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바라진 아이

우리 아이가 불편한 당신에게

by 뚜비뚜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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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저 할머니 먼저 내리시라고 양보하자.”

평소에 엘리베이터에서 1등으로 내리는 것에 집착하던 아이가 무슨 결심을 한 듯 자랑스레 칭찬받을 준비를 하고 말을 했다. 하지만 새치가 좀 많았을 뿐, 어디서도 할머니라고 불리기 어려워 보였던 이 아주머니는

“어머 얘, 내가 할머니로 보이니?” 라고 물으시고는 아이가 “네!”라고 대답하자 불쾌해하며 급하게 자리를 떠났다. 아이는 본인이 양보까지 해줬는데 왜 고마워하지 않는 건지 궁금해했다. 당황한 나는 아무에게나 할머니라고 부르면 안 된다는 잔소리를 몇 절까지 했다.




가족 모임에서 서로의 근황 이야기를 하다가 아이의 사촌 형이 힘들었던 일에 대해서 하소연을 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아버님이 마음을 강하게 먹으라며 훈계를 시작하신 것이 발단이 되어 아이의 사촌 형이 서러움의 눈물을 흘렸다. 가족들은 갑작스러운 상황에 어쩔 줄 몰라하며, 형을 달래주면서 아이에게도 가서 형을 좀 위로해 주라고 부추겼다. 그러자 아이는 할아버지에게 쏘아붙이며 말한다.

“잘못한 사람이 위로해 줘야죠. 왜 제가 위로해줘야 해요?”

순간 정적. 일동 빵 터진다. 사실은 맞는 말이기는 하지만 누구도 쉽게 꺼내기 어려운 ‘이런 말’을 아이는 거침없이 한다. 그나마 가족들과 함께 있을 때는 박장대소하는 일화가 되기도 한다.




어딜 가든 존재감을 드러내는 아이는 식당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큰소리로 쩌렁쩌렁 외친다.

“사장님! 여기 치즈 돈가스 좀 주세요.”라고. 그럴 때마다 아이를 끌고 키오스크로 가서 “여기서 주문해야 해. 그리고 넌 나랑 같이 왔잖아. 그럼 엄마랑 네가 먹고 싶은 것을 같이 의논해서 주문하고 우리의 순서가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해.”라고 계속 일러준다. 그럼에도 아이는 자신의 요구에만 몰두하고 주변의 상황을 살피지 않는다. 이런 아이의 모습을 누군가는 “너무 오냐오냐 키우는 것 같다.” 하시며 버릇없게 보시고, 사정을 잘 모르시는 먼 친척 어르신들은 “야, 네 아들 엄청 똑 부러진다.” 하신다.



되바라진 아이, 그게 우리 아이의 대외적 증상이다.




담임선생님과의 통화로 듣는 아이의 학교 생활은 점입가경이다. 담임 선생님께서 해야 할 일을 일러줄 때마다 아이는 “저는 학교에 오는 것만으로도 힘들어요. 하기 싫어요.”라고 말한다. 선생님이 아이의 잘못을 타이를 때는 “상관하지 마세요! 잔소리하지 마세요!” 라며 귀를 막는다고 한다. 초등학교 2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 한 학기 동안이나 내 이름을 잘못 부르셨음에도 ‘그건 제 이름이 아닌데요.’라는 말조차 하지 못했던 나로서는 어떻게 저런 게 내 뱃속에서 나왔나 싶다. “네 선생님 죄송합니다. 집에서 잘 타이르겠습니다.”라며 통화를 끝낸다. 부끄러움은 내 몫이다.




우리 부부는 일상에서 튀는 아이의 행동과 말을 우리의 기준에 맞춰 검열하고 그러면 안 된다고 가르친다. 그게 의사들이 우리 부부가 없어도 아이를 사회 속에서 묻혀서 살 수 있게 해 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했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다고 믿는다. 그럼에도 아이를 타이르다 지치면, ‘그런 말도 좀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세상엔 저런 사람도 있는 거지.’ 하며 넘어가고 싶은 순간이 온다. 하지만 우리 부부의 시선이 아이에게 가장 엄격한 잣대였던 것은 아닌지, 나부터 아이의 ‘다름’을 ‘틀린 것’이라고 규정했던 것은 아닌지 반성해 본다. 끊임없이 가르치고 바뀌어야 하는 것은 아이의 사회성이기 이전에 다름을 받아들이고 아이의 가장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야 하는 나의 시선인지도 모르겠다.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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