲속의 암컷에게 전달될 가능성은 3퍼센트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반면, 수컷이 집단적으로 빛을 발산할 때 암컷에게 도달할 확률은 무려 82퍼센트로 높아진다. 오타가 아니다. 반딧불이는 개체가 아니라 서로 연결된 집단으로서 빛을 발할 때 전달 성공률이 79퍼센트 포인트나 상승했다. - 빅 포텐셜(숀 아처, 청림출판) 중에서


세월이 지나 '모두의 행복'이라는 '망상'은 현실로 바뀌었다. 무작정 주위에 퍼주는 것보다 자기 것 챙기기 바빴고, 자신만의 원칙과 기준은 하나씩 늘어갔다. 여전히 가난하고 변하지 않는 자신의 상황에 화가 났던 것일까. 현실에 지치고, 떨어져 가는 힘을 조금이나마 아끼고 싶었던 걸까. 그런데 분명한 것은 그런다고 해서 현실이 크게 달라지진 않았다는 것이다. 한없이 자유롭긴 하지만, 오히려 소외되고 쪼그라드는 자신을 느끼기도 했다. 과연 무엇이 망상이고, 무엇이 현실인가. "남에게 대접받고 싶은 대로 남을 대접하라"는 황금률을 자신은 얼마나 실천하고 있는가. 파랑새를 찾아 다시 긴 순례의 여정에 오른 지금, 궁극의 행복 찾기에 앞서 다시 주위를 둘러본다. 바로 자신의 이 순간 '행복 온도'가 얼마인지, 또 그것을 나누고 지켜줄 사람이 주변에 얼마나 되는지.


가난하지만 부탄 같은 나라는 세계에서 행복한 나라 중 으뜸으로 꼽히기도 했다. 국민 총행복 정책을 만들고 그것을 헌법에 명시하는 등 국가 공동체 전체의 행복을 추구했기 때문이다. 최근 도시화로 이전만 못 할 수는 있지만 미얀마, 캄보디아, 인도네시아 등 다른 동남아 국가들만 가봐도 금방 알 수 있다. 사람들이 참 행복해 보인다. 낯선 이들을 반기고, 이른 아침부터 온 마을에 옹기종기 모여 서로 정을 나눈다. 불행할 틈이 없어 보인다. 이런 모습 때문에 해외봉사 갔다가 되려 배우고 오기도 한다. 비록 가난은 더 개발해야 할지 모르지만, 행복에 있어서는 우리가 개발 대상이 되는 것이다. 행복 순위만큼은 더 '후진국'일 수 있어서다. 이렇게 누군가에게 행복이 부족하다는 것은, 누군가에게는 더 행복을 위해 해줄 일이 많다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이런 선순환으로 세계 경제가 성장하듯이, 세계의 행복 총량도 커진다. 바로 이것이 행복교환소의 존재 이유가 되기도 한다. 교환소가 사람들의 행복한 웃음과 함께 현실로 나타날 날을 조용히 그려본다. 처음 게스트하우스를 열며 붙인 '행복 게하'라는 프로필명 앞에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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