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설고 유쾌한 이곳은 남극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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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한 것을 새로운 소재로 제시하는 방법에 '낯설게 하기' 또는 '섞기'가 있다. 신선한 조합을 만들거나 색다른 맥락에 아는 것을 배치하는 것이다. <남극의 쉐프>는 기승전결이 드라마틱하진 않지만, 남극이라는 미지의 땅에 쉐프가 더해지면서 호기심을 자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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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전문 분야를 분담한 여덟 대원이 후지 기지에 모여 벌어지는 일을 담았다. 쉐프 미시무라를 중심으로 각 대원을 조명하며 정신적, 육체적으로 극한까지 몰리는 에피소드를 그리고 그때마다 동료의 기지와 따뜻한 식사를 통해 내외적 갈등이 해소되는 구조다. 일본의 삶과 교차되는 남극의 생활은 더욱 혹독하다. 가족, 친구, 연인을 모두 뒤로한 채 떠나온 만큼 외로움은 필수옵션! 그럼에도 특별한 경험을 쌓고 하루하루 온몸으로 살아있음을 느끼는 시간이 된다. 시한부라 그나마 버텨나갈 수 있는 듯해도 다 큰 어른들이 아이처럼 천진난만해지는 유일한 공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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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마크는 남극과 달리 아주 안전하고 살기 좋은 환경이지만, 나에게는 대원들처럼 단절이란 경험을 한 장소다. 문화와 언어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물리적으로 분리되면서 채워지지 않는 마음 한구석을 안고 유학 시절을 보냈으니까. 영화를 보는 동안 그때의 생활이 오버랩되며 추구하는 커리어와 그를 위해 포기해야 하는 안락함에 대해 곱씹게 되었다. 다시 돌아가도 나는 또 덴마크를 갈 것 같지만. 미시무라가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해 역할을 완수하듯, 나 역시 스스로를 적응시키며 매일을 살아내고 성장한 기억이 소중하다. '언제 내가 남극에 다녀왔나 싶다'는 미시무라의 대사처럼 덴마크 생활도 한여름 밤의 꿈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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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에 햄버거를 맛있게 한입 무는 장면은 집에 돌아와 느낀 안심, 편안, 사랑을 응축해서 너무 잘 보여준다. 이어지는 소소한 에피소드에 '빨리 감기'를 누르고 싶은 충동이 들다가도 결국 정속으로 완주했을 때 남는 몽글몽글함을 포기할 수 없는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