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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솔 Nov 03. 2022

삶을 살아가는 힘

곁을 지켜주는 사람들

평일 저녁 약속. 전업주부가 되고 나서는 평일 저녁 약속은 흔하지 않은 특별한 시간이다. 게다가 이번 모임은 익숙한 동네가 아닌 핫한 장소에서 만남이었다. 예전 같으면 신나서 들뜬 기분으로 모임을 기다렸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엔 살짝 부담스러운 마음이 없지 않았다. 복잡한 퇴근 시간에 대중교통을 몇 번이고 갈아타야 하는 번거로움, 그리고 아직은 알아가는 단계라 마음의 거리감이 조금은 느껴지던 모임의 멤버들. 이들을 만나서 나의 요즘 상태에 대해 말을 꺼내야 하나, 아님 아무 일도 없는 듯 얼굴을 보고 오면 될까.




그녀들에게 내가 암이라는 사실을 만나 얘기한 적은 없으나, 내가 쓴 글을 통해서 알거나 짐작하고 있을 터였다. 온라인을 통해 일상의 소통을 이어나가고 가끔은 만나 서로의 안부를 묻기도 하는 사이이지만, 내 마음의 준비가 덜 되어서인지 부담이 됐다. 내가 병을 인정했고 만나는 사람들에게 큰 동요 없이 이야기할 수 있으면서도, 누군가가 날 동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볼까 봐 싫었다.  




상대에게 내가 먼저 이야기를 꺼낼 때에도 내가 딱 허락한 만큼의 진심 어린 마음만을 원했다. 그 이상은 노노. 난 괜찮으니 거기까지만. 상대의 걱정 어린 마음에 선을 그었다. 어쩌면 내가 괜찮다며 착각하고 있는 걸지도 모르니까. 하나도 안 괜찮은 걸지도 모르는데 혹시라도 누군가의 동정의 마음을 받아 무너질 것 같아 겁이 났다. 나에게 걱정스러운 눈빛을 보낼 때도 애써 웃음 지어 보이려고 했다. 그게 나만의 병을 이겨내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온전히 받아들였다고 생각했지만, 나는 내가 정한 공간만큼만 병을 허용하고 그 바깥으로는 통제하고 있었다.




그렇다. 이제 보니 나는 스스로 암환자라는 자리에 가있었다. 아닌 척, 괜찮은 척했지만 나는 영락없이 병을 안고 있는 모습으로 지내고 있었다. 마음 한 구석에 잔뜩 날을 세운 채로 상처받지 않으려고 기를 쓰고 있는 작은 아이가 있었다. 이 아이를 어떻게 단속하지 못한 채로 나는 약속 장소로 향했다.




가을이 깊어지는 저녁. 날이 제법 쌀쌀했지만 코끝에 스치는 공기가 맑고 상쾌했다. 늘 멀리서만 바라보던 롯데타워가 골목골목을 지날 때마다 거대한 위상을 드러내며 바로 옆에 있으니 신기하기만 했다. 제일 먼저 약속한 식당 앞에 도착해서 그녀들을 기다렸다. 핸드폰을 보고 있는데 익숙한 그녀가 옆에 왔다. 오랜만에 보는 얼굴이 반가워 나도 모르게 손을 잡았다. 그녀의 손이 따뜻했는지 아니면 차가웠는지 기억은 잘 안 나지만 그 순간 나의 경계는 스르르 풀려버렸다. 머릿속의 복잡한 생각들은 내가 만들어 낸 우려일 뿐이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날 저녁, 아주 가깝지도 아주 멀지도 않은 여자 넷의 모임은 말 그대로 참 다정했다. 서로에 대한 배려가 가득했다. 아니 모르겠다. 나만 잔뜩 배려를 받고 온 것인지도. 우리의 평범한 일상을 나누는 자리가 이토록 따뜻할 수가 있을까. 아무도 나에게 위로의 말이나 병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지만, 말하지 않아도 우리의 영혼들은 서로의 아픔을 위로하고 따뜻하게 안아주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것이 있고, 전달되는 것이 있다. 서투른 마음도 결국 다 그러하다. 


Photo by Michael Fenton on Unsplash


누군가가 날 보며 안타까운 눈빛을 보내는 걸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내가 정말 아픈 사람이 된 것만 같아서. 그냥 나는 괜찮고 싶고, 내 일상을 살아가고 싶은데, 상대가 나에게서 그걸 바라보지 못하면 내가 너무 슬플 것 같아서. 하지만 이젠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 그건 동정이 아니라 사랑이라는 걸. 누군가 나에게 보내는 사랑의 마음이라는 걸. 당연히 걱정스럽고 당연히 아파하는 건 사랑이니까. 그걸 제대로 받지 못하는 건 내 마음이었다. 날 향해서 한번 더 웃어 보이려는 얼굴, 하하호호 일상을 아무렇지 않게 나누는 얼굴, 애써 참았던 눈물을 흘리고야 마는 얼굴,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몰라 어색한 얼굴... 모두가 전부 사랑이다.   



세상에 슬프고 안타까운 일들이 계속 일어난다. 그럼에도 희망을 갖게 되는 건 그 안에 사랑이 있기 때문이다. 고통 속에서도 서로 나누려는 사랑이 있고, 마음들이 있다. 함께 아파하고 함께 울고 어떻게든 힘이 되어주고픈 많은 이들의 사랑이 함께 하기에 우리는 살아가는 게 아닐까. 



이 글을 통해 다정한 나의 그녀들에게도 말하지 못한 사랑을 전한다. 

당신들 덕분에 정말 힘이 났다고. 곁에 있어줘서 고맙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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