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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솔 Oct 14. 2022

누군가의 일인 줄로만 알았던 것이 내게도 찾아왔을 뿐

암이 나를 찾아왔다.

나만 아니면 돼.


언젠가 예능 프로그램에서 게임의 벌칙을 정하면서 멤버들 중 누군가 외치던 말이었다. 그리고 다른 멤버들도 역시 나만 아니면 된다면서 게임에 참여했다. 모두가 피하고 싶었던 벌칙은 누군가 걸렸다. 당첨된 사람은 괴롭지만, 벌칙을 피해 간 나머지 멤버들은 신이 나서 달아났다. 이때만 해도 나만 아니면 된다는 말은 그저 우스개 소리로 들렸다.



나만 아니면 된다는 말이 요즘 한참 나의 마음을 흔들고 있다. 지난여름 태풍 힌남노로 인해 포항의 여러 사건 사고들이 전해졌다.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 차를 빼러 갔다가 갑자기 들이닥친 폭우로 사고를 당했다는 소식, 아파트에서 나가다가 열린 맨홀 뚜껑을 보지 못하고 그대로 빨려 들어가 며칠 뒤 주검으로 발견됐다는 소식. 뉴스를 보고 한 동안 가슴이 너무나 먹먹해져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전에도 이런 비슷한 사건이 가끔씩 들려오기도 했지만, 그때는 어디선가 일어난 안타까운 사고구나라는 생각이 전부였다. 나에게는 결코 일어나지 않을 다른 세상의 일처럼 여겨졌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이런 사고가 다른 사람에게 일어난 일처럼 느껴지지가 않았다. 나만 아니면 되는 일이 아닌 나에게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니까. 



사고를 당한 사람이 나와 다른 게 뭐가 있을까. 그 사람이 유별나게 살아서 일어난 일이 결코 아니다. 사고가 난 그 순간까지 평범하게 자신의 일상을 꾸리고 있던 누군가의 소중한 가족이었을 터였다. 어제와 다르지 않은 하루를 보내던 중에 아무런 기별도 없이 모든 것을 남기고 떠나갔다. 남은 가족들에게 이보다 더한 날벼락같은 악몽이 있을까? 악몽은 깨기라도 하면 될 텐데, 이곳은 현실이니. 현실 속에 남은 사람들, 그리고 본인 자신을 어떻게 위로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들이 나였다. 나 또한 얼마든지 황망한 사고로 생을 마감할 수도 있다. 때문에 삶에서 만나게 되는 이런 사건들의 의미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진지하게 고민해 볼 필요가 있겠다고 생각했다. 나를 위해 남겨질 누군가 그리고 남겨진 누군가를 위해서 말이다. 




두 달 전 건강검진을 받았다. 회사에 다닐 때는 매년 꼬박꼬박 잘 챙겼는데, 퇴사 이후 한 해를 건너뛰고, 올해 국가공단 검사 대상자로 건강검진을 받게 되었다. 기존에 추적관찰을 하던 검진들도 추가 비용을 지불하고 받았다. 검사 결과, 몇 년 전부터 추척관찰을 하고 있던 폐결절이 커졌다는 소견이었다. 상담 의사는 조심스럽게 폐암 소견이라는 말을 건넸고, 큰 병원에 가보라며 의뢰서를 써주었다. 




폐암 소견이라는 단어가 무시무시했다. 하지만 속단하고 싶지 않아서 애써 마음을 붙잡았다. 그리고 유명 대학병원을 찾아다니며 교수님들을 만났다. 처음으로 갔던 병원의 호흡기센터에는 나보다 훨씬 나이 많은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많았다. 대기실에 앉아 있는 내가 참 어색하고, 나이에 맞지 않는 것 같았다. 나 여기 너무 빨리 온 거 같은데... 꿋꿋하게 마음을 다독거리며 앉아있는 내가 왠지 좀 짠하게 느껴졌다. 교수님은 CT상으로 보이는 결과로 90% 이상 암일 확률이니 수술을 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을 말씀하셨고 이후 나는 암센터로 넘겨졌다. 




암센터에 처음 진료를 보기 위해 간 날. 2층 암센터에 들어서는 순간 너무 깜짝 놀라 발을 뗄 수가 없었다. 로비와 대기실을 가득 메우고 있는 사람들. 앉을 곳은 물론이고 제대로 서있을 만한 공간도 없는 도떼기시장 같은 분위기. 이 많은 사람들이 모두 암환자라니. 내 눈에 안 보이고 내 주변에 드러나지 않아서 알지 못했던 현실의 모습이었다. 누가 암 이래.. 누가 누가 이번에 암 걸렸데.. 아, 그래? 그렇구나. 누군가의 일로만 여겨지던 현실이 나의 일이 됐고, 이 공간에 함께 있는 사람들의 현실이었다. 그 순간 나는 놀랍게도 두려운 마음보다는 위로와 연민의 마음이 밀려왔다. 내가 혼자가 아니고, 누군가와 함께 겪어가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누군가의 일인 줄로만 알았던 것이 나에게도 찾아왔을 뿐이다. 왜 하고 많은 사람들 중에 나일까라는 질문에 기대고 싶은 슬픔과 괴로움을 그대로 안아가고 싶다. 사랑으로 안고 안아서 고통이 아닌 감사함으로 승화시키고 싶다는 소망이 생겼다. 누가 잘못해서 생긴 일이 아니기에. 나의 지난날, 그들의 지난날을 탓할 수 없다. 결국 아무도 탓할 수가 없는 일. 



우리의 삶이 그런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예기치 못한 손님이 불쑥 찾아오기도 하는 것. 때문에 서로가 서로를 연민의 시선으로 바라봐 줄 필요가 있다. 나만 아니면 된다가 아니라 그게 바로 나라면이라는 마음이 필요한 시대. 사랑하는 사람을 위로하듯 애절한 마음으로 스스로를 위로하고, 나를 위로하듯 타인을 위로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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