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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헤미안 Dec 27. 2020

01. 두물머리에 서다

두물머리에 서다

이른 새벽, 양평 두물머리 물가에 섰다. 


1월의 강바람이 호수에 뒤덮인 새벽 어스름을 거칠게 내몰며 가쁜 호흡으로 매섭게 몰아친다. 새벽에 깬 후 이런저런 생각이 뒤섞여 다시 잠을 못 이루다가 어스름이 채 가시기 전 조용히 집을 나섰다. 멀지 않은 양평 두물머리로 차를 몰아 왔다. 어디를 가야겠다는 생각도 없이 그렇게 팔당을 지나고 한강을 거슬러 왔다.


두물머리의 겨울 새벽.


결혼 전부터 자주 찾던 곳이다. 아내와 연애 시절, 함께 걸으며 앞으로 만들어 갈 예쁜 시간들을 이야기하고 수채화 그림 같은 가족의 꿈을 그려보던 곳, 어린 아들 둘과 물수제비도 뜨고 수많은 연꽃 사이로 소중한 추억을 쌓아두었던 곳. 이제 청년이 된 아이들 덕분에 최근에는 아내와 둘이서 호젓이 산책하고 커피를 마시곤 하는 곳이다. 


지금 그곳에 혼자 서 있다. 


가슴 한구석, 어색하게 짓누르는 답답함을 끄집어내어 남한강과 북한강이 어우러져 하나의 강이 되는 저 두물머리의 팔당 호수에 흘리고 싶다. 


55세의 직장인. 열심히 달려온 지난날들에 대한 아쉬움은 없다. 


올해로 입사 30년을 맞이하고 임금피크제에 들어가게 되면서, 직장인의 생활을 이제는 마무리해야 할 때가 다가왔음을 느낀다. 누구나 겪는 일이고 자연스러운 흐름 이건만 가슴 한쪽에 강박이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처음 직장생활을 시작하던 26세의 청년이 떠오른다. 


사회에 대한 조금의 두려움도 없이 딱 5년만 직장생활을 해보고 어떻게 살 것인지를 정하겠다고 다짐하며, 삶의 좌표를 정하기 전까지는 결혼도 미뤄야겠다고 생각하던 더벅머리 청년. 대학 1학년을 마치고 군 복무를 끝낸 후 서울로 올라오면서 어려운 형편을 생각하여 경제적 독립을 부모님께 말씀드려야 했고, 10만 원을 손에 쥐고 올라온 서울은 추웠지만 생동감 넘치는 기억으로 가득했다. 하지만 대기업에서의 직장생활은 인생에 대한 쉼표를 남기지 않은 채 순식간에 일상이 되어버렸고, 결혼을 하면서 가족에 대한 책임감은 질풍노도의 인생을 달리게 하였다. 


그리고 이제 그 길의 끝에 서 있다.


가슴 답답함의 정체는 바로 다음 길에 대한 고민이다. 정신없이 달려온 지난 30년 동안 이렇게 길의 끝이 올 것을 모르는 건 아니었지만, 이후의 길에 대한 고민의 여유가 없었다. 주변에서는 그동안 고생했으니 이제 인생을 즐기라고 한다. 건강 나이를 생각하면 적어도 20년 이상의 많은 시간들이 주어질 텐데, 여행이나 취미 활동만으로 충분히 즐거울 수 있을까. 좀 더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갈 방법은 없을까. 직장 생활 외에는 뭐 변변히 할 줄 아는 게 없으니 생각할 여지가 너무 없다. 단순히 나의 즐거움만을 위해 시간을 소비하는 것이 행복이 아닐 거라는 생각에 먹먹함이 가슴을 짓누른다. 


새벽녘 채 잠을 깨지 못한 강물을 타고 지난 30년의 시간들이 빠르게 흐른다. 


나는 무엇으로 다음 강물이 되어 흐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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