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큰 양들도 길을 잃어요!
_
'성공한 독립영화'는 천연기념물만큼 희소하고 귀하다. 익숙한 얼굴들과 귀여운 포스터가 눈길을 끄는 작품, <찬실이는 복도 많지>는 입소문으로 유의미한 수의 관객을 확보하고 각종 상을 휩쓸며 그 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보석이다.
_
이야기는 찬실이가 함께 작업해 온 감독의 죽음에서 시작한다.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된 영화 피디 찬실은, 방년 40세. 사랑하는 영화 일에 올인했는데, 이제 와서 제작자한테 팽당하고 뭘 해야 할지 막막하다. 찬실의 하늘은 무너졌지만, 따뜻한 도움의 손길 덕에 그나마 소소하게 솟아날 구멍들이 보이는 듯하다. 평소 친하게 지내던 여배우가 제안하는 파출부 일로 입에 풀칠하고, 비슷한 처지의 단편 영화감독 겸 불어 선생님 덕에 말라버린 연애 세포에 불이 붙는다. 집주인 할머니가 내미는 투박한 잔소리에는 지혜와 위로가 담겨있고, 장국영 귀신과 나누는 대화는 진지한 진로 고민에 박차를 가한다.
_
이 주변 사람들은 찬실이 처한 상황의 역전을 가져다주지 않는다. 하지만 그들이 있기에 찬실은 오랜 꿈이었던 시나리오 작업을 다시 시작할 수 있다. 마지막에 함께 영화하고 싶다며 찾아오는 후배 스텝들 역시 인생에 새로운 막이 열리고 있다는 신호 같다. 판타지를 한 스푼 섞은 하이퍼 리얼리즘에 홀린 듯 울고 웃다 보면 러닝타임은 금세 끝나버린다.
_
하고 싶은 일을 탐색하면서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다 보니,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히기도 하고 ‘왜 영리하지 못하게 살았을까’ 회의가 드는 날도 있다. 그렇다고 찬실만큼 오롯이 한 길만 걸으며 불살랐는가 하면 그건 정말 자신이 없다. 평생 진로 고민은 끝나지 않을 것 같고, 척척 책임을 지는 진짜 어른만큼은 영원히 되고 싶지 않은 걸 보니 피터팬 증후군이 남 이야기는 아니다. 꿈을 좇을 용기를 되찾은 찬실은 나같이 길 잃은 다 큰 양을 위한 가상의 왕언니 같다.