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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자살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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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까 Mar 06. 2023

3. 비아그라는 중국산이다  

대만에서 자살하기  


그 사이트에 접근하는 것은 생각보다 상당히 쉬웠다. 사이트 왼쪽 끄트머리에 '락스'라는 아이디를 가진 사람의 프로필이 있었고 혹시나 해서 쪽지를 보내봤다. 그리고 단 1분도 지나지 않아 연락이 왔다. 이스타붐이라는 이상한 이름의 약을 팔고 있다고 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그 약을 먹으면 누구나 고통 없이 죽을 수 있다고 했다. 물약 형태로 되어있어서 목 넘김이 어렵지 않고 그냥 아무 때나 꺼내서 죽으면 된다고 했다.

나는 혹시 중국산은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들었다. 비아그라니 시알리스니 하는 그런 약들은 대부분 중국에서 만드는 짭이 팔린다고 하니까. 이 약이 그런 것들과 맥을 같이 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왠지 사기를 당할까 봐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머뭇머뭇하고 있으니 내 맘을 꿰뚫어 보는지 이런 쪽지를 보냈다.

 

"효과가 없을까 봐 걱정이 되시는 거예요? ^^"


눈웃음 이모티콘까지 넣은 그의 답변이 좀 기분이 나빴다.


"걱정하지 마세요. 이 게시판에서 약을 사고 나서 속았다고 반품을 해달라는 글이 있나 한번 찾아보세요."


사실 그의 말은 맞았다. 만약 이 약을 사고 죽지 않았다면 분명 약의 효과를 불평하며 환불을 요구하는 글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그런 글은 보이지 않았다 모두들 평안한 죽음을 맞았는가 보다. 사실 고통스럽게 죽었다고 해도 아무도 알 길이 없다.


구매정보라는 곳에 들어가서 나와 있는 대로 차근차근 정보를 입력했다. 가격은 상당히 비쌌다. 그러나 자살하고자 하는 의지가 강한  사람들이라면 마지막으로 가지고 있는 돈을 모아서 구입하기에 무리가 될 만한 것은 아니었다. 아니면 친구들에게 꼬드겨서라도 빌려도 상관없을 것이다. 어차피 돌려줄 가능성은 없으니까.


마지막으로 아까 그 사람에 '락스를 사랑하는 모임'이 무슨 뜻이냐고 쪽지를 보냈다. 그 이후로는 아무런 답변을 받지 못했다.


오래 기다리지 않아 약이 작은 상자에 담긴 약병 집으로 도착했다. 박카스만 한 작은 병이었다. 병 색깔이 검은색이라 어떤 색깔인지 보이지도 않았고 라벨이 없으니 어느 나라에서 생산된 것인지도 알 수 없었다. 제대로 된 음식이 온 것인지 열어보고 맛을 볼 수도 없었다.




난 타이베이 한 복판에서 그 약을 먹고 아무런 특별한 것이 없는 관광객처럼 픽 하니 쓰러져 버렸다. 내 옷에 묻은 용액의 색깔은 분홍색이었고 이 정도로 효과가 없으면 중국산임에 틀림없다. 한국에 돌아간다면 이 사람 사이트에 부작용을 호소하는 글이라고 올리겠건만 그럴 수는 없을 것이다. 넌 어떻게든 죽을 것이니까.


사람들이 쓰러진 내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아 유 오케이?"


사람들이 난데없이 맑은 하늘에서 떨어진 은갈치라도 보듯 신기하게 쳐다보았다. 이렇게 더운 날 복사열이 장난 아닌 광장에서 그렇게 오래 서있는 미친놈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노 프로블럼"


나는 이렇게 말하고  바지를 툭툭 털고 일어나 광장 구석에 있는 큰 나무 밑 그늘에 털썩 주저앉아 멀끔히 내가 쓰러졌던 광장을 쳐다보았다.  작은 성냥불을 커다란 소화기로 끈 듯 내 첫 번째 시도는 이렇게 허무하게 끝났다. 앞으로도 나의 자살시도가 쉽지 않을 거란 생각에 허탈했다. 여기 올 때는 적어도 그 이스타붐이라는 약이라도 믿고 왔는데 이제 목을 매거나 몸을 던지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단 말인가?


우선 하루만 더 살기로 했다. 어렵게 정말 저렴한 숙소를 구해서 침대 위에 철부덕 큰 대자로 누워버렸다. 아까 먹은 약 때문인지 몸이 자꾸만 땅으로 쳐지는 것 같고 머리가 몽롱해졌다. 생각해 보니 그 약을 먹자마자 효과가 나타난다는 말은 들은 것이 없었던 것 같다. 다시 광장으로 나가서 죽으려고 몸을 일으켜 보았으나 도무지 움직일 수가 없었다. 이제 잠에 들면 다시는 눈을 뜨지 않을 것이다. 정말 다행이다. 약이 적어도 중국산은 아닌가 보다. 아마 스위스산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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