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발짝을 뗀 다미가 고개를 돌리는데 유건이 그대로 난간 아래로 몸을 밀어내고 있었다.
“안돼!”
놀란 다미가 달려가 간신히 유건의 손을 붙잡았다. 유건의 얼굴 위로 다미의 눈물이 흩날렸다. 다미의 눈물이 유건의 눈물이 되어 공포 속으로 떨어졌다. 하지만 다미의 손에서 유건의 손이 눈물처럼 멀어져 갔다. 난간을 잡고 있는 다미의 비명이 밤공기를 산산조각 내고 있었다.
다미의 이야기를 들은 유건은 침대에 걸터앉아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다미는 무릎을 감싸 안고 눈물을 닦아내며 말했다.
“내 생각은 조금도 안 했어. 언제부턴가 자기는 비관하고 그림 욕심만 부리기 시작했어. 그렇게 성공하고 싶었니? 목숨까지 버려가면서?”
“자살이었다니.”
그때의 유건은 정말 죽고 싶을 만큼 괴로웠다. 매일 괴로움으로부터 도망가고 싶었다. 다미가 실족사가 아닌 자살이라는 사실을 알려줬을 때, 당황했지만 납득이 갔다. 그리고 결국 실행을 해버렸구나 하며 자조 섞인 헛웃음만 나왔다.
“내가 얼마나 아기를 갖고 싶었는데, 이젠 우리 아기를 가질 수도 없잖아. 이 바보야.”
유건이 몸을 돌려 흔들리는 다미의 어깨를 토닥였다. 죽음의 순간이 기억에 없었으니 감정은 더욱 건조했다. 유건의 생각은 오직 현재와 미래에만 살아 있었고, 고민거리였다.
“나 후회하지 않아. 다미야. 그래도 나 정말 말소할 건 아니지?”
다미의 울음소리가 뚝 멈췄다. 그가 완전한 로봇 같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고 소름이 끼쳤다.
“나가! 꼴도 보기 싫어! 꺼져버리라고!”
다미가 유건의 어깨를 밀쳐냈다. 유건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일어나 침실을 나갔다. 다미는 믿을 수 없어 고개를 가로저었다. 자살이라는 말을 듣고도 그의 머릿속엔 온통 말소뿐이었다. 빙하 속에 갇힌 칼날처럼 차갑고 섬뜩했다. 그가 변한 것인지 자신이 변한 것인지 아득하고 현기증이 돌았다. 다미는 순간 내장이 입으로 쏟아질 것 같아 헛구역질을 했다.
“내가 자길 어떻게 없애. 어떻게. 그걸 어떻게 질문이라고 하니!”
유건은 다미를 혼자 두고 화실로 들어왔다. 조명이 켜지고 그간 작업했던 그림들이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유건의 핸드폰 문자음이 울렸다. 김관장이었다.
‘다음 전시회도 성공해야죠? 당신 가치를 제대로 펼치게 해 줄 사람, 나밖에 없다는 걸 잊지 마요. 반대로 내 말 한마디면 훅 간다는 것도 포함.’
유건의 머리가 복잡했다. 머릿속 컴퓨터로도 쉽게 계산되질 않았다.
다음 날 아침, 다미의 눈은 뜨기 힘들 만큼 퉁퉁 부어올랐다. 잠이 올 것 같지 않았지만 어느새 지쳐 잠이 들었고, 악몽에 시달려야 했다. 다미가 아일랜드 식탁 곁으로 다가가 물을 따라 마셨다. 문득 쓰레기통에 버려진 깨진 액자를 바라보았다. 마음이 착잡했다. 자신의 마음이 복잡해서 유건의 찢어진 발을 신경 쓰지 못했던 것이 미안했다. 서운함과 괴로움을 어찌 풀어야 할지 몰랐다. 다미는 벽면에 붙은 태블릿으로 트랜스휴먼 사용설명서를 펼쳤다. 카테고리를 터치하면서 수리 항목을 찾았다. 그때 초인종이 울렸다.
“누구지?”
다미가 고개를 돌리다가 터치한 항목이 말소 페이지로 넘어갔다. 다미는 의식하지 못한 채 현관으로 걸음을 옮겼다. 초인종 소리를 들은 유건이 화실에서 나왔다. 유건은 밤새 그림을 그렸는지 손가락에 물감 자국이 선명했다. 유건이 고개를 돌려 태블릿에 시선을 옮겼다.
말소 페이지였다. 유건의 표정이 얼음장처럼 굳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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