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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수안 Oct 28. 2022

[Binge_on_Stories] 작은 아씨들

의뭉스러운 흑막에 맞서는 잔혹동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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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서경 작가와 류성희 미술감독이 그린 시리즈는 어떤 모습일까, 그 호기심을 꾹 눌렀다가 종영 1주 전 정주행을 시작했다. 원작 소설에서 모티브를 따온 인물 관계도는 반갑고 배우들의 연기는 서로에게 딱 맞는 퍼즐같이 들어맞으며 극의 몰입감을 높였다. 인트로 영상부터 심상치 않은 잔혹동화가 12화에 걸쳐 아름답게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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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주, 인경, 인혜 자매는 무능력한 부모 밑에서 꿋꿋하게 자랐다. 좋은 집 하나 남는다면 모든 것을 잃어도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고모할머니의 말씀은 창문 하나 여닫기 힘들고, 화장실이 너무 춥고, 자기만의 방을 갖지 못한 자매에게 가장 닿기 힘든 이상이다. 그런 자매 주변에 초고소득자 지인들이 여럿 등장하면서 자본 격차에서 파생된 태도, 자세, 습관, 생각을 끊임없이 대비해서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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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하지만 평범했던 이들 일상에 갑자기 나타난 베트남 ‘유령 난초’. 이 희귀한 푸른 난초가 상징하는 정란회는 이상한 사회 정의를 실현하려는 모종의 집단으로 세 자매 정도는 쉽게 매장할 수 있을 것처럼 위협해온다. ‘가장 낮고 어두운 곳에서 가장 높고 밝은 곳’을 지향하는 정란회, 그 정체는 죽음을 불사하면서까지 계층 이동을 좌우할 수 있는 권력을 욕망하는 무리로 내부에서부터 흔들리는 지지기반과 세 자매의 활약으로 무너지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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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들에 대한 책임감, 저널리즘으로 지키는 자존심, 재능을 펼치고 싶은 욕망 : 세 자매의 원동력은 단순히 잃을 것이 없는 자들의 용기가 아니다. 누구나 하나쯤 가지고 있는 단단한 삶의 이유다. 그것이 더없이 선명한 사명감과 얽히면 평범한 사람도 의뭉스러운 흑막에 맞설 수 있는 힘이 되어준다. 물론, 재력과 비범한 머리와 세계 제일 안전한 차와 군사용 무기를 가진 조력자들이 없다면 이야기가 진행이 안 되긴 했겠지. 2-4화 정도 늘여 좀 더 정성스러운 설명을 해줬다면 극의 완성도가 더 높아졌을 것 같다는 아쉬움은 남지만, 뭐 시작부터 동화 같은 이야기였으니 조금 억지가 섞인 꽉 닫힌 결말이어도 잘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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