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솔 Oct 19. 2022

내 몸은 정화의 시간을 보내는 중입니다

정화: 깨끗하게 함


얼마 전 담석을 제거하기 위해 담낭 제거 수술을 받았다. 크기가 3센티 정도 되는 거대 담석이라고 불린 아이였지만, 지난 몇 년 동안은 비교적 잠잠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하지만 작년부터인가 담석은 나에게 존재감을 알리기 시작했다. 그것도 아주 제대로.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그날이 오면 위경련과 비슷한 증상과 등 쪽 어딘가 타들어가는 통증으로 한밤중에도 응급실로 달려가야 했다. 그때는 원인이 뭔지 잘 몰랐지만, 일 년쯤 지나서야 담석 때문인 걸 알았다. 이제는 담석과 헤어져야 할 시기가 온 것.



담석 수술은 비교적 어려운 수술은 아니었지만, 몸에서 장기 하나를 떼어낸다는 심리적인 부담감이 있었다. 몸에서 필요하지 않은 장기가 어디 있겠나. 모든 게 다 제 할 일을 하기 위해 있을 터이니. 복잡하게 올라오는 감정을 살포시 토닥여주며 달랬다. 떠나보내는 것에 대한 아쉬움을 함께 나누고 다시 제 할 일을 해 나갈 몸 곳곳에 애잔한 마음을 가득 담아 인사를 보냈다.    



수술은 깨끗이 잘 됐다. 일반적으로 복강경 시술을 하면 배에 구멍을 세 개 뚫는데, 세심한 의사 선생님 덕분에 내게는 배꼽 바로 아래 작은 자국 하나만 생겼다. 수술 후 샤워를 하며 거울에 비친 몸을 바라보는데, 거의 티 나지 않는 작은 흉터만 있는 몸이 참 반갑더라. 하지만 내 몸에 수술의 흉터가 여기저기 나 있었더라도 감사했으리라. 수술을 견디고 다시 일상을 마주한 내 몸에게 고마웠을 테니.



퇴원 후 일주일이 지나 수술 경과를 확인하러 외래 진료를 갔다. 환한 얼굴로 맞이해 주시는 의사 선생님의 얼굴을 보니 수술 후의 가벼움이 더해져 왠지 더 반가웠다. 선생님은 PC의 파일을 열어 내 몸에서 제거한 담낭과 담석 사진을 보여주셨다. 까맣고 동글동글한 알밤처럼 생긴 아이였다. '너도 그 답답한 곳에서 지내고 싶진 않았겠지' 담석은 한 개였지만, 담낭 안에는 염증성 물질이 가득 차 있어서 기능을 하나도 못하고 있었다고 이야기해 주셨다. 절개돼서 펼쳐져 있는 담낭은 일반인인 내가 봐도 벌겋게 붓고 달아올라 건강하지 못해 보였다.



이번 수술은 담석 제거뿐만 아니라, 안에서 곪아가고 있던 염증들을 제거하기 위해 꼭 필요한 일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순간적으로 나라는 존재가 언제나 누군가의 도움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 몸의 독소를 제거해 준 의사 선생님의 수고로움. 우리는 누군가의 수고로움으로 매일을 살아가고 있었다. 이렇게 세상을 바라보니 자신이 하고 있는 일 모두가 누군가를 위한 사랑의 손길이다. 우리가 이렇게 서로 사랑을 나누는 존재였다는 사실에 묵직한 감동이 밀려왔다.




엊그제는 치과에 다녀왔다. 최근에 수술도 받고 그에 맞게 식단도 조절하느라 몸이 피곤했는지, 잠잠하던 사랑니가 문제를 일으켰다. 일주일을 앓고 앓다가 통증이 조금 가라앉길래 얼른 치과에 가서 사랑니를 발치했다. 원래 독감주사 하나 맞는 것도 무섭다고 호들갑을 떨던 나였는데, 웬만한 고통에는 익숙해진 듯 잇몸에 놓는 마취주사 역시 잘 참고 있는 내 모습이 조금 어색했다.



우지끈. 이게 정확히 소리인지 느낌인지 구분을 못 하겠지만, 사랑니의 뿌리가 뽑히고 있다는 강력한 증거였다. 어깨 잔뜩 힘이 들어가는 순간 의사 선생님이 뽑았다고 하셨다. 아. 드디어 나를 고통 속에서 떨게 했던 사랑니를 뽑아냈다. 어찌나 속이 개운하던지.


선생님은 발치해 낸 사랑니를 보여주시며 뿌리 주변에 덕지덕지 덩어리 같은 게 엉겨 붙어 있는 게 염증이라고 알려주셨다. 요 며칠 나를 고통스럽게 했던 염증들이 바로 요놈이었구나. 드디어 사랑니와 함께 염증들을 빼냈다. 기분이 한결 가볍고 좋아졌는데,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조금 달랐다. 내가 요즘 병원에 자주 가서 걱정스러운 느낌이랄까? 요즘 자주 아프네. 요즘 병원에 자주 가시네요. 왜 이렇게 약해졌어 등.



사람들에게 그렇게 보일 수도 있었겠다. 주변 사람들은 아직 내가 곧 받아야 하는 폐암 수술에 대해서는 알지도 못하는데, 그것까지 알게 되면 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을 듯. 나 역시 스스로에 대한 안타까움과 연민의 시선을 가득 담아 바라볼 수도 있었겠지만 다행히도 조금 다르게 생각하고 있다. 나는 지금을 정화의 시간이라고 받아들이기로 했다. 정화란 불순하거나 더러운 것을 깨끗하게 함이다. 최근 연이은 수술과 발치는 결과적으로 몸이 다시 깨끗해지는 과정이었다. 염증들을 내 몸에서 빼내는 해독과 정화의 과정. 정화는 어두운 시간을 거치기 마련이다. 자연이 정화의 시기를 거쳐 다시 생명의 찬란함을 펼쳐내는 것처럼 나 역시 자연스러운 과정을 보내고 나면 푸르르게 빛날 것임을 안다. 



다음 달 받게 될 암 수술도 마찬가지. 나에게 필요한 정화의 과정이니. 그 길에서 나에게 도움의 손길로 다가오는 사랑을 감사하게 잘 받고 싶다. 세상 속에서 받은 사랑을 늘 떠올리며, 나 역시 사랑을 더 많이 되돌려주는 넓고 푸르른 생명이 되기를 조용히 소망해 본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